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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리 지명을 받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총리 지명을 받은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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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7~8일로 확정됐다. 인사청문회는 후보자 자질과 능력을 평가하는 자리다. 한국당은 날선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 후보자를 내정하면서 "국민을 하나로 모으고, 민생경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낼 적임자"라고 했다. 정 후보자는 이제 증인석에서 자신을 알려야 한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法言)" 청문회에 앞서 정세균의 철학과 가치관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관전 포인트다. 저서 4권을 중심으로 정세균의 말과 글을 짚어본다.

배고픔에서 눈 뜬 정치

"적어도 밥은 먹게 하고, 학교는 다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

등굣길에 학교를 포기한 친구와 지나치며 이런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은 훗날 그를 정치로 이끌었다. 그의 별명은 '진촌'이다. 출생지 진안에다 촌놈을 결합한 애칭이다. 다른 뜻은 '진짜 촌놈'이다. 책은 지게지고 나무 베고 배고픔을 달랜 흔적을 담았다. 중학교는 제때 가지 못해 검정고시로 입학했다. 고등학교도 세 곳이나 전전했다. 최종 졸업은 인문계 전주신흥고다. 돈 때문이다. 다행히 학비는 면제 받았지만 생활비가 문제였다. 학교 매점에서 일했고, '빵돌이'란 별명도 얻었다. 대학도 입주과외로 마쳤다. 배고픈 설움을 알기에 누구보다 사회적 약자를 헤아린다고 적고 있다.

정치인은 정직한 사회 만들어야

"나는 정치인이다. 거울에 비춰 한 점 부끄럼 없는 정직을 실천하는 목회자가 아니라, 정직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방법을 강구하는 정치인이 되어야 한다.<정치 에너지2.0>"

정치인으로서 역할을 명확하게 언급한 대목이다.

같은 책에 언급한 '진이의 편지'. 2008년 10월 강남 고시원에 참사가 있었다. 한 젊은이가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렀다. 여섯 명이 숨지고 세 명이 크게 다쳤다. 당시 스물 둘, 대학생 진이도 목숨을 잃었다. 진이는 "언젠가 우리도 다른 집처럼 주말엔 나들이하고 외식도 할 수 있겠지?"라는 편지를 남겼다.

"저 소박한 소망을 이루는 게 그리도 힘든 세상이 된 데 대해 책임감을 느낀다. 개인적인 근면과 정직을 내세우기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 정치가에게는 더 중하다"는 대목에서 정치란 무엇인가를 돌아보게 한다.

부의 균등보다 기회의 균등이 중요

"부의 편중보다 훨씬 해롭고 정의롭지 못한 것이 기회의 편중이다.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치는 시민들에게 공동체에 대한 존경과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없다.<정치 에너지 2.0>"

공정한 기회와 사회통합을 강조한 대목이다.

<99%를 위한 분수경제>에서도 이런 신념은 반복된다. "결과의 불평등은 다음 세대에게 경쟁의 출발선을 다르게 만들어 기회의 평등까지 해칠 수 있다." "적어도 학교는 다니게 해줘야 한다"던 생각과 맞닿아 있다. 40년째 고향 아이들을 돌보는 이유도 그렇다.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자는 생각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책상을 버리고 현장으로

"일하다가 접시를 깬 사람은 용서하겠지만 일을 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낀 사람은 용서하지 않겠다.<나의 접시에는 먼지가 끼지 않는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마치고 쓴 책이다. 취임식에선 "힘센 장관이 아니라 힘 있게 일하는 장관이 되겠다"고 했다. 그 말대로 공직자들 기를 세우고, 현장으로 갔다. 수출 3200억 달러는 그 결과물이다.

정 후보자는 책상보다 현장을 중시한다. 종합상사 맨으로 수출 전선에 선 경험이 바탕이다. 산자부장관으로 정책 집행을 통해 실용주의를 강화시켰다. 재임 당시 회의실마다 실학자들 호(號)를 붙였다. 연암실(박지원), 혜강실(최한기), 다산실(정약용), 담헌실(홍대용) 등이다.

12년 전 출간한 책에는 대일 무역 역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부품과 소재 산업 육성을 강조한 대목이 눈에 뜨인다. 올해 수출규제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것을 생각하면 선견지명이다.

낙수경제는 무책임하고 몰염치

"이제는 소외와 희생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강자는 더욱 강하게, 약자는 더욱 의존적으로 만드는 낙수경제는 정치적으로 무책임하고 인간적으로 몰염치하다."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등 경제 하층부에 실질적인 혜택을 주어 그 효과가 분수처럼 위로 솟구쳐 올라 경제 전체로 퍼져가게 하는 분수경제가 그 해답이다."<99%를 위한 분수경제>


낙수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분수경제 철학을 앞세웠다. 사회통합과 공동체 회복은 답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사회통합이다. 경쟁은 불가피하게 사회적 불평등을 낳는다. 이런 결점을 보완하는 장치가 없을 때 사회는 건강하게 유지되기 어렵고, 사회 공동체는 붕괴할 위험에 처한다. 경쟁 속에서도 사회통합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질 좋은 성장과 희망한국>"

사회적 시민권으로서 복지, 일자리를 통한 복지, 기회 균등을 통한 복지는 거론한 정 후보자는 책에서 "정부가 역기능을 규제하고 균형적인 발전을 꾀해야 한다"며 정부 역할을 주장했다.

대한민국이 빨리 망하게 될 이유?

장관 재직 당시 과장급 간부 200여명과 혁신 연찬회를 가졌다. 주제는 '산업자원부가 빨리 망하게 될 이유.' 역설적으로 방법을 고민해보자는 취지였다.

지금 우리사회는 적지 않은 위기에 노출돼 있다. 정치 갈등과 국론 분열, 그리고 북핵 협상은 답보상태에 있다. 중소기업과 자영업도 어렵다. 출산율은 최저 수준이며 지역 불균형도 심각하다. '대한민국이 빨리 망하게 될 이유'를 놓고 치열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정 후보자는 관리형 정치인 이미지가 강하다. 책임총리로서 결기와 강단이 필요한 시기이다. 땀 흘린 만큼 공정한 기회가 부여되는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면 대통령, 친문세력도 설득해야 한다. <나의 접시에는~> 책에서 그는 "협상과 조정이 불가피한데, 이상하게도 서로 타협하거나 상대 의견을 조금이라도 수용하면 패배라는 인식이 있다"고 적었다. 국정운영에서도 이런 각오로 임해야 함은 물론이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정치

"마흔을 훌쩍 넘어 중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어머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는 농촌의 사내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 와서 고운 손을 버려 가며 농부의 아내로 살아가는 이국의 아낙들을 보면 눈물이 난다."

<정치 에너지 2.0>은 농촌 총각과 다문화 여성을 대하는 시선을 담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시선은 정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네루는 "국민의 눈물을 닦아 주는 게 정치"라고 했다. 그런 가슴과 역량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게 이번 인사청문회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북대학교 초빙교수로 전 국회 부대변입니다.


태그:#총리인사청문회, #통합과 공동체 회복, #정세균 총리 후보,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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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인문, 여행, 한일 근대사, 중남미, 중동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남미를 여러차례 다녀왔고 관련 서적도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편향된 중동 문제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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