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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바야흐로 9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동네엔 여러 사람들의 명함이 나뒹굴고, 저마다 내가 적임자라며 이야기하는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4년 전, 내가 그랬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입인사 16호로 입당해 국회의원이 되고자 최선을 다했다. 결과는 낙선, 실패였다. 하지만 그 '낙선'이라는 결과보다 더 크게 다가왔던 것은 바로 돈, 경제적 채무였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편하다. 굳이 일일이 들춰내 불편한 현실을 알리는 것을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실패와 실제 '선수'로 뛰어도 똑바로 말해주지 않는 정치 현실에 대해 누군가는 제대로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겪었던 실패와 실수의 과정들을 또 다른 누군가는 반복하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레 이 '낙선자 일기'를 연재한다.
 
20대 총선 당시 부산사하구을에 출마했던 오창석 후보의 선거비용 보전지급액 결정조서.
 20대 총선 당시 부산사하구을에 출마했던 오창석 후보의 선거비용 보전지급액 결정조서.
ⓒ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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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야기는 현실적인 선거 비용 중 선거에 뛰어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먼저, 첨부된 사진의 금액만 보고 놀라시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138,369,654원. 1억3800만 원 상당. 내가 선거에 뛰어 들기전에 주로 들었던 말들은 이랬다. "요즘 선거는 돈 들지 않아" "15%만 넘기면 가욋돈은 들지 않아."

웃기는 소리였다. 아니다, 정확히는 웃기지도 않는 소리였다. 선거는 여전히 돈이 많이 들고, 첨부된 사진에 나와 있는 빨간 박스 안의 현실적인 금액과 여기 적혀 있지 않은 가욋돈은 비단 청년뿐만 아니라 여러 후보자들을 힘들게 한다. 줄일 수 있는 부분은 줄여야 한다.

정치인이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면, 돈에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결국 우리 세상은 혼탁해진다. 이 반복된 악의 고리가 끊겨야 하는데, 단번에 바뀌진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또 하나씩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1. 첫 번째 관문, 기탁금
 
20대 총선 부산사하구을에 출마했던 오창석 후보의 첫 유세 모습.
 20대 총선 부산사하구을에 출마했던 오창석 후보의 첫 유세 모습.
ⓒ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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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공식 국회의원 후보자가 된 사람은 선거관리위원회에 1500만 원의 기탁금을 내야 한다. 예비후보 등록을 할 때는 금액이 300만 원이다. 지금 여러분의 동네에서 명함을 나눠주며, "국회의원 후보 XXX입니다"라고 말을 하는 모든 사람은 선관위에 300만 원을 낸 사람들이다. 이들 중 본 후보가 된 사람은 1500만 원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중, 15% 득표율을 넘긴 사람만이 이 금액을 전액 반환받게 된다. 득표율 10%는 반액을 반환받으며, 그 이하로 득표하는 사람은 반환받지 못한다. 기성 정당, 그러니까 거대 양당으로 분류되는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정도의 후보가 아니라면 기탁금 반환부터 거대한 도전을 받으며 시작하는 것이다. 참고로 나는 26.5% 득표율을 얻어, 100% 반환 대상이 됐다.

예비 후보자 신청서류는 (1) 예비후보자등록신청서 1부 (2) 가족관계증명서 상세증명서 1부 (3) 사직 당시 재직하였던 기관장이 발행한 사직원 접수증 또는 해임증명서류 1부 (4) 전과기록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의 범죄경력 대상) (5) 학력에 관한 증명서(홍보물, 선거벽보, 선거공보 및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고자 하는 내용, 정규학력이나 국내 정규학력에 준하는 외국의 교육기관에서 이수한 학력) (6) 예비후보자의 인영신고서 1부 (7) 사진 2매(5x7cm, 전자파일 동시제출) 등이다. 이 등록 과정을 마쳐야만 사무실을 개소할 수 있고, 명함이나 문자 등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다. 그전에 하는 선거운동은 모두 불법이다.

기탁금을 내야 하는 곳이 하나 더 있다. 정당 후보자들이다. 정당 기탁금은 정당별로 다르다. 무소속은 정당이 없으니 정당 기탁금이 없다. 나는 민주당으로 출마를 했기 때문에, 민주당의 기준인 200만 원을 후보 등록비용으로 냈다. 어쨌든 여기까지 누적 금액은 예비후보자라면 현금 500만 원이고, 정식 후보자라면 현금 1700만 원이다.

