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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aching Profession Code of Conduct and Ethics. 보조 교사 양성 과정에서 호주의 교사들에게 전문가로서 요구되는 자질, 의무, 책임 등에 관한 규정을 배운다.
 Teaching Profession Code of Conduct and Ethics. 보조 교사 양성 과정에서 호주의 교사들에게 전문가로서 요구되는 자질, 의무, 책임 등에 관한 규정을 배운다.
ⓒ 이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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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을 듣고 있는 케이트(가명)는 본인의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반에 들어가서 읽기와 쓰기, 수학이 뒤처지는 아이들의 학습을 보조하는 역할이다. 봉사활동을 오래 하다 보니, 이 일을 좋아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 자격증 과정에 지원을 하게 됐다고 한다.

"교실에서 보면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한 아이들이 보일 때가 있어. 조기 개입이 필요해 보이는데 부모가 아이를 잘 파악하고 있지 않다면 보조 교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지?"

호주 교사들에게 요구되는 전문가로서의 자질, 의무, 책임 등에 관한 규정(Teaching Profession Code of Conduct and Ethics, https://www.vit.vic.edu.au/professional-responsibilities/conduct-and-ethics)을 배우는 과정에서 케이트가 던진 질문이다.

이 질문은 호주에 사는 교사들만의 궁금증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때도 몇 번씩 품었던 질문이었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서 매일 아이들을 접하고 있는 많은 교사들이 갖는 질문 일지도 모른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호주의 부모들에게도 '아이의 다름(특별함)'을 받아들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교사는 진단을 내리는 사람이 아니야. 특히 보조교사는 진단을 받은 학생들의 발전을 돕는 사람들이야. 본인의 책임과 의무 뿐만이 아니라 역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게 중요해."

케이트의 질문을 받은 강사 에릭(가명)의 답은 명료했다. 부모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잘 이해하고, 전문가를 찾아 조기 개입에 적극적이고, 학교와 유기적인 소통을 하며 발전을 도모하는 경우는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만약 보조 교사가 발달이 의심되는 학생을 발견했다면 제일 먼저 담임 교사와 상담을 해야 하고, 추후의 과정은 담임 교사와 학교의 역할이라고 했다.

에릭은 덧붙였다.

"교사들의 언행은 전문가로서 분별력이 있어야 하고, 본인의 감정과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학부모와 대화를 해야 해. 학부모와 아이의 발달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는, 학교에서 목격됐던 사례와 객관적인 사실들에 기반해서 상담을 해야 해."

그 후 우리의 수업은 장차 우리가 교실 현장에서 자주 목격하게 될 사례 위주로 수업을 받았다.  아이가 옷에 용변을 봤을 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혼자 울고 있을 때, 감정 조절이 어려워 분노할 때,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 듯한 발언을 했을 때 등에 대해서도 대처 요령을 배웠다.  

그날 강사 에릭이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교사로서의 분별력 있는 언행"이었다. 더불어 해당 학생의 신체적 안전과 정서적 안정을 우선시 해야 한다는 점, "세상에, 불쌍한 것", "어쩌면 좋아" 등과 같은 불필요한 교사의 감정을 실은 표현으로 학생과 학부모를 겁에 질리게 해선 안된다는 점, "네 인생은 앞으로 참 힘들겠어", "선생님이 꼭 너를 보호해 줄게" 등과 같은 장담할 수 없는 말들이나 판단의 말들을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아이가 초등 저학년일 때 야외 체험학습, 학교 수영 활동, 체육 시간 등 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활동에 부단히 따라가 봉사활동을 했었다. 영어를 읽지도 쓰지도, 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영어 문맹자 아이를 덜컥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엄마는 하루하루가 좌불안석이었다. 차라리 봉사활동에 참석해서 아이를 지켜 보는게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멜버른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는 아주 흔한 광경이다.

교실에 자주 투입되다 보니, 담임 교사인 캘리(가명)와도 가까워 지고 한때 한국의 교육자였던 나는 궁금한 호주 교육 시스템에 대해 질문을 하곤 했었다. 케이트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캘리도 에릭과 비슷한 대답을 했었다.

"교사는 함부로 의심되는 진단명을 말할 수 없어."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진단을 내리는 일은 그 분야 전문가가 할 역할이고, 교사가 아동의 발달이 의심된다면 학부모와 상담을 요청한다. 이때에는 학교 생활에서 발생하는 어려운 점들, 예로 심각하게 학업 성취가 지연되는 경우, 충동적이고 산만한 행동, 반항 행동, 타인이나 본인의 안전에 관한 이슈 등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학부모의 이해를 돕는다. 이때 부모들의 아동에 대한 이해와 장애에 대한 인식의 정도에 따라 추후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고 했다.

'이런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교육을 받아야 하나?' 가끔 보조 교사 양성과정 수업을 듣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되돌아 생각해 보면 교사 생활 중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도움과 지원이 절박한 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고 말을 걸어야 하고, 학부모와의 상담에선 어떤 내용과 적절한 표현들을 사용할 것인가를 잘 알지 못하니 매번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멜버른에서 여러명의 아이 담임들을 만났다. 그들의 다정하면서도 정제된 표현들은 수시로 아이의 학교 생활에 대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호주, #멜버른, #통합교육, #호주교육, #보조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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