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카카오 100일 인증 커뮤니티 "'당신이 옳다'를 읽고 공감 실천하기"에 참여했다. "'당신이 옳다' 100일 공감 실천하기"는 책 <당신이 옳다>를 읽고 100일 동안 온라인 공간에서 다짐을 실천해나가는 프로젝트이다. 10만 원의 참가비를 내고 매일 카카오톡 인증망에 공감실천일기를 적고 피드백을 받는데 하루 결석하면 1000원을 차감하고 차감된 돈은 정해진 곳에 기부를 한다. 매니저는 정신과 전문의이지만 치유자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당신이 옳다>의 저자 정혜신님이다.

한빛을 보낸 후 순간순간 허허로웠다. 그 어떤 것에도 설레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의욕도 전혀 없는 껍데기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신문의 칼럼도 밑줄 그어가며 공부하듯 읽었고 TV에서 무심코 던지는 대사도 의미가 있으면 곧바로 손바닥에 적던 나였다. 불쑥 지금 그러지 못해 슬프니? 그래서 억울하다는 거니? 하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빛을 잃고서도 무슨 행복을 누리자고 무슨 희망을 갖겠다는 건지 쯧쯧쯧... 하고 주저앉았다.

그러다 우연히 "'당신이 옳다' 100일 공감 실천하기 프로젝트"(이하 당옳 플백)를 보았다. 뭔지도 모르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일단 허겁지겁 신청을 했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었던 것 같다. 매일 나락에 떨어져 있다가도 어느 날은 살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치기도 했고 안간힘을 쓰기도 했으니까.

그러면서도 한빛에게 미안했다. 나자신이 싫었다. '엄마. 참 이기적이지? 한빛아. 너가 없는 세상에 뭘 더 살겠다고 이렇게 욕심을 부리는지. 미안하다. 한빛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기를 고집하는 내가 혐오스러웠다.

살아갈 목적도 없었고 사람과의 관계도 의미를 버렸다. 그러다가도 퍼뜩 정신이 나면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고 나자신을 무장하고 무장하며 버텼다. 한빛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고 한빛에게 갚아야 할 게 있는 '한빛 엄마'임을 각인하고 또 각인했다.

3년동안 한빛을 가슴에만 품었고 가슴으로만 그리워했다. 그런 나에게 눈에 띈 '당옳 플백'. 김혜영이라는 한 인간이 가엾어 이거라도 잡으라고 내려온 위로의 끈이었을까? 한빛 엄마로서 이제는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이제는 풀어야 한다는 치유의 손길이었을까?

100일 동안 참여하면서 '당옳 플백'은 '우연'하게 다가온 게 아님을 알았다. 나와 한빛을 위해 이미 준비되어 있었던 '인연'이었다. 책 <당신이 옳다>를 처음 선물 받았을 때가 생각난다. 2018년 가을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독후감 대회가 있었다. 마음속으로만 꽁꽁 끌어안고 있던 한빛에 대한 그리움을 처음으로 글로 표현했다. 한빛을 정면으로 만난다는 것은 나로서는 큰 용기였었다.

시상식이 있던 날. 옆자리에 앉아있던 S교사한테서 <당옳>책을 선물 받았다. S교사는 참가상을 받았을 뿐인데도 책에서 받은 공감은 나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책의 주제를 가슴 아픈 사회현실과 학교현장에서 어떻게 실천해나가야 할지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한빛을 보낸 후 처음 스스로 나온 공적인 자리이고 축하의 자리였지만 신나지도 않았고 다 부질없었기 때문이다.

S교사의 지치지 않는 열정이 수다스러웠지만 솔직히 부러웠다. 나에게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울컥했다. S교사는 간담회 중에 어딘가를 헐레벌떡 다녀오더니 헤어질 때 나에게 <당신이 옳다>책을 살짝 내밀었다. "힘내세요" 하면서.

저자인 정혜신씨와 심리기획자 이명수님은 이 책에서 말했다. "자격증 있는 사람이 치유자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치유자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만 안 할 수 있어도 공감의 절반은 시작된 것이다." "공감이 필요한 순간에는 온 체중을 다 싣는 공감자가 되자." 매달릴 곳이 절실했지만 책 한 권에 삶의 극적인 변화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느님도 답을 안 주셨는데 책이 무슨 힘이 되랴? 그저 하루하루를 버틸 의미나 있었으면 했다.

'당옳 플백'팀은 모두 103명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가 나타났나 의아했다. 간절해서 시작했건만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속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부담되었다. 매일매일 충조평판이란 명제 아래 나를 돌아보는 것도 업무로 다가왔다. 그렇지만 어쩔래. 지금 아무 것도 할 게 없잖아 하며 나를 독려했다. 인증률 100%에 목표를 걸고 건성건성 썼다. 마음이 없으니 단문만 의무적으로 써졌다.

감정을 철저히 감추고도 글이 써지는 게 신기했다. 그러다 Y님의 글을 읽게 되었다. 부끄러웠다. Y님은 공감이 뭐고 온 체중을 다 싣는 공감자가 뭔지 알게 했다. 허투로, 심심풀이로, 자아만족을 위해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고 있었다.

다시 찬찬히 '당옳 플백' 벗들의 글을 읽어보았다. 많이 미안했다. 플백 벗들의 글에서 충조평판하지 않는 대상에는 타인뿐 아니라 '나'도 포함됨을 알았다. 아니, '나'가 먼저였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한테 집중하는 동시에 자기도 주목받는 행위임을 알았다. 피드백에서 삶의 중심을 나에게 맞춰도 괜찮다는 말에 덜 외로워졌다.

100일 동안 일기 쓰듯 쓴 '당옳 플백'은 나에게 또하나의 위로가 되었다. 100% 인증을 위해, 천원이 아까워(?) 기를 쓰고 썼던 것 같은데 100일 동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것이 큰 성과였다. 100일 동안 내 마음을 열었고 꽉 막힌 가슴에 작은 구멍을 낼 수 있었다. 플백 벗들은 서투른 나에게 따듯하게 마음을 포개주었다. 플백 벗들의 글과 댓글이 내 마음에 포개지고 또 포개지면서 나는 평화로울 수 있었다.

플백 103분의 벗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아들 한빛을 말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도 감사한다. 뜻밖의 인연이었다. 한빛을 보낸 후 마음공부를 1년 했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한빛을 밝히지 못했다.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었다. 먼저 철저하게 닫고 혼자 삭혔다.

그런데 플백 벗과 정혜신 선생님은 함께 공감해주고 온 체중을 실어 공감자가 되어 주었다. '인연'이었다. 단 한 명만 함께 해주어도 위로가 되고 힘을 얻는데 정말 고맙다. 포개주시고 실어주신 격려와 힘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 고맙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해냄(2018)


태그:#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