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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도 12월에 접어드니 이제 한해도 다 가는구나 하는 소회가 든다. 해마다 1월을 시작할 때는 무언가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지만 12월이 오면 그냥 보낸 것 같아 아쉬워지는 것이다. 더욱이 점점 나이가 많이 들수록 한해 한해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세월의 덧없음을 절감하게 된다.

마침 집의 책을 정리하다 보니 오래된 자그만 책자 한권이 눈에 들어오는데, 법정(法頂) 스님이 쓴 '무소유(無所有)'라는 제목의 수필집이다.` 범우사에서 나온 범우문고 시리즈중에 두 번째로 나온 책인데, 1976년에 초판 발행하여 1993년에 증보판 38쇄를 하여 나온 책이다.

법정 스님이 주로 1970년대 초반에 써서 여러 잡지에 발표한 수필 35편이 실려 있는데, 그 당시에 스님의 글이 인기가 좋아 수필집으로 모아 낸 것이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에 불교 써클에 나가는 친구가 법정 스님을 좋아하여, 그 친구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고 스님에 대해 알게 되었다.

'무소유' 책의 페이지를 넘기며 글을 살펴보니, 고등학교 때 알게 된 스님의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이 변함없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법정 스님의 생전의 인상과 수도생활과 글의 정갈한 느낌이 서로 어긋나지 않고, 한결같이 일관되게 풍겨져 나와 맑은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범우사에서 나온 법정스님이 쓴 책
▲ 무소유 책 범우사에서 나온 법정스님이 쓴 책
ⓒ 배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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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집의 대표 글인 '무소유'에는 스님이 아끼며 기르던 난초를 다른 사람에게 주게 된 사연을 얘기하고 있는데, 읽다보면 그 정경이 절로 그려져 미소가 흘러 나온다. 스님은 난초를 소중히 기르던 일이 집착과 소유욕을 생겨나게 만들었음을 깨닫고, 그 아끼던 난초를 주어버림으로써 무소유를 향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다.

글은 스님이 읽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무소유에 대한 상징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너무나 인상적이다.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흐름한 요포(腰布) 여섯 장,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評判) 이것뿐이오.'

스님은 간디어록의 이 구절을 보고는 간디에 비해 지금의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어 몹시 부끄러웠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스님의 솔직한 고백만이 아니라 나도 물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고, 인생에서 소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한번 더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스님은 자신이 가지고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 반드시 요긴한 물건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적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가진 것에 얽매이게 되는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것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히어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있는 것이다.'

스님은 3년 전에 거처를 옮기면서 난초 분(盆) 두 개를 선물받아 기르게 되었는데, 자신의 방에는 생물이라곤 자신과 난초뿐이어서 매우 소중하게 기르게 되었다고 한다. 난초를 기르는 서적을 찾아 읽으며 배우기도 하고, 외국산 비료를 바다 건너 부탁해 구해 주기도 하고, 여름이면 서늘하게 겨울이면 따뜻하게 정성을 쏟아 길렀다고 한다. 스님이 애지중지 난초를 잘 기른 결과 꽃도 잘 피고, 향기도 은은하게 좋았고, 잎도 청청하게 싱싱하여 방문객들이 모두 칭찬하면서 감상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외출을 나가다가 장마후 햇빛이 쨍쨍하여 밖에 내어 놓고 온 난초가 퍼뜩 떠올라 다시 돌아왔는데, 난초가 햇빛에 시들어 잎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샘물을 길어다 주면서 간신히 늘어진 잎을 세웠지만 생생한 기운이 빠져버린 것 같았는데, 이때 스님은 자신이 난초에 집착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자신이 난초를 관리한다고 자유로운 생활에 제약을 많이 받았는데, 그것이 바로 집착이고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난초처럼 말이 없는 친구가 놀러와서 그 친구에게 선듯 줘버렸는데, 3년의 정을 떼는 허전함보다는 홀가분한 해방감이 앞섰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때부터 가진 것을 하나씩 버려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난초를 통해 무소유의 의미 같은 것을 새롭게 터득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어지는 글에서 스님은 소유와 무소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밝히고 있는데, 스님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필체로 쉽게 이해되도록 기술하고 있다. 특히 역사가 소유사에서 무소유사로 방향을 바꾼다면 인간만이 아니라 나라간에도 싸우는 일이 없을 것이라면서, 주지 못해 싸운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는 구절도 덧붙이고 있는데 너무나 잘 마음에 와 닿았다.

스님은 자기가 갖는 물건을 똑같이 타인이 가질 수 없으므로 소유가 범죄처럼 생각된다는 간디의 말을 다시 인용하면서, 소유 관념에 눈이 멀어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인간은 언젠가 한 번은 육신마저 버린 채 훌훌히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니, 세상의 아무리 많은 물량일지라도 그 운명을 어떻게 바꿀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들에게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즉 무소유가 진정한 소유가 된다는 일깨움을 던져 주고 있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건으로 인해 마음을 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말씀이다. 아무 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逆理)이니까.'

스님의 이 마지막 구절은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이나, 욕심없는 마음을 욕심낸다는 노자의 말과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된다. 세상사와 인생살이의 이치를 깨우치는 것에는 종교조차도 칸막이가 없는 것 같은데, 왜 우리의 현실에서는 이런 깨우침이 그토록 어렵고 안 되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 자신도 젊어서 한때는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가난하게 무소유한 삶을 산 적이 있었는데, 셋방을 전전하며 홀로 사는 짐이 택시에 실어도 충분히 옮길 수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나이들어 가정을 이루고 이런저런 짐이 늘어나더니, 급기야 이삿짐 차를 불러 이사를 다녀야 할 정도가 되어 자주 다니는 이사에 고생해야만 했다. 또 스님의 난초처럼 화초를 좋아하여 꽃화분도 여럿 사다놓고 길렀는데, 이삿짐을 나르는 이들이 가장 싫어하고 어려워하는 짐이 바로 이 꽃화분이기도 했다.

법정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저승에 갈 때는 숟가락 하나 못 가져간다는 사실을 일찍 알고 있었지만,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에서 짐은 계속 늘어났던 것이다. 법정 스님의 글처럼 무엇을 좋아하고 아끼는 것이 바로 집착이고 소유욕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버리는 실행으로 옮겨야겠다는 마음도 생겨난다.

한해가 저무는 12월이 되니까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마음이 여려지는데, 아무래도 여려진 마음에는 이런 깨달음이 좀더 쉽게 다가오는 법이다. 이제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음미하면서 소유에 얽매이지 말고 진정한 소유는 오히려 무소유라는 자세로 2019년을 잘 마무리지어야겠다. 그리고 2020년 새해가 오면 새로운 각오로서 무소유로 정진하는 길을 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물론 작심삼일(作心三日)이 아니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태그:#법정스님, #무소유,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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