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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지난 겨울,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럽을 덮치기 직전 한 달 동안 이탈리아에서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기자말]
볼로냐 구시가 전경 볼로냐 대성당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 전경. 건물의 지붕이 모두 붉은 색이어서 '붉은 도시'라는 별칭이 생겼다는 주장은 조금 어색해보인다.
▲ 볼로냐 구시가 전경 볼로냐 대성당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구시가 전경. 건물의 지붕이 모두 붉은 색이어서 "붉은 도시"라는 별칭이 생겼다는 주장은 조금 어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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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보들의 도시(Citta dell Grosso).' 다들 이탈리아 중부 도시 볼로냐를 그렇게 불렀다. 기름지고 맛있는 음식이 많아 생겨난 별칭이라고 했다. 넓은 평야 지대인 데다 교통의 결절점이라 물산이 풍부하고 이탈리아 특유의 다양한 음식 문화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덧붙였다.

볼로냐의 파스타가 이탈리아 최고라는 설명도 뒤따른다. 이탈리아에 오기 전, 도시 이름을 내건 '볼로네제 파스타(Bolognese Pasta)'가 메뉴판에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숫제 볼로냐를 두고 이탈리아 음식의 성지라는 말까지 나왔다.

볼로냐에 묵은 며칠 동안 '이탈리아 대표'라는 파스타를 맛볼 요량으로 여기저기 식당을 찾아다녔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식당을 탐문하다시피 했고, 부러 '볼로네제 파스타'만 시켜 먹었다. 떠나기 전 들었던 음식의 성지라는 소문을 직접 입으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맛있었지만, 그렇다고 엄지척할 만큼은 아니었다. 음식의 맛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품평하는 게 좀 뭣하긴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먹었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볼로네제 파스타'는, 말 그대로 볼로냐 사람들이 예로부터 즐겨 만들어 먹던 파스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단테부터 움베르토 에코까지

오랫동안 도시국가로 분열돼 있었던 탓에 지방색이 유달리 또렷하고, 음식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이탈리아에서 '대표'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내로라는 관광지인 로마와 피렌체, 밀라노와 나폴리를 다녀왔다고 해서 이탈리아에 대해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이치다. 더욱이 그들이 자랑하는 음식 문화임에랴.

"Where are you from?"(어디서 왔나요?) 여행을 다니다 보면 흔히 받게 되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과 우리의 대답은 사뭇 다르다. 역사적으로 중앙집권의 전통이 강한 탓인지, 우리는 주저 없이 "Korea(한국)"라고 답변할 테지만, 그들은 지금 살고 있는 고장의 이름을 댄다.

예컨대, 볼로냐 사람이라면 "볼로냐"나, 볼로냐가 속한 주인 "에밀리아로마냐"라고 하지, "이탈리아"라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럽의 국가들이 대체로 그렇지만, 특히 이탈리아에서는 언어를 제외하면 과연 같은 나라인가 싶을 때가 많다. 이탈리아 남부와 북부의 반목과 갈등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볼로냐가 '음식의 성지'라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겠다. 모르긴 해도, 여행안내 책자와 TV 예능 프로그램에 의해 조장된 이미지에 가깝다. 본디 맛이라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호로 호불호가 갈리는 영역이다. 어느 곳의 음식이 더 맛있는가를 두고 겨루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볼로냐 시청사 입구 휴게공간 볼로냐는 현대 미술의 메카로 불릴 만큼 각종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데, 시청사 입구에도 미술품인지, 휴게용 소파인지 헛갈리는 돌의자와 탁자가 놓여있다. 뒤에 놓인 화분의 모양도 예사롭지 않다.
▲ 볼로냐 시청사 입구 휴게공간 볼로냐는 현대 미술의 메카로 불릴 만큼 각종 전시회가 자주 열리는데, 시청사 입구에도 미술품인지, 휴게용 소파인지 헛갈리는 돌의자와 탁자가 놓여있다. 뒤에 놓인 화분의 모양도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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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볼로냐는 '지성과 변혁의 도시'라 해야 더 어울릴 성싶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최초로 근대적인 대학이 설립된 곳이 바로 볼로냐다. 2017년 기준, 재학생만 11만 명에 이르는 볼로냐 대학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천 년 전인 1088년에 세워졌다. 우리로 치면, 문벌귀족이 무신 위에 군림하던 고려 초다.

단테와 코페르니쿠스, 에라스뮈스, 마르코니 등 내로라는 석학들을 배출했으며,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가 종신 교수로 재직했던 곳이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유학생이 몰려드는 인재의 산실로서, 인접한 파르마, 리미니 등에 분교를 설립해 그들을 수용하고 있다. 여느 도시와는 달리, 시내에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는 이유다.

볼로냐에선 비가 내려도 우산이 필요 없다

명실공히 볼로냐는 대학이 주도하는 도시다. 볼로냐를 대표하는 경관인 '포르코(Porco)'도 중세 시대 밀려드는 학생들의 숙소를 마련하기 위한 배려에서 시작된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건물의 1층을 회랑처럼 조성한 것인데, 보도를 확보하면서 거주 공간을 넓히는 나름 획기적인 대안이었다.

'포르코' 덕분에 볼로냐에선 비가 내려도 시내를 돌아다니는 데 굳이 우산이 필요 없다. 당국의 제도적인 뒷받침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독특한 도시 경관을 창출해낸 것이다.
 
