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스페셜-시골 가게 영업 비밀

sbs스페셜-시골 가게 영업 비밀 ⓒ sbs

 
경상북도 23개 시군과 경상북도 경제진흥원이 흥미로운 사업을 진행했다. 바로 청년 창업팀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가 그것이다. 이 사업은 지역 자원을 활용한 창업을 통해 지역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참가 자격도 단순하다. 만 15세 이상 39세 이하 대한민국 국적의 청년이면 지원이 가능하다. 출신지가 어디인지 현재 어디서 거주하는지는 전혀 상관이 없다. 2019년 기준으로 100여명의 청년을 모집했고, 뽑힌 이들에겐 각각 3000만 원의 지원금이 주어진다. 

서울에선 3000만 원을 가지고는 창업이 가당치 않다. 그런데 그 돈으로 지방에 내려가 창업을 한다?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서도 폐업을 신고하는 가게들이 우후죽순인데, 지역에서의 창업이 쉬울까? 17일 방송된 < SBS 스페셜 > '시골 가게 영업 비밀' 제작진은 맨 땅에 헤딩 같은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이들을 찾아 나섰다. 

지난 6월, 경북 경산시 진랑읍에 수족관이 생겼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무려 30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에 말이다. '코리아빠' 이현우씨는 할아버지대부터 살았던 집 옆에 수족관을 세웠다. 이 외진 곳에 드나드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데 주차장이 가득 찼다. 가족끼리 삼삼오오 모여 수족관 속 신비한 열대어 관람에 한창이다. 방문한 사람들에게 '이 먼 곳을 어떻게 찾아왔냐'고 묻자 내비게이션만 있으면 어디든 못 가겠냐는 현답이 돌아왔다. '관상어 기르기' 온라인 카페를 통해 이곳에 대한 입소문이 났고, 이후 이곳은 물생활 마니아의 성지로 거듭났단다. 

사람들로 바글바글햇지만, 한편으론 '조그만 물고기를 키워서 돈이 될까?'란 생각이 들었다. 이현우씨가 주로 취급하는 물고기는 청소 물고기로도 알려진 '코리도라스'다. 몸집이 작다고 해서 얕봐선 안 된다. 코리도라스의 한 종류인 '인콜리카다'는 마리당 60만 원을 호가하고 '제브리나'는 다 크면 120만 원에 이르기도 한단다. 그러다보니, 많이 팔린 날엔 하루 매출이 100만 원을 넘기기도 한다.

7년 동안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공시 장수생' 이현우씨는 어떤 계기를 통해 '물고기 아빠'가 되었을까? 당시 그는 취업준비로 인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조카카 함께 잡아온 붕어를 키워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 이후 이씨는 붕어를 키우기 위해 수조 안에 만든 자신만의 세상을 통해 '성취감'을 느꼈다. 그 일은 그로 하여금 '공시생'의 길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는 39세였던 2018년, 턱걸이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 지원금을 받았고 수족관을 세웠다. 현재 상황은 앞서 언급했듯, 성업중이다.

허허벌판 컨테이너가 품은 야심찬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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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강동면 허허벌판에 박송안씨의 컨테이너가 있다. '난방이 되지 않아 조만간 겨울 추위가 닥치면 입이 돌아갈 것 같다"고 씩씩하게 말하는 송안씨는 귀촌한 어머님이 연 카페 한 귀퉁이에 친구 지민씨와 함께 디자인 가게를 열기 위해 준비중이다. 

시골에 디자인 가게라니? 송안씨의 컨테이너가 자리한 곳은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양동 마을이다. 이 마을 곳곳에는 여전히 살아 숨쉬는 문화 유산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 송안씨는 사람들이 와서 그냥 보고만 가는 것이 아까워 이곳에 양동 마을의 문화적 콘텐츠를 모아놓은 복합 문화 공간을 꾸리겠다는 야심찬 마스터플랜을 세웠다. 그 계획으로 '도시 청년 시골 파견제'를 지원했던 송안씨는 촬영 도중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방방 뛰었다고.  

제작진이 '그래도 이런 외진 곳에서 장사가 되겠냐'고 묻자 송안씨는 오히려 "옛날 분"이라며 타박한다. 대구에서 디자인 회사를 다니던 송안씨의 꿈은 자신의 공간에서 원하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다. "인스타 등을 통해 홍보가 가능하고, 지구 반대편 그 어디라도 원하기만 한다면 고객과 연결 될 수 있는 세상에서 파는 건 문제가 안 된다"라고 장담한다. 지금은 허허벌판에서 애벌레에 질색하면서도 푸성귀를 뜯어 끼니를 해결하고, 어머니 가게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형편이지만, 자신의 '사업'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그 어떤 벤처 기업가 못지않다.  

시골이라 가능한 가게 

예림이네 가게는 남해 석교리에 있다. 남해 석교리로 아이들과 갯벌 체험을 왔던 예림이네는 마을이 너무 좋아 몇 번을 들르다가 이곳에 정착했다. 목공이 취미인 아빠는 태풍으로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무로 뚝딱뚝딱 물건을 만들어내고, 그 물건들은 엄마가 주인인 가게의 유용한 소품이 된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에 젊은 부부와 아이들이 들어와 산 지 3년, 어느덧 예림이네 가게는 동네 사랑방이 됐다. 또 처음 내려왔을 당시 어르신들의 우려와 달리, 예림이네는 가족과 먹고 살 만큼은 벌고 있는 중이다. 예림이네가 먹고 사는 것보다 더 만족스러워 하는 건 한창 크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경북 성주군에서 아이스크림 가게를 하는 권은아씨는 집주인 할아버지의 인심 덕분에 잔뜩 얻은 늙은 호박으로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중이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인데, 손님 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체 연구 제조실까지 넣을 수 있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다. 

그런데 이 외진 곳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역시 이런 의문은 '배달 시스템'이 일시에 해소해주었다. 30시간 정도는 너끈히 냉장 보존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전국 어디로든 수제 아이스크림을 배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게 권은아씨의 수제 아이스크림은 전국구 인기 상품이 됐다. 하지만 권씨를 가장 흐뭇하게 하는 건 이 지역에서 나는 천연 재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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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창하길 바라며 가게를 여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이의선씨 부부는 손님이 적을 것을 알면서도 우도에 책방을 열었다. 하루 열 권만 팔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게를 차렸다는 이 부부는 '돈을 중시하지 않겠다'는 지향점을 가지고 있었다. 우도를 찾는 관광객들이 탄 페리호가 떠나면 부부도 서점의 문을 닫는다. 그 후부터는 부부의 우도 라이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의선씨는 "도시에서 한평생 열심히 일만 하시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하는가라는 회의가 들었다"라고 말한다. 이후 의선씨는 결혼과 함께 외로웠던 서울 생활을 접고 아내 최영재씨와 함께 5년 전 우도로 내려와 서점을 차렸다. "그래도 책이 팔리는 게 희한하다"는 이 부부의 '영업 비밀'은 바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팔기보다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나를 지켜내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이들도 있다. 혹은 '시골'에만 있는 재료들을 찾아 그곳에 가게를 연 이들도 있다. 그리고 도시라면 가게 한 칸도 마련하지 못할 자신들의 꿈을 풀어내기 위해 시골로 내려온 이들이 있다.

오프라인 마트가 온라인 상권에 밀리며 고전하는 요즘, 어쩌면 이 시골 마을의 가게들은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도시의 한계를 넘어선 이 시대의 색다른 첨단 사업일 수도 있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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