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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찾아온 2020년대는 전국에 공공 와이파이(WiFi)망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이 집권 여당의 제1 총선 공약으로 제출되는 시대다. 유무선 통신을 통한 연결과 다양한 콘텐츠 소비는 세대나 계층을 초월해 모두가 누릴 수 있고 누려야 하는 재화가 되었다.

그러나 생활필수품으로서 유무선 통신은, 당연하게도, 언제 어디서나 당연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집집마다 찾아오는 인터넷·케이블·IPTV 설치 기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들 중 LG헬로비전 소속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은 다음과 같다. 78.1%의 업무상 손상경험, 20.3%의 감전 혹은 추락 경험, 산재보험 신청률 2%, 미완치 상태에서 업무 복귀율 88%.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3년간 경험한 업무상 사고 유형(복수응답).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지난 3년간 경험한 업무상 사고 유형(복수응답).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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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업무상 사고를 당한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이유.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업무상 사고를 당한 이후 치료를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한 이유.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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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30일 LG헬로비전 해운대서부 고객센터 소속의 A/S·설치·철거 노동자가 고객의 집 옥상에서 작업하던 중 사망했다. 이 사건 이후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 고객센터지부와 노동건강연대는 긴급하게 노동환경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노동자의 죽음이 단순히 우연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발생한 사망사고가 아니라, 오랜 시간 누적된 열악한 노동환경, 숨겨진 작은 사고들의 최종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노동건강연대와 희망연대노조는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 실태조사는 LG헬로비전이 하청업체를 통제하는 방식, 그런 통제방식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을 어떻게 위험하게 만드는지, 그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조사했다. 실태조사는 설문조사와 면접조사로 이루어졌고,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전국 34개 업체 중 17개 업체의 현장 노동자 187명이 설문에 응했으며, 면접조사는 4명의 현장 노동자와 1회 진행하였다.

이동시간은 휴식시간이 아니건만

LG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는 통신 노동자들이 사실 LG 소속이 아니라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원청인 LG헬로비전은 지역별로 있는 외주 고객센터와 계약을 맺고 인터넷이나 케이블TV를 설치·철거하거나 A/S건을 처리할 때마다 수수료를 지급한다. 우리가 만나는 통신 노동자들은 그렇게 수수료를 받아 업체를 운영하는 고객센터 소속의 노동자다.

외주업체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멍은 LG헬로비전이 주는 수수료뿐이다. 즉 고객센터 입장에서는 매월 고정된 수입을 예측하기 힘들다. 이는 고객센터 경영자로 하여금 고용 인력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려는 행동을 부추긴다. 혹은 노동자들에게도 똑같이 기본급 없이 처리 건당 수수료만 지급하는 100% 실적급제를 운용하거나, PDA나 케이블 설치에 필요한 자재, 공구 등을 노동자 본인의 임금에서 차감하는 이른바 '근로 자영자'라는 기형적인 제도를 운용하게 만든다.

이런 기형적인 고용 구조에 매여 있지 않은 노동자라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원청인 LG헬로비전이 외주업체인 고객센터의 노동환경을 하나하나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무 편성시간 통제가 대표적이다. LG헬로비전의 통신 노동자가 고객의 집으로 이동해서 인터넷이나 케이블TV를 설치하거나 불만사항을 해결하는 데 주어지는 시간은 30~40분이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는 우선 고객의 집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정도이다. 30~40분이라는 원청이 정해 준 업무편성시간 안에 고객들의 집으로 이동하는 시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사측은 이동 시간을 휴게 시간이라고 착각한다. 면접 조사에 응한 정아무개(35, 경력 5년 A/S·설치·철거 기사)씨는 "사측이 생각하기에 저희가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휴식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또 제일 큰 문제입니다"라고 말했다.

고객의 집에 들어가 모뎀이나 셋톱박스 설치 장소를 살피고 외부에서 통신선을 어떻게 가져올지 판단한 뒤 작업에 들어간다. 건물 옥상이나 지면에 중계기가 설치되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전봇대에 올라 통신선을 끌어와야 한다. 혹은 건물 외벽에, 굉장히 위험한 자세를 취해야만 접근 가능한 경우도 있다. 통신선을 끌어오는 작업은 해당 고객의 건물이 어떤 형태인지, 중계기 세팅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따라 난이도가 천차만별이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가 건물 외벽에 매달려 통신선 작업을 진행중이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가 건물 외벽에 매달려 통신선 작업을 진행중이다.
ⓒ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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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헬로비전 노동자는 이제 다시 고객의 집으로 들어가 세팅을 마무리한다. 고객에게 기기 사용법을 알려주고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까지는 다른 통신업체 노동자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LG헬로비전 고객센터에서는 설치 및 A/S기사에게 영업까지 시킨다. LG헬로비전의 다른 상품은 무엇이 있고, 이걸 구매할 경우 고객님의 삶이 얼마나 윤택하게 달라질지를 영업한다.