2. 예비경선
 
20대 총선 선거유세 당시 모습.
 20대 총선 선거유세 당시 모습.
ⓒ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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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러분의 동네에서 똑같은 정당인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애쓰고 있다면 그들은 정당 내 경선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올해 4월 15일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 아직은 '본 후보'가 되지 못한 예비후보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본 후보란, 선거철마다 동네에 붙는 선관위가 주관하는 비닐 속에 쌓여 벽보에 붙는, 투표용지에 이름이 인쇄되는 진짜 국회의원 후보라고 할 수 있다. 그 본 후보가 되기 위해 예비후보들이 사전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내 경선은 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말 그대로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 후보자 단 한명을 배출해내는 과정이다. 1명이 나와서 그대로 공천을 받는 단수 공천이 있기도 하지만, 보통은 2명 이상의 후보가 나와 예비 경선을 펼친다. 내가 실제 거쳤던 예비경선 방식은 ARS업체에 등록을 해서 유무선 전화를 통해 선호도 조사를 하는 것이었다. 난 77.13% vs 42.13%의 결과로 승리했다.

중요한 것은 이 ARS 업체에 등록하는 비용이다. 내가 냈던 금액은 1500만 원이었다. 이 금액은 내가 예비경선에서 승리해도 돌려받지 못한다. 업체에 의뢰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패배한 사람은? 지금까지 썼던 모든 선거비용과 함께 돈만 날린 결과를 얻게 된다. 여기서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기도 전에 첫 번째 패배자들이 등장하며, 돌이킬 수 없는 금액 지출이 시작된다.

위에서 단수공천이 1명만 등록했을 때라고 가정했지만, 내가 출마했던 부산 사하을에서는 여러 명이 등장했을 때도 이뤄졌다.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 있었던 일인데, 조경태 예비후보와 그 외 다른 여러 후보들이 있었지만, 별 다른 예비 경선 없이 조경태 후보가 단수 공천을 받았다.

흔히 말하는 전략 공천은 정당에서 특정 사람에게 곧바로 국회의원 본 후보 자격을 주는 것이다. 현역이 갑자기 빠지거나 문제가 생긴 이른바 사고지역구, 또 대선 후보급이나 중량감 있는 인사가 있는 격전지에서 이 전략공천을 쓴다. 다른 과정이 없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방식이라 비판을 받을 때도 있지만, 전략 공천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선거는 전쟁이며 지고 나면 유권자의 바람마저 날아가기 때문에 정당은 이 전략 공천을 최소화하려고 하면서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전략 공천을 완전 없애는 것엔 나도 반대한다. 과정만을 중시해서 결과를 도외시한다면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회 의석 3분의 1정도로 한국당이 국회에서 저렇게 몽니를 부리는 것을 보라. 정치는 현실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최소화되길 바란다.

여기까지 금액을 정리해보자. 선관위 기탁금을 본 후보가 내는 1500만 원으로 가정하고, 정당 기탁금 200만 원, 그리고 예비경선 ARS 업체 비용 1500만 원까지 더하면 3200만 원이 든다. 예비경선까지만 국회의원 후보는 현금 3200만 원을 쓰는 것이다. 할부? 그런 것은 없다. 카드를 쓰는 것도 아니라 그 큰 금액을 쓰면서도 포인트 적립도 없는 오로지 '현금 박치기'다. 이렇게 시작과 동시에 현금 3200만 원은 공중분해가 된다. 그래서 서두에서 말했다. 비단 청년만이 힘든 것이 아니라고.

