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토브리그', 도서 '머니볼'

드라마 '스토브리그', 도서 '머니볼' ⓒ SBS, 비즈니스맵

 
브래드 피트 주연의 동명 영화로 제작된 마이클 루이스의 저서 <머니볼>는 경영학 서적이지만 야구팬들에게 친숙한 책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최다승을 달성하며 돌풍을 일으킨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을 통해 '돈=승리'로 귀결되던 기존 프로스포츠의 고정관념을 깨뜨린 야구단 운영 철학을 실화에 기반을 두고 설명한다.  

과거 홈런, 평균자책점 등 일반적인 기록에만 머물던 시각에서 벗어나 출루율, WAR(대체선수 승리기여도) 등 세부 수치를 상세히 분석해 '저비용 고효율'로 선수단을 구축해 강팀으로 키우는 이른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기반 팀 구축은 메이저리그 뿐만 아니라 국내 프로야구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치고 있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는 <머니볼>의 영향력이 짙게 드리워진 '한국판 머니볼'로 불러도 좋을 만큼, 기존 스포츠 드라마와는 차별화된 구성으로 첫회부터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는데 성공했다. 

돋보이는 야구단 세부 묘사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 SBS

 
극중 드림즈 구단은 만년 하위를 전전하며 올시즌엔 100패를 넘기는 등 민망한 성적을 기록하는 팀이다. 그룹의 지원은 빈약하고 팀 내부에선 파벌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영구 결번을 노리는 간판 타자 임동규(조한선 분)는 개인 성적만 잘 올릴 뿐 팀의 성적과 케미스트리엔 되려 약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한마디로 '콩가루' 상황에 놓인 드림즈에 야구와는 무관해보이는 경력의 소유자 백승수(남궁민 분)가 새롭게 단장으로 부임한다. 임동규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파격 경영은 드라마 1-2회의 큰 축을 담당한다.  

과거에도 야구단 혹은 야구 선수를 소재로 그린 영화, 드라마들은 무수히 많았지만, 대개 야구는 이야기를 진행하는 곁가지 소재로 쓰이는 데 그치곤 했다. 그런데 <스토브리그>는 기존 스포츠 소재 작품과 180도 다른 방향성을 드러낸다.   

선수보단 구단 경영의 일선에서 일하는 프런트 직원들을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야구 마니아가 아니면 생소할 세이버메트릭스 기반의 팀 운영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라기엔 민망한 수준의 수비 실책 남발 장면은 실제 KBO 하위팀들을 연상케하면서 해당 구단 팬들의 감정이입도 끌어냈다. 

트레이드 물망에 오른 임동규가 단장의 차량을 박살내는 내용은 과거 A구단 스타 선수의 실화를 떠올리게 할만큼 사전 조사 측면에서도 치밀함을 엿볼 수 있다. 세트 구성 또한 실제 SK와이번스 구단 사무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모습이라 감탄을 부른다. 

남궁민은 빌리 빈이 될 수 있을까?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 SBS

 
소위 '스몰마켓팀'으로 불리는 가난한 구단이 뉴욕양키스 같은 부자 구단을 똑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걸 깨우친 빌리 빈 단장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오클랜드의 체질 개선에 나선다.  

출루율처럼 당시로선 가치가 소흘하게 대접받던 기록에 중점을 두고 적은 비용(연봉)으로도 많은 득점을 올릴 수 있는 선수 중심의 운영을 이끌게 된다. 포수로선 효용성이 떨어진 노장 스캇 해티버그(영화에선 '가오갤' 크리스 프랫이 맡았다)를 출루율 하나만 믿고 과감히 1루수로 전향시켜 재미를 보는 등 2000년대 오클랜드의 운영은 파격 그 자체였다. 

드라마 <스토브리그>도 <머니볼> 속 오클랜드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냉정히 말하면 남궁민을 제외한 다른 배우들의 인적 구성은 마치 클린업 트리오 혹은 선발투수진 열세의 야구단마냥 무게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대신 인지도는 적지만 연기력만큼은 확실한 배우들을 포진시켰다. <동백꽃 필 무렵>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확실하게 소화하는 오정세를 비롯해서 이준혁, 홍기준, 이얼 등의 활용은 <머니볼>식 드라마 캐스팅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물론 일부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허술한 측면도 목격된다. 이미 사장된 기록이나 다름없는 '승리타점'에 큰 비중을 두고 백 단장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한다든지 현행 KBO 규정상 불가능한 신인 지명권 양도(주: 2020년 시즌부터 가능토록 조항 개정) 등을 두고 타구단과 거래 하는 식의 내용은 실제 프로야구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  

또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시작한 백 단장의 등장을 1~2화에서 크게 부각시킨데 반해 팀내 2군 유망주 현황도 모르는 운영팀장을 비롯해 기존 구단 직원 상당수를 무능력한 존재로만 그려내는 건 최하위팀+극적 재미를 키우기 위한 장치임을 감안하더라도 다소 과장된 화법으로 읽힐 수 있다. 

불공정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스토브리그>만의 기술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극중 드림즈 유니폼은 '머니볼'의 모델이 된 MLB 오클랜드팀 유니폼과 유사하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한 장면. 극중 드림즈 유니폼은 '머니볼'의 모델이 된 MLB 오클랜드팀 유니폼과 유사하다 ⓒ SBS

 
<머니볼>의 부제는 '불공정한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기술(The Art of Winning an Unfair Game)'이다. 사치세가 있긴 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는 샐러리캡(선수단 연봉총액 상한선)이 적용되지 않는 스포츠이다. 팀에게 확실한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강타자, 투수를 거액 비용을 들여 영입해 우승 전력을 갖추는 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구단은 몇 되지 않는다. 그외의 재정 열악한 팀의 입장에선 이건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달리 말해 구단의 재력 유무가 성적을 일찌감치 결정하는 도구가 된다면 자연스레 해당 리그는 불공정한 시합처럼 굴러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야구계 현실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세이버 매트릭스에 기반을 둔 <머니볼> 이론의 등장이었다. 실제 <머니볼>속 오클랜드 구단은 MLB 우승은 여전히 차지하지 못하고 있지만(이 팀의 마지막 월드시리즈 우승은 1989년이다) 꾸준히 성적을 올리면서 열악한 상황을 극복해나간다.   

<스토브리그>만 해도 전작 < 베가본드 >와 비교하면 소박한 구성의 드라마가 아닐 수 없다. 대신 <머니볼>의 운영 철학마냥 <스토브리그> 역시 남들과는 다른 방향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만드는 생존 전략을 마련한 듯하다. 시청자에게 신뢰감을 선사하고 안정적인 시청률을 보장해주는 배우 남궁민을 중심에 배치하고 기존 스포츠 드라마의 틀을 깨며 흥미를 키워나가는 것으로 말이다.   

일단 1~2화의 내용으론 리그(드라마) 판도를 흔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시즌 중반만 되면 맥을 못추는 극중 '4번타자 임동규'처럼 되지만 않는다면 <스토브리그>는 드라마계의 포스트시즌 승자가 될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스토브리그 남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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