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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아나운서'지만 이름만 대면 알만한 '프리 선언'을 한 유명 아나운서들과는 다르다. 대전MBC에서 일하는 유지은 아나운서는 지난 2014년 대전MBC 시험을 보고 프리랜서로 채용됐다. 그 뒤 급여는 바뀌지 않고 유급 휴가도 없이 하루에 최대 15시간을 회사 안에서 일했다. 다른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응당 하는 '출연료 협상'이나 타 방송사 출연도 하지 못했다. 

그는 현재 대전MBC 앞에서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채용 성차별'에 반대하는 1인시위를 하고 있다. 현재 16개 지역 MBC에서 근무하는 남성 아나운서 36명 중 31명(86.1%)이 정규직인 반면 여성 아나운서는 40명 중 11명(27.5%)에 그친다.

그는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채용 성차별' 진정을 넣은 뒤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 당하고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만 진행하고 있다. 그와 26일 오전 전화 인터뷰를 했다. 

이래도 내가 프리랜서 맞나 

- 2014년 5월부터 대전MBC에서 근무를 했다. 그때부터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근무했나?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채용이 됐다. 최종 면접까지 보고 입사를 했는데 무늬만 프리랜서지 프리랜서 근무 조건이 아니었다. 이전에 2년 계약직으로 일했던 여성 아나운서를 업무를 그대로 이어받아서 했다. 고용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다른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들과 똑같이 프로그램을 배정받아서 진행했다. 근무도 아침방송부터 저녁방송까지 쭉 이어진다. 종속적으로 근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출연료도 개별 프로그램별로 협상하는 게 아니라 이전 2년 여성 계약직 아나운서가 받을 수 있는 급여에 준해 프로그램 갯수별로 나누기를 해서 산정했다. 사실상 정규직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 언제부터 문제라고 느꼈나? 
"대전MBC에 오기 전에 다닌 방송국에서도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때도 남자 아나운서는 정규직으로 들어오더라. 이후 대전MBC로 옮겨서 정규직처럼 일했는데 MBC 공정방송 파업이 끝나고 한 선배가 윗선에 정규직 전환 논의 제안을 해보자고 했다. 드디어 인정을 해주시는구나 싶어서 들뜬 마음으로 자료도 준비하고 그랬는데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실망을 하고 있던 차에 한 남자 아나운서 선배가 경영국으로 발령이 났다. 아나운서 자리가 하나 남은 상황에서 '남자는 나중에 피디도 할 수 있다'면서 정규직 공채 공고를 올렸다. 여성 아나운서는 안 뽑으면서 남자 아나운서는 자리가 하나 나니까 정규직으로  뽑은 거다. 무급으로 휴가 9일 쓴 걸 빼고는 6년간 정규직 아나운서들 대타를 뛰었다."

- 기자회견 등에서 다른 '프리 아나운서들'처럼 업무를 자유롭게 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아침뉴스부터 오후 6시까지 빼곡하게 방송 프로그램이 짜인 상황에서는 겸직하기 어렵다. 늘 방송 프로그램이 최우선이었다. 제가 정말 자유로운 프리랜서라면 출연료를 따져서 다른 행사나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행사 의뢰가 들어왔을 때 대전MBC 방송 시간과 겹치면 무조건 거절해야만 했다."

- 프리랜서라면 근무시간이 자유로워야 하는 거 아닌가? 
"정규직 남성 아나운서들은 근로시간을 넘겨서 근무하면 추가 수당을 받는다. 방송 프로그램이 정해져 있으니 고정적으로 출퇴근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방송 프로그램 별로 급여를 받으니 고정적으로 출퇴근 해도 추가 수당이 없다. 그리고 외부 행사 진행 제의가 들어와도 회사에 보고해야 한다. 과연 내가 프리랜서로 일한 게 맞나? 이렇게 한 회사의 일만 하는데 어떻게 프리랜서인가? 6년 동안 종속적으로 일해왔다는 건 분명하다.

