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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를 연재 중이던 지난 여름. 아이와 아이의 친구들, 그리고 그 엄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방학을 맞아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뛰어 놀고, 엄마들 역시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우기 위한 자리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인연을 맺게 된 이 엄마들은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로 돕고 지지하며 함께 해왔다. 나이를 튼 지는 이미 오래였고, 우리는 서로를 '언니', '동생' 혹은 '친구'로 대하며 지내왔다. 커피를 한 잔씩 받아들고 이야기를 하던 도중 한 엄마가 물었다.

"근데 자기 이름이 송주연이야? 얼마 전에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는데 자기가 나한테 이야기해주었던 자기 시댁 이야기가 그대로 나오는 거야. 글쓴이 이름이 '송주연'이던데, 자기 맞아?"
"앗! 글 보셨어요? 맞아요. 제 이름이 송주연이에요!"
"근데 우리 어떻게 지금까지 이름도 모르고 이렇게 지낸 걸까?"
"그래서 연재 제목이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잖아요."


에피소드 1 : "우리 이름 트자!"
   
 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던 우리들이 어느 새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던 우리들이 어느 새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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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화를 듣던 다른 엄마들도 덩달아 우리의 대화에 합류했다. 우리는 그때서야 긴 시간 동안 친하게 지내왔으면서도 서로의 이름조차 몰랐던 현실을 직면했다. 그리고 '사라진 이름'에 대한 사연들을 저마다 하나씩 털어놨다.

아이가 둘인 한 엄마는 큰 아이 모임에 가면 큰 아이 이름이 되고, 작은 아이 모임에 가면 작은 아이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했다. 아이 둘이 함께하는 모임에 나갔을 땐, 두 가지 이름으로 자신을 부르니 어떤 게 나를 부르는 호칭인지 헷갈린다고 고백했다. 전업주부인 한 엄마는 오랜만에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떼려고 이름을 적는데 자신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졌다고 털어놨다. 병원에서 호명되는 자신의 이름이 어색하게 들린다는 엄마도 있었다.

나는 온갖 소소한 집안 사정을 공유하고, 반찬까지 나누어 먹는 정말 친한 이웃집 엄마와의 일이 떠올랐다. 나는 이 이웃의 이름을 무려 7년이나 모르고 지내다, 계좌이체를 해주면서 우연히 알게 됐다.

낯선 예금주명을 보고 전화를 걸어 "언니 이름이 ○○○ 맞아요?"라고 물었을 때의 그 느낌은 7년의 우정이 무색하리만큼 어색하기만 했다.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이런 사연들을 털어놨지만, 표정엔 서글픔이 스쳐지나갔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멤버 중 한 명이 이렇게 제안했다.

"야. 이거 진짜 '웃프다'(웃기고도 슬프다). 이제 우리는 이름 부르자. 다 이름 말해봐. 이제 이름 트는 거야."

그날 모인 5명의 엄마들은 알게 된 지 수년 만에 이름을 텄다. 처음엔 어색했다. 습관처럼 아이들 이름이 먼저 튀어나오곤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반복해서 '내 이름은 ○○야' 라고 알려주고 서로를 격려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대화의 화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주로 아이들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던 우리들이 어느 새 엄마인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제야 이 엄마들과 진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에피소드 2 :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여름이 지나고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에 복학했다. 집과 일터는 대구에 있고, 학교는 서울에 있는지라 매주 2회씩 KTX로 왕복하고 있다. 새벽에 집을 나서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기 때문에 집과 기차역 사이는 주로 택시로 이동한다. 이렇게 한 학기를 다니면서 내게 말을 건네주시는 '친절한' 택시 기사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바로 이거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요?"

나는 이렇게 답한다.

"제가 서울 가는 날엔 아이 아빠가 아침 챙겨주고, 저녁에도 일찍 퇴근해요."
 

그러면 주로 이런 답변들이 돌아온다.

"아이고. 남편분이 대단하시네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멀리 살아요?"
"쯧쯧…"


그것도 아니면 별안간 이렇게 묻는다.

"왜 애는 하나 밖에 안 낳았어요? 아직 젊은데 애를 하나 더 낳아야죠."

이럴 때마다 나는 반박하고픈 말들이 입안 가득 차오른다. 하지만, 낯선 이의 사생활을 마음대로 재단하는 기사님들이 내 입장을 들어줄 것 같지는 않기에, 그저 입을 꾹 다무는 것으로 불쾌감을 전달할 뿐이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을 안고 도착한 학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직 초등학생인 내가 대구에서 통학한다는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은 대뜸 내게 이렇게 묻는다.

"그럼, 아이는 누가 봐요? 친정엄마? 시어머니?"

이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여성이라면 마땅히 엄마노릇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육아는 아빠가 아닌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즉 여성들이 맡아야 한다는 편견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드러내곤 했다.  

'나답게' 살고픈 엄마들
 
 아이가 있는 여성도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엄마이길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가 있는 여성도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엄마이길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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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재를 하면서 느꼈던 것은 위에 적은 두 에피소드 간의 간격이었다. 나는 윗세대에게 보고 자란 가부장문화의 가치관을 무의식적으로 흡수한 채 결혼을 했다. 결혼 후 몇 년 간 나는 좋은 며느리, 아내, 엄마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 결과 나는 분열되고 말았다. 특히, 엄마가 되고 나서는 내 이름조차 낯선 채로 몇 년을 지냈다. 연재에서 쓴 글들은 '엄마'라는 단어 안에 여성을 가두려는 사회 속에서 고유한 이름을 되찾고, 엄마가 아닌 한 사람으로 존중받기 위해 애써온 나의 기록이었다.

나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많은 여성들이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들은 왜 엄마들의 이름이 사라져갔는지, 왜 이토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지 함께 분노했다. 내게 댓글과 이메일 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온 독자들은 글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했지만, 이들의 공감에 나 역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일상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앞에 적었듯 서로 이름을 부르며 지내는 엄마들이 많아졌으며, 이로 인해 더욱 진한 연대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연재를 쓰는 동안 직간접적으로 만났던 여성들은 엄마로서, 주부로서, 직장인으로서 제각기 다른 상황에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마'도 엄마이기 전에 '사람'임을, 다양한 욕구와 정체성을 지닌 존재임을 존중해 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사회 전반의 시선은 여전히 답답하기만 했다. 아이를 놔두고 엄마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엄마가 아이를 돌보지 못할 때 다음 양육자는 아빠가 아닌 또 다른 여성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 여전히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엄마로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여성들을 향해 인신공격을 퍼붓는 무수히 많은 악성댓글들은 이런 사회적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었다.

연재를 하며 이 간극이 좁혀지기를 바랐다. 아이가 있는 여성도 엄마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으며 엄마가 자신의 삶을 추구한다고 해서 엄마이길 거부하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또한, 여성을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일은 남성의 권리를 빼앗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오히려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8개월간의 연재 기간 동안 나는 간극의 넓이만 거듭 확인했을 뿐이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다보면 '나다운 삶'을 살고 싶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언젠간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여성이 며느리, 아내, 엄마라는 역할에 갇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때 남성들도 역할에 갇히지 않고 '나답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그럴 때 모두가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존중받으며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아이가 있는 모든 여성들은 그냥 '엄마'가 아니다. 다양한 욕구를 지니고 저마다 다른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엄마사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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