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건아와 이대성은 지난 시즌 울산 현대모비스의 우승멤버이자 국가대표 선수들이다. 두 선수는 올 시즌 농구계를 충격에 빠뜨린 2대 4 대형 트레이드를 통하여 전주 KCC로 전격 이적했다. 많은 이들은 라건아와 이대성의 가세로 KCC가 강력한 '슈퍼팀'을 구축했다는 평가와 함께 우승 후보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작 KCC는 아직 슈퍼팀이라고 할만한 압도적인 위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 SK, 안양 KGC 인삼공사에 이어 3위를 달리고 있지만, 트레이드 이전과 순위 차이는 없다. 3라운드에서만 8승을 챙기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는 듯했던 KCC는 최근 4경기에서 다시 1승 3패로 주춤하고 있다.

특히 지난 10일 선두 SK와의 대결에서는 베스트 전력을 모두 가동하고도 무려 26점 차(78-104)의 일방적인 참패를 당했다. 지난달 27일 군산에서 21점 차로 완승(85-64)했을때와는 정반대의 결과로 '잠실학생체육관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 7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의 경기. 4쿼터 현대모비스 라건아가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라건아가 자유투를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공교롭게도 최근 4경기에서 라건아는 14점 7.3리바운드에 그쳤고 전매특허인 더블-더블(득점-리바운드)을 한 번도 달성하지 못했다. 이대성은 부상으로 한동안 전력에서 이탈했다가 4일 원주 DB전부터 복귀했는데 하필이면 그가 돌아오자마자 KCC는 다시 부진에 빠졌다. 이대성은 SK전에서 복귀 후 최다인 23점을 올렸지만 경기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라건아와 이대성은 경기흐름을 바꿀 수 있는 에이스 유형의 선수들이지만 KCC 시스템에는 여전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의 부진을 두 선수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트레이드 당시 기대했던 만큼의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 다른 선수들과의 시너지 효과가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KCC의 고민이다.

모비스 시절만 해도 압도적인 원투펀치를 형성했던 라건아와 이대성이 KCC에서는 위력이 반감된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팀 내 비중과 전술적 차이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두 선수는 유재학 감독이 이끌던 모비스에서 자신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익숙했다.

유재학 감독은 흔히 수비와 규율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이미지로 알려졌지만, 의외로 신뢰하는 선수들에게는 플레이의 개성과 자유도를 상당히 보장하는 편이다. 라건아는 모비스 초창기만 해도 백업멤버 시절을 거쳐 리그를 대표하는 엘리트 빅맨으로 거듭났고, 이대성도 초반의 적응기를 딛고 KBL에서 보기 드문 장신 가드로 성장했다. 두 선수는 개인능력도 있었지만 결국 '모비스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에 더 빛날 수 있었던 최대의 수혜자였다.

이는 모비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 잡은 양동근과 함지훈의 경우를 봐도 알 수 있다. 양동근은 프로 초창기만 해도 포인트가드로서 패스와 경기조율 능력이 떨어지는 어정쩡한 듀얼가드라는 평가가 많았다. 함지훈은 토종빅맨으로서 프로무대에서 통하기에는 부족한 사이즈와 운동능력이 큰 약점으로 꼽혔다. 하지만 유 감독은 두 선수의 탁월한 농구이해도와 전술소화능력을 극대화하여 모비스 시스템의 기둥으로 활용했다. 두 선수가 만일 모비스가 아닌 다른 팀에서도 이 정도의 활약을 보여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반면 모비스에서 정점을 찍었으나 정작 이적후에 거품이 걷히며 몰락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김효범이다. 이대성과도 자주 비교되는 김효범은 모비스에서 우승멤버이자 KBL 정상급 슈팅가드로 활약했으나 FA자격을 얻어 SK로 이적한 이후 서서히 하향세를 탔고 벤치멤버로 전락했다가 말년에 모비스로 다시 복귀하여 은퇴했다. 김효범이 한창 주가를 높이던 시절에는 유 감독이 김효범의 창의성을 지나치게 억누른다는 비판도 많았으나, 이후 김효범의 부족한 농구지능과 다른 단점들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모비스 시스템이 재평가받는 계기가 됐다.

현재의 KCC는 라건아와 이대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팀이 아니다. 전창진 감독은 빅맨과 가드를 활용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대성은 볼을 오래 소유하면서 경기를 주도해가야 할 스타일이고 모비스에서는 1번과 2번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었지만, 전창진 감독은 이대성이 좀 더 정통 2번에 가까운 역할을 수행하기를 원하고 있다. 모비스에서는 이타적인 성향의 리더인 양동근의 배려와 조율이 있었기에 호흡이 잘 맞았지만, 반면 KCC에서는 공격적인 플레이에 익숙한 이정현-송교창 등과 역할 배분이 잘 되지 않고 있다.
 
  12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KBL 전주 KCC와 창원 LG의 경기. KCC 이대성이 돌파하고 있다.

이대성이 돌파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한 라건아는 모비스-삼성 시절에 비교하면 동료들의 지원을 잘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장제한이 폐지되면서 라건아보다 더 크고 슛이 좋은 외국인 선수들이 늘어 난데다, KCC에서는 수비와 팀플레이에서 더 희생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라건아의 체력적 부담을 덜어줘야 할 찰스 로드가 노쇠화 조짐을 보이며 없느니만 못한 활약을 보이고 있는데다 KCC의 토종 빅맨진도 리그 최하위권 수준이다. 라건아가 이래저래 플레이에 흥이 나기 어려운 상황이다.

KCC는 겉보기에 화려한 베스트멤버를 보유한 것 같지만 사실 포지션 밸런스가 생각보다 좋은 팀이 아니다. SK전처럼 약점인 3-4번 포지션이 두텁지않고  수비에서 지역방어가 뚫리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흔하다. 특히 공격형과 수비형 라인업간의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여 전창진 감독이 선수교체 때마다 주전들의 로테이션을 가늠하는데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론 KCC는 정규리그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플레이오프 우승을 노리는 팀이다. 시즌중에 대형 트레이드를 통한 개편이 이루어진 만큼 선수들간 적응 기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KCC가 우승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플레이오프까지 라건아와 이대성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재정비해야한다. 전창진 감독의 리더십과 전술적 역량에 달려있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라건아이대성 전주KCC 전창진감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