이전에는 여성 아나운서를 2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이들을 소모품처럼 생각하니까 당연히 이들은 입사하자마자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했다. 2년 후에는 여기 있을 수가 없으니까. 여성 아나운서들이 1년을 못 채우고 나간다. 대전MBC 여성 아나운서들이 자주 바뀐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꼼수를 부려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있는 방법으로 고안한 게 프리랜서 아나운서라는 고용 형태라고 본다."

- 출연료 협상은 가능했나? 
"프리랜서라면 프로그램 하나를 맡기고 이 프로그램 제작비에 따라서 출연료 협상을 하지 않나. 그런데 나는 면접을 보고 '입사'하자마자 프로그램 배정을 통보받았다. 뉴스, 토크쇼, 라디오 방송 이렇게 업무를 받은 것이다. 출연료는 물어볼 수도 없었고 나중에 알게 됐다. 그것도 매번 지급이 밀렸다. 출연료 협상은 언감생심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이전 방송국에서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출연료가 오르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는데 여기는 6년차인데도 전혀 임금 인상이 없었다. 후배 프리랜서 아나운서가 들어와도 출연료는 똑같다. 신입 남자 아나운서와 비교해 급여가 많을 때는 10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났다. 그들은 유급 휴가도 있다. 큰 박탈감을 느꼈다." 

남자만 뽑는 공채, 홍보 방송은 내가

- 대전MBC가 이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길 원하나?
"내 주장을 듣지 않더니 어느날 회사에서 면담을 하자더라. 진심으로 나온 자리가 아니었다. 그 자리에서 명함은 자기네들이 원래 준 적이 없고 이전까지는 나한테 '선물로 주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 인정하고 처우를 개선하길 희망한다. 처음부터 소송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나름대로 회사를 위해서 일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제기를 하니까 똑같이 탄압 하더라. 배신감이 들고 많이 아팠다.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하나만 남기고 모두 하차 당했다. 그럼에도 일단은 법적인 해결보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결과를 지켜보려고 한다." 

- 업무 배제에 대해 대전MBC는 '정상적인 개편 절차였다'고 반박했다.  
"개편할 때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번에 개편 이유를 물어봤는데 '그냥 개편'이라면서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시민단체들이 지난주에 대전MBC 간부들 면담을 했는데 간부들이 내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넣어서 도저히 불편해 일을 같이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더라. 인권위법에는 진정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으면 안 된다고 돼있다. 시민단체들이 있는 자리에서 부당한 업무 배제를 자인한 것이다." 

- 대전MBC는 채용 과정에서 남녀 구분없이 7명 중 남자가 4명 여자가 3명이 뽑혔고 아나운서 직군에서 우연히 남자가 뽑혔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90년대부터 여성 아나운서들은 비정규직으로 뽑혔다. 2000년대에는 남자 1명, 여자 1명을 뽑았는데 남자는 정규직으로 뽑고 여자는 비정규직으로 뽑았다. 대전MBC 채용 연혁만 봐도 이는 명백히 채용 성차별인데 회사는 자꾸 남녀 구분 없이 뽑았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건 아나운서 직군의 채용 성차별인데 피디나 엔지니어도 여성을 뽑았다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 대전MBC 채용 공고가 날 때 응시할 생각은 안 해봤나?
"나는 내부인이기 때문에 사정을 안다. 작년 대전MBC 채용 때 명확하게 그 자리가 남자 자리였다는 걸 공유하고 있던 시험이었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었다. 최종 면접 명단에서 남성 지원자 서류만 보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내가 대전MBC 아나운서로 얼굴을 걸고 일한 지 6년이 넘었기 때문에 공채 홍보 안내 방송의 더빙도 내가 맡았다. 나는 호스트기 때문에 응시를 할 수 없었다."

태그:#채용성차별, #아나운서, #대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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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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