3. 선거 사무실 비용

사무실은 지역별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한때 유행했던 데이비드 리카도 아저씨의 차액지대론 뭐 그런 것까지 말하지 않아도 지역별로 부동산 가격은 다르며 같은 지역구내에서도 역세권과 전망이 좋은 곳, 신축과 교차로 주변 등등의 '입지'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보통 후보는 자신이 출마하고자 하는 지역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사무실을 두려고 한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서 평상시 가장 잘 노출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아야만 선거운동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은 후보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위치에 있어야만 오다가다 지역 주민들이 쉽게 볼 수 있으며 그건 곧 상시적 선거운동이 된다. 사무실 위치도, 사무실 외벽에 내걸린 거대한 현수막도 선거운동 과정이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같은 지역에서도 가격이 비싼 곳에 선거 사무실을 개소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나는 부산 사하을 지역구 내의 장림동 교차로에 사무실을 얻었는데, 40일에 400만 원의 금액으로 임대했다. 워낙 급하게 진행된 상황이라 40일 정도밖에 쓰지 않았다.

하지만 12월 17일 선관위 후보 등록을 하고 12월 18일부터 선거운동에 돌입한 일반적 예비 후보라면 적어도 12월 17일까지는 이미 지역구 내에 사무실을 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될 경우, 12월 17일부터 4월 15일까지 최소, 약 4개월간의 사무실 임대료가 발생하고 이로써 상상 이상의 금액이 투입되기 시작한다.

난 회계정리가 마무리되는 4월 말일까지 사무실을 빌렸다. 다른 후보도 당락과 무관하게 4월 말까지 임대를 할 것이다. 투표 당일, 선거가 이뤄지는 그날로 사무실을 빼는 것은 시간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거 사무소 개소식 당시 모습. 40일에 400만 원 기준으로 임대했다.
 선거 사무소 개소식 당시 모습. 40일에 400만 원 기준으로 임대했다.
ⓒ 오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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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을 하면 재빠르게 후보를 등록하고 지역을 누빈 후보는 약 5개월 정도의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 내 기준 40일 400만 원에 비례한다는 막연한 가정을 해서, 5개월 150일로 가격을 환산해보자. 40일 곱하기 3.75가 150일이니 400만 원 곱하기 3.75를 하면, 딱 1500만 원이다. 내가 출마한 곳이 부산이고, 부산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해운대·서면과 같은 상시 유동인구가 많은 중심 시가지가 아니라 비교적 저렴했다. 그런데 이게 만약 서울의 후보였다면? 상상하기도 어려운 가격이 책정돼 있을 것이다.

다시 지금까지 지출한 금액을 합해보자. 예비경선 비용까지 더한 금액 3200만 원에 임대료 1500만 원까지 합하면 4700만 원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현금'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여기가 끝이 아니다. 사무실을 개소하면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지출이 있다. 사무실에 들어갈 집기류와 책상, 의자, 파티션 등과 정수기, 믹스 커피, 와이파이를 빵빵하게 터뜨려 줄 인터넷 설치와 전화 설치비용을 합하면 한 달에 사무실 유지비용이 100만 원 가까이는 치솟을 것이다. 매우 놀라운 것은 인터넷과 전화의 비용은 설치할 때보다 해약할 때 더 많이 들어간다. 보통은 2년 약정이라 해약 위약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금액을 정리해보자. 4700만 원에 한달 유지비용 100만 원씩 5개월이면 5200만 원이다. 대기업 사원의 연봉을 훨씬 웃돈다. 그걸 우린 다섯 달 안에 지불은 하되, 돌려받지 못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1편 마무리하면서 정리해보자. 지금까지 언급한 5200만 원에서 선거가 끝나고 반환받을 수 있는 금액은 자신이 15% 이상 득표했다는 가정 하에, 1500만 원밖에 없다. 사무실 비용 예비경선 비용, 집기류 임대료, 정당 기탁금은 반환받지 못한다.

3700만 원의 현금이 사라진다고 생각하고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현실의 문턱이 발생하고, 청년뿐만 아니라 다른 그 어떤 세대도 쉽게 도전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본 선거가 시작되면 더 많은 돈이 '합법'적으로 들어간다. 아직 사무실 외벽에 설치한 거대한 현수막 비용은 언급조차하지 않았고, 후보들이 나눠주는 명함 출력 비용도 포함시키지 않았다.

2편에서 계속 이어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오창석씨는 책 '스물아홉, 취업 대신 출마하다'의 저자로 지난 20대 총선 당시 부산 사하구을의 민주당 후보로 완주한 바 있습니다.


태그:#총선, #예비후보, #국회의원, #오창석, #부산사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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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더불어민주당 최연소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부산 사하(을) 시사평론가, 작가,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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