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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61년 인천 부평 애스컴시티(Ascom City) 앞 기지촌 풍경. <ME&KOREA> 제공
 1960~61년 인천 부평 애스컴시티(Ascom City) 앞 기지촌 풍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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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회는 지난 22일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입법예고했다. 반가운 일이다. 앞서 2018년 고등법원은 국가의 성매매 정당화와 조직적 폭력적 성병 관리에 대한 국가의 위법성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지만, 기지촌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국가폭력을 인정했다면 정부는 응당 이들의 명예회복과 생활지원에 발 벗고 나서야했다. 하지만,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다.

경기도는 기지촌이 가장 많이 있었던 지역이다. 내가 사는 인근의 파주시도 대규모의 기지촌이 형성됐던 곳이다. 곳곳엔 아직도 기지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기지촌이 번성할 당시 파주시는 기지촌 여성들을 매개한 경제로 호황을 이뤘다. 하지만, 미군의 철수로 급격히 퇴락했고 도시는 황폐해졌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지운 그들

한때는 달러의 화수분이었고 지역 경제의 견인차였던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이 사라짐과 동시에 버려졌다. 많은 여성들은 미군이 옮겨간 다른 기지촌으로 옮아갔고 일부는 남았다. 기지촌 여성들에 의해 지역민들의 삶이 꾸려졌음에도 누구도 이들을 지역민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양색시' '양공주'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게 했다.

기지촌 여성들은 살기 위해서 그들을 철저히 지워야만 했다. 이들을 매개로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켰지만, 더 이상 돈을 가져다주지 않는 기지촌 여성은 지역민들에게서 배제되고 혐오대상이 됐다. 배제와 혐오가 짙어질수록 이들은 점점 더 어두운 곳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지워진 이들은 어느덧 지역에서 마치 없는 사람이 됐다. 지역과 함께했던 역사였고, 그때도 지금도 존재하는 사람들이지만, 지역민은 이들을 시야에서 박리시켰다. 그리고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지촌은 없어졌고, 그와 함께 기지촌 여성들도 사라졌다고. 아니다. 이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기지촌 여성들은 음지에서나마 각각의 삶을 꾸리고 있다. 하지만 생활이 매우 어렵다. 몸도 몹시 아프다. 기지촌 여성으로 살았던 삶은 이들의 몸을 위태롭게 한다. 미군과 동거생활을 했던 여성들은 좀 나은 편이었지만, 포주에게 억류돼 집단으로 생활했던 여성들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한 삶을 살았다.

끼니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군을 제 정신으로 상대하기 힘들어 세코날이라는 향정신성 약을 매일 복용해야 했다. 게다 불법적으로 이뤄진 낙검자수용소에서의 인권 침해는 그 심각성이 더하다. 감염의 유무와 상관없이 행해지는 페니실린 처방으로 쇼크사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미군에 의한 구타와 살인, 포주에 의한 감금, 구타 등의 반인권적 행위는 누구에게도 처벌받지 않았다. 단지 기지촌 여성들만이 낙인당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기지촌 여성들의 불행은 그들 탓이 아니다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지원 조례는 앞서 2014, 2018년에도 경기도의회에서 발의됐었다. 하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왜일까? 이미 앞서 고등법원의 국가 책임 인정 판결을 받았음에도 어째서 법안은 통과되지 않은 걸까? 여전히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침해를 그저 개인적인 불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래서 돌보아야 할 책무가 사회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기지촌 여성들의 불행은 그들의 탓이 아니다. 그들이 기지촌으로 유입되게 된 원인은 한국전쟁 이후 먹고 살 길이 없었던 탓이다. 기지촌으로 유입된 많은 여성들이 전쟁 고아였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유입된 여성들 상당 부분이 가정 폭력으로 도망 나와 오갈 곳이 없다가 기지촌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공장 등에 취업하려다가 사기 취업을 당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이를 그저 개인의 불행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기지촌으로 유입된 이후의 성매매 또한 '자발적'이란 말로 포장될 수 없다. 쓴 적도 없는데 늘어나는 빚은 이들을 노예로 옭아맸다. 벌면 벌수록 늘어나는 빚을 어떻게 탕감하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포주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목숨을 걸고 감행한 탈출은 한 번도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한 번 들어오면 죽어서야 나갈 수 있는 곳이 기지촌이었다. 이런 이들의 삶을 누가 함부로 손가락질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지촌 여성을 다룬 KBS 다큐멘터리 <전쟁과 여성> 중 '그녀의 꿈'에는 기지촌에서 삶을 꾸렸던 두 분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 중 한 분은 미군 남편과 결혼해 미국으로 도미해 정착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됐지만, 그는 기지촌에서의 자신의 삶을 도려낼 수 없었다. 자녀들도 잘 성장했고 어려움 없이 살 수 있게 됐지만, 기지촌에서의 삶을 연필로 쓴 글씨처럼 깨끗이 지울 수 없었다.

그에겐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억울한 삶을 말할 '대나무 숲'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대나무 숲으로 가지 않았다. 대신 자녀들을 불러 모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자신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슬픈 삶을 커밍아웃했다. 살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밤마다 꿈에서도 밀어내지 못하고 날마다 죄책감으로 살아야 했던 삶을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다른 한 분은 평택에 거주하는 분이다. 그분은 기지촌에서의 삶을 이제 더 이상 숨기지 않는다. 연극 활동을 하며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증언한다. 다큐멘터리 중 평택의 쉼터를 찾은 한 방문객의 말이 잊히지 않고 남아있다.

'그 시절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삶을 살지 않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우리는 이들의 삶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고. 그렇다면 그 책임을 가장 크게 가져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금 입법예고된 법안을 통과시켜야 할 경기도 도의원들과 법안이 통과되면 이를 시행할 도지사가 아닐까?

아픈 역사도 역사다. 아픈 역사라고 해서 도외시하는 것이 도민을 대표하는 도의원들이 보여줄 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의원들은 아픈 역사의 수레바퀴에 밟혀 신음하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을 위한 법안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책임을 져야 할 때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더 무서운 책임을 지게 된다는 것을 새겨주기 바란다. 입법 예고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반드시 통과돼 지체된 정의가 바로 세워지길 고대한다. 그것이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최소한의 사람다운 사죄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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