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한국 시각) 오전 10시, 미국 LA스테이플스센터에서 제62회 그래미 시상식이 열린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해 흥행을 마무리 할 성적을 기대하고 있다면 음악 신의 마무리는 역시 그래미다. 예년보다 한 주 이른 1월의 마지막 주 원대한 막을 올릴 시상식의 몇 가지 변화와 알고 보면 좋을 정보들을 정리했다.

미리 소식을 전해보자면 이번 잔치의 관건은 '변화'다. 그간 수상을 결정하는 미국 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약칭 나라스(NARAS)는 보수적인 투표 관행과 편파적 수상자 결정으로 비판을 받아왔다. 이번에는 그들이 쇄신 전략을 꾀한 것으로 보인다. 변화를 향한 움직임이 최종 결과물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시작이 좋다. 그 첫 번째 축은 여성이다.

여성

작년 그래미는 본상 부문 후보를 기존 5명에서 8명으로 늘렸다. 다양성을 고려해 더 많은 뮤지션의 음악을 알리겠다는 그래미의 포부였다. 올해는 여기에 덧붙여 여성 후보의 숫자도 늘었다. 4개 본상에서 절반 이상이 여성으로 채워졌고 특히 올해의 싱글(Song of the year)은 영국 가수 루이스 카팔디의 생애 첫 빌보드 싱글 1위 곡 'Someone you loved'를 제외하면 전곡이 여성 음악가의 작품이다.
 
또한 지난해 노-메이크업 운동을 지지하며, 민낯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앨리샤 키스가 이번 해에도 호스트로 낙점됐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진행으로 많은 찬사를 받았던 그이기에 2년 연속 진행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62년 그래미 역사 상 16년 만에 탄생한 여성 MC이며 유색인종으로는 3번째로 마이크를 독점했다. 나라스 최초로 여성 CEO를 차지한 데보라 듀건(Deborah Dugan)의 영향력이라는 게 세간의 평가다.

다만 취임 초, 편견 없는 음악 시상식을 만들겠다며 열의를 보인 그가 시상식을 열흘 앞둔 지난 16일 해임됐다. 현재 그래미 측은 '부정행위 혐의'란 간단한 코멘트 외에 별다른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다. 이에 미국의 유명 매거진 <롤링 스톤>은 속전속결로 진행된 해임 과정에 대해 석연찮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젊은 시선 찾기에 열을 올렸음에도 여전히 잠재한 무언의 세력 탓은 아닐지 우려스러울 뿐.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의 각축전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가 2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2019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s)에서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상'과 얼터너티브록 부문 '페이보릿 아티스트상'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미국 싱어송라이터 빌리 아일리시가 24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2019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AMAs)에서 '올해의 신인 아티스트상'과 얼터너티브록 부문 '페이보릿 아티스트상'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단연 돋보이는 건 빌리 아일리시와 리조다. 두 아티스트 모두 본상을 포함해 각각 6개, 8개 차트(최다 부분)에 노미네이트 돼 활약을 인정받았다. 그중 빌리 아일리시는 음악계의 젊은 아이콘으로 한해를 주름잡았다. 변칙적인 전자음과 생기를 잃은 목소리, 뮤직비디오를 통해 응축한 기괴하고 잔혹한 이미지 등 그의 음악은 오늘날의 청취 습관이 밝음 너머의 것을 즐기고 있음을 보여줬다. 내면의 불안정함을 적극적으로 드러낸 데뷔 음반 < When We All Fall Asleep, Where Do We Go? >은 발매와 동시에 전 세계의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그중 'Bad guy'는 릴 나스 엑스의 'Old town road'의 연승 행진을 저지하고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빌리 아일리시가 우울한 기조의 음악 트렌드를 일궜다면 리조는 여성 인권을 대표했다. 흑인이자 플러스 사이즈 여성으로 목소리 키워 전파한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발언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커버를 꾸린 그의 음반 < Cuz I Love You >의 중심 동력이다.

1970년대의 펑키(Funky)함이 살아있는 'Juice', 제목부터 지향점이 선명한 'Like a girl' 등 좋은 싱글이 많지만 아무래도 올해의 그는 'Truth hurts'로 기억되어야 한다. 2017년 발매된 곡으로 이후 틱톡과 넷플릭스의 한 인기 프로그램에 사용되며 다시 주목 받았고 그 이유로 2019년 제작된 정규 음반에 소환됐다. 선연히 빛나는 자존감 강한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로 비연속 7주간 싱글차트 정상에 올랐다.
 
시대성 or 구색 맞추기?!

작년 'Old town road'로 싱글차트 19주 연속 1위를 이어가며 새 역사를 쓴 신생 래퍼 릴 나스 엑스는 올해의 싱글을 제외한 본상 3개 부문에 안착했다. 음악의 완성도가 탄탄하지 않음에도 6개 부분의 후보로 지명된 건 그가 틱톡과 밈을 적극 활용해 새 시대의 대중음악 소비 구조를 정확히 가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미네이트가 수상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유독 그래미와 인연이 없던 포스트 말론은 스와 리와 함께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수록곡 'Sunflower'로 올해에는 단 한 부분, '올해의 레코드'에서만 발자취를 남겼다.
 
후보군의 증가로 다양성은 확보됐지만 어쩐지 구색 맞추기의 냄새도 난다. 미국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날을 가감 없이 드러낸 라나 델레이부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본상 후보로 꼽히며 주목받은 알앤비 흑인 뮤지션 허(H.E.R), 마찬가지로 신인상 후보에 대거 포진된 흑인, 여성 펑크/소울 그룹의 존재는 수상보단 군집에 더 큰 의의를 두어야 할 듯싶다. 그 와중 기존의 취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유 있는 노미네이트도 있는데 컨트리 뮤지션 브랜디 칼라일이나 영화 <스타 이즈 본>의 사운드 트랙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등이 그렇다. 다양한 선택지만큼 다양한 수상이 이뤄지길!
 
공연

결성 50주년을 맞아 에어로스미스가 오랜 만에 그래미 시상식을 찾는다. 런 DMC와 함께 록과 힙합의 완벽한 화학작용을 선보였던 'Walk this way'를 부를 예정이라 하니 노래에 익숙지 않은 사람은 런 DMC 판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해체 이후 6년 만에 복귀한 조나스 브라더스의 무대도 빼놓을 수 없다. 컴백과 동시에 그간의 쉬어감을 완벽 상쇄할 히트 싱글 'Sucker'를 획득한 저력을 직접 확인해보자.
 
이외에도 이제 국내에서는 영화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부른 뮤지션으로 더 알려진 데미 로바토, 연인인 블레이크 쉘튼과 합동 공연을 펼칠 그웬 스테파니, 불꽃 튀는 접전이 예상되는 리조, 빌리 아일리시 등 레전드와 신인을 아우른 퍼포머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그래미의 기대감을 높인다. 즐길 거리와 볼거리에 더해 과연 이번 시상식은 명예로운 상의 무게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일단은 두고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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