희망연대노조 이만재 조직국장이 실태조사 발표에서 "외주업체에서는 지표달성을 위해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지표를 맞출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영업목표 달성하기 위해 방문 고객에게 별도로 세일즈를 해야 하는 등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40분이 바람처럼 지나간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는 숨돌릴 틈도 없이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기어를 넣고 바로 다음 고객의 집으로 이동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회사는 이동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휴게 시간을 별도로 정해놓지 않은 회사도 30.7%나 된다. 

12월 30일 숨을 거둔 고 김도빈 노동자는 이러한 일정을 하루 평균 11개씩, 많게는 하루에 17개까지 처리했다. 정말 숨 막히는 업무 편성이다. 하지만 고객센터 노동자는 해당 소속 업체와 편성 시간을 조율할 수 없다. 원청인 LG헬로비전이 정해놓은 기준이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들

이렇게 촉박한 업무 편성 환경 속에서 실적을 올려야 한다, 빨리빨리 일처리를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매일 아침 조회시간마다 머릿속에 박힌다. 담벼락을 오르내릴 때 폴짝폴짝 뛰어내리다 족저근막염이 온 김아무개 노동자나, 불안정한 지면에 사다리를 고정시키지도 않은 채 전봇대에 올랐다가 사다리가 넘어져 인대가 늘어난 정아무개 노동자의 사례는 이런 환경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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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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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안전장비가 제대로 지급되지도 않는다. LG헬로비전은 고객센터 노동자들에게 안전화, 안전모, 작업복 정도만 지급할 뿐, 감전을 예방할 수 있는 절연장갑이나 전봇대 작업 시 추락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벨트를 지급받은 이들은 각각 15.8%와 29.9%에 불과했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지급받은 안전장비 설문.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회사에서 지급받은 안전장비 설문.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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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강풍이 불거나 폭염이 찾아오더라도 통신 노동자들은 전봇대에 오르고, 전선을 만지고, 경사진 아파트 옥상에 오르고, 난간이나 건물 외벽에 매달린다. 그곳에서 통신선을 끌고 들어와 집집마다 이어준다. 그러다 보면 당연하게 업무상 사고도 일어난다. 가령 아래와 같은 최아무개 노동자의 감전 사고나 그 동료의 골절 사례가 그렇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 노동건강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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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LG헬로비전 노동자의 처지는 최소한의 고용 인원을 유지하려는 고객센터의 입장 때문에 그렇다. 박아무개 노동자가 언급한 것처럼 회사에서는 설치 및 A/S 기사들의 스케줄을 조정해주지 않는다. 비용 탓에 별도의 직원을 쓰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들이 작업 스케줄을 변경하려 할 땐 본인들이 직접 해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업무 부담 및 직무 스트레스를 현저히 증가시키며, 노동 환경의 위험도 역시 증가한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면접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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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이상 기후 상태일 때 작업진행 여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이상 기후 상태일 때 작업진행 여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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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고용 인원을 유지하려는 고객센터의 입장은 다치거나 아플 때도 노동자들을 쉬지 못하게 만든다. 한 명이 쉬거나 빠지면 그가 해야 할 업무가 동료 노동자에게로 나눠진다. 안 그래도 빨리빨리 하느라 버거운 동료 노동자들에게 업무 부담을 전가하는 꼴이다. 자신의 일을 대체할 인력이 부족하고, 그로 인해 동료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을까봐 걱정하는 이유 때문에 완치되지 않은 상황, 아직 몸이 아픈 상태에서도 일을 하러 나간다.

문제는 원하청 구조, 노동자들도 알고 있다

LG헬로비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이런 처지의 근본적인 원인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것은 수수료로 통제되는 원하청 구조이다. 30~40분 단위 업무 편성, 적절한 안전 장구 미지급, 이상 기후 상황 속에서 작업 속행 등의 문제는 이런 구조 속에서 소속 고객센터에 아무리 개선을 요구해도 바뀌는 데에 한계가 있다.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개선이 필요한 사항' 1위로 '정규직 전환(원청 직고용)'을 꼽았다.

면접조사에 참여한 정아무개씨는 "직고용이 많은 걸 해결해 줄 거 같아요. 중간 착취가 없어지면 그 비용을 우리 기사들한테 쓸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장비가 우리 기사들한테 올 수도 있는 거고. 또 직고용 되면 안전, 산업안전, 노동안전 이런 거에서도 원청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오는 거잖아요. 그렇게 되면 더 신경 쓰겠죠"라고 말했다. 노동자들 스스로가 문제와 해결책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청 LG헬로비전은 고 김도빈씨의 사망사고에 자신들의 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LG헬로비전은 희망연대노조의 실태조사 요구에도 무응답으로 일관했고, 이번 실태조사 결과발표 토론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발표는 생활필수품이 된 유무선 통신 서비스를 집집마다 공급해주는 LG헬로비전 노동자의 열악한 처우를 잘 보여준다. 늘 업무량보다 적은 고용 인원으로 인해 30~40분 안에 편성 하나씩을 처리해야 하는 노동환경은 위험하지 않은 작업조차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 실태조사가 그저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데에서만 그쳐서는 안 되며, LG헬로비전의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중간 착취를 그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인 LG가 직접 나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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