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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가운데 검찰은 임기 내내 청와대 참모들과 대통령의 친인척들, 후원자와 측근들을 집요하게 공격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추진한 대가로 생각하고 묵묵히 받아들였다. 그런데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 주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자 검찰은 정치적 중립은 물론이요 정치적 독립마저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러한 제도 개혁을 하지 않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퇴임한 후 나와 동지들이 검찰에서 당한 모욕과 박해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한 대가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274~275페이지)를 통해 참여정부 당시 검찰을 개혁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검찰의 독립을 위한 참여정부의 여러 노력들은 결과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검찰을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시키려는 노 전 대통령의 '선의'는 훗날 '모욕'과 '박해'로 돌아왔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움켜쥔 검찰의 생리를 간과했던 대가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오판을 이렇게 술회한다. '미련한 짓'이었다고.

제도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은 검찰개혁의 한계 
 
 2006년 1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 모두연설을 하고 있다.
 2006년 1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내외신 기자회견 모두연설을 하고 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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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설치하지 않은 것을 검찰개혁이 실패한 원인으로 꼽았다. 제도 개혁이 뒷받침되지 않는 검찰개혁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스스로의 자정과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뿐더러, 검찰이나 법무부의 자체 개혁안이 나온다 해도 정권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수처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친구이자 정치적 동지였던 문 대통령에게 검찰개혁은 거부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노무현'의 좌절과 비극을 가까이서 목도한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제도 개혁을 검찰개혁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중 공수처는 문 대통령의 대선공약 1호로 검찰개혁의 핵심이자 상징이었다.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비리를 전담해 전문적으로 수사하는 조직이다. 그간 검찰이 도맡아왔던 고위공직자 비리를 별도의 기관인 공수처를 통해 공정하고 엄격하게 수사하자는 취지다.

공수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권력을 견제하고 분산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주목받아왔다. 1996년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가 공수처 도입을 골자로 하는 '부패방지법'을 발의한 이후,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오랜 화두가 됐다.

공수처 논의의 시작은 검찰로부터 출발한다. 정의의 수호자가 돼야 할 검찰은 고위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앞에서 무력하기 일쑤였고, 자신들의 비리는 은폐-비호하는 등 사정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김학의 사건'을 들여다보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폭력 사건'은 검찰의 직무유기와 극에 달한 제 식구 감싸기 행태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11월 22일 김 전 차관에 대한 1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일부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일부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소 판결을 내렸다. 원주 별장 등지에서 받았다는 성접대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 판결을 내렸다. 동영상 속 남성은 김 전 차관이 맞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돼 죄를 물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검찰의 행태다. 별장 성접대 의혹이 불거진 지난 2013년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은 김 전 차관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검찰은 김 전 차관을 고소한 여성들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2014년 피해여성의 고소로 두 번째 검찰 수사가 진행됐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검찰은 확실한 물증인 성접대 동영상과 피해자 진술 등 구체적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새로운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또다시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김 전 차관은 2019년 특별수사단의 재수사로 세 번째 수사만에 구속됐다. 그러나 앞서 두 차례에 걸친 검찰의 부실수사와 공소시효의 벽을 넘지 못한 채 결국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기에 이른다. 김 전 차관에게 성접대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있는 윤중천씨 역시 공소시효를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검찰은 2013년 윤씨를 수사했는데 성접대 문제에 관해 전부 판단하지 않고 고소된 성폭력 범죄만 판단해 대부분 불기소했다. 윤씨의 뇌물 공여는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이제 검찰은 성접대 부분은 윤씨가 강간행위를 한 것이고, 그로 인해 피해여성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입었다고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다. 2013년 검찰이 적절히 공소권을 행사했다면 그 무렵 윤씨는 적정한 혐의로 법정에 섰을 것이다."

윤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던 당시 재판부가 검찰의 초기 부실 수사를 신랄하게 꼬집은 내용이다. 만약 검찰이 최초 의혹이 불거진 2013년 '별장 성접대 사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영상에 선명하게 얼굴이 드러난 누군가가 처벌을 피하는 황당한 결말은 피할 수 있었을 터다.

한편 '김학의 사건'은 검찰의 봐주기-부실 수사 논란 외에도 경찰의 사건 수사를 막으려는 박근혜 청와대의 외압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경찰은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을 김 전 차관으로 특정하고 수사에 착수했지만, 박근혜 청와대의 내사 방해와 외압 행사 의혹이 제기된 것.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라인이 전원 교체되면서 이같은 의구심은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이 의혹 역시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했던 특별수사단은 지난해 6월 4일 관련 의혹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리를 내렸다. 특수단은 또한 김학의 사건에 연루돼 있던 검찰 고위 간부와 당시 수사지휘라인 검사들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동안 검찰수사와 관련해 끊임없이 제기돼왔던 문제들이 이 사건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고위공직자 범죄에 대한 부실-축소 수사, 내부 비리에 대한 비호와 제 식구 감싸기, 청와대 등 권력과의 유착 의혹 등이 '김학의 사건'에 총망라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일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 새정치국민회의가 공수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부패방지법'을 발의한 이후 지금까지 권력형 비리 사건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다.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 검사 성폭행 사건, 공문서 위조 사건 등 검찰 내부 범죄와 비리 역시 지속적으로 불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권력형 비리 사건과 검찰 내부의 부정부패 사건의 진상은 유야무야 돼는 경우가 많았다. 사건을 담당했던 검찰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부실-축소 등 봐주기 수사를 하면서 실체 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와 기소권 행사를 두고 각종 시비가 끊이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12월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수처법은 검찰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이 만들어낸 법안이라 볼 수 있다. 검찰 수사의 한계와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기구를 통해 권력형 비리를 전담 수사하고, 비대해진 검찰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셈이다.

물론 공수처가 도입된다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 터다. 공수처가 검찰의 사정기능을 약화시키는 또 하나의 권력기관이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고, 공수처의 정보 독점과 그에 따른 권력 남용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과 언론은 공수처를 문 대통령의 친위부대이자 좌파정권의 집권연장을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수처 법안 통과가 시사하는 바는 대단히 크다. 검찰의 수사-기소권 오남용과 조직이기주의의 폐해가 극심하다는 점에서, 제도 개혁을 통한 검찰개혁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수처 도입을 바라는 시민의 오래된 열망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1996년 부패방지법이 발의된 지 23년만에 공수처법이 통과됐다.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치적 이해관계와 당리당략이 발목을 잡았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오랜 공전 끝에 마침내 시대적 과제라 평가받던 공수처 설치를 목전에 두고 있다.

정치적 욕망을 과감히 내려놓고 검찰의 독립과 중립을 보장해주었던 노 전 대통령의 헌신, 참여정부의 쓰라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문 대통령의 의지가 다수 시민의 숙원이던 공수처 법안 통과의 밑바탕이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는 7월 출범할 예정인 공수처가 사회 정의와 공의를 위한 조직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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