도시 곳곳에 나붙은 대자보 볼로냐 대학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전쟁을 반대하고 공산당을 홍보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그라피티와 함께 볼로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 도시 곳곳에 나붙은 대자보 볼로냐 대학뿐만 아니라, 도시 곳곳에 전쟁을 반대하고 공산당을 홍보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붙어있다. 그라피티와 함께 볼로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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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곽과 건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대학생들이 많아선지 여느 이탈리아 도시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중후하면서도 세련되고, 차분하면서도 활기차다. 볼로냐는 건물 벽에 그라피티가 많기로도 유명한데, 문양이나 글귀의 내용을 보면 언뜻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도심 곳곳에 반전과 평화를 염원하는 무지개 깃발이 나부끼고,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표현도 쉽게 눈에 띈다. 중동 문제에서 손을 떼라는 반미 구호와 공산주의 정당에 가입하라는 대자보까지 대학가의 건물 벽은 '자유게시판'을 방불케 한다. 하지만, 흔한 풍경이어선지 그다지 지저분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볼로냐는 '붉은 도시'로 불리기도 한다. 일부 여행안내 책자와 블로그에는 도심 건물의 지붕이 죄다 붉은 색이어서 붙여진 별명이라고 소개돼 있는데, 뭘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볼로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 한 번도 우파 세력이 집권하지 못한 좌파의 본향이라는 의미다.

얼마 전에도,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아고스토 광장에서 난민 축출을 주장하는 극우세력에 맞서기 위해 무려 4만 명이 운집한 시위가 벌어졌다고 한다. 아고스토 광장은 평소 많은 이민자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벼룩시장이 열리는 곳이다. 볼로냐는 난민에 우호적인 도시로 손꼽힌다.

극우세력에 대한 저항의 전통은 뿌리가 깊다. 볼로냐는 무솔리니 집권 시절부터 레지스탕스의 도시로 유명했다. 도심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길의 이름이 '독립의 거리(Via dell Independenza)'인 이유다. 시내에는 당시 레지스탕스를 추모하는 시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레지스탕스의 도시
 
레지스탕스 추모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레지스탕스들의 사진과 이름을 적은 추모비가 도서관 벽에 세워져 있다.
▲ 레지스탕스 추모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희생된 레지스탕스들의 사진과 이름을 적은 추모비가 도서관 벽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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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대표적인 것인 도시의 중심인 마조레 광장에 설치된 사진 추모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침략에 저항하다 숨진 수많은 레지스탕스의 흑백 사진을 일일이 붙여놓았다. 더욱이 그곳은 시민들이 흔히 찾는 도서관의 벽면으로,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취지다.

사실 도서관 앞은 볼로냐의 한 청년이 무솔리니를 저격하려다 미수에 그친 자리다. 고작 16살의 나이로 레지스탕스가 되어 조국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안토니오 잠보니(Antonio Zamboni). 그는 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했고, 볼로냐의 반파시즘 투쟁에 불쏘시개가 되었다.

볼로냐 사람들의 반극우 성향과 불굴의 저항 정신은 이후 협동조합 운동의 밑바탕이 됐다. 규모와 영역, 고용창출도 등에 압도적인 이탈리아의 협동조합 운동은 익히 잘 알려져 있으나, 그 중심에 바로 볼로냐가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협동조합 본사 10개 중 6개가 볼로냐가 속해 있는 에밀리아로마냐 주에 자리하고 있다.
 
'포르코'와 COOP 볼로냐 시내에선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다. 건물마다 '포르코'라고 불리는 회랑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볼로냐에는 COOP 간판을 단 마트가 많은데, 곳에 따라 판매하는 물품이 다양하다.
▲ "포르코"와 COOP 볼로냐 시내에선 비가 와도 우산이 필요 없다. 건물마다 "포르코"라고 불리는 회랑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편, 볼로냐에는 COOP 간판을 단 마트가 많은데, 곳에 따라 판매하는 물품이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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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기업이 도시 경제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 'COOP' 간판을 단 가게들이 성업 중인데, 마트와 식당, 서점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그러면서도, 볼로냐는 2015년 이탈리아 지역의 협동조합 통계를 기준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1인당 GDP는 밀라노 다음으로 높으며, 불평등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극우세력의 준동에 당당히 맞서고, 난민에 우호적이며, 협동조합운동 등 사회적 경제에 관심이 큰 도시의 분위기는 대학 도시로서의 지성과 실험정신이 이끈 결과다. 나아가 해마다 수많은 실험적인 전시회가 열려 세계인의 주목을 끄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붉은 도시'라는 건 이제 '뜨거운 열정의 도시'라는 말로 재해석돼야 옳다.

볼로냐는 피렌체에서 쾌속열차 이딸로로 채 40분이 걸리지 않는다. 놀랍게도 그 동안 창밖 풍경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왜냐면 기차가 이탈리아의 등줄기인 아펜니노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을 지나기 때문이다. 터널의 출구가 바로 볼로냐 중앙역의 지하 플랫폼이다.

터널의 캄캄한 어둠 속을 통과한 탓일까. 볼로냐는 피렌체와는 아예 딴 세상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관광객은 물론, 세계 어느 곳이든 넘쳐난다는 중국인들조차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피렌체의 번잡함에 너무 시달렸던 탓인지, 볼로냐에서는 걸음걸이조차 느긋해졌다.

'볼로네제 파스타'를 먹어봐야겠다는 것 말고는 딱히 어디를 가야겠다고 계획한 것도 없었다. 배낭에 넣어간 여행안내책자에도 볼로냐를 소개한 꼭지는 없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래서 볼로냐에서의 시간이 더 좋았고, 더 많은 걸 가슴에 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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