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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일 종족주의>일본어판
 <반일 종족주의>일본어판
ⓒ 문예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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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책,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이 14일 일본에서 공식 발간, 그 즉시 '아마존 재팬' 도서부문 판매 1순위에 등극했다. 이미 수개월 전부터 일본 내 상당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었거니와, 온라인 사전예약 판매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던 터라 초기의 열풍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특히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을 발간한 '문예춘추(文藝春秋)'는 앞서 이영훈, 이우연씨의 인터뷰 기사를 수차례 특집으로 다루며 일본 우익의 기대를 불러 모았다. 발간 당일인 14일에도 이영훈 전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는데 여기서도 이영훈 교수는 또다시 한국인을 '거짓말하는 민족'으로 폄훼하며 기세 등등하게 발언을 이어갔다.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다」라는 말은 한국인에게 기분이 좋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을 아는 것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분은 좋지 않을 것이 분명하겠습니다만.."하하하" 그러나 한국인은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 <문예춘추>('19.11.14. ☞ 관련 기사 링크 )

'한국인은 거짓말쟁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일본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발언이다. 해당 내용은 실제 <반일 종족주의> 프롤로그에서도 언급된다. 물론 이 주장은 명확한 근거와 공신력 있는 통계가 활용되지 않았고, 전문가에 의해서도 그 오류가 수차례 입증된 주장이었기에 논쟁의 가치는 없다. (관련 기사 : 한국인은 거짓말쟁이? <반일종족주의>의 '경악' 프롤로그) 그러나 문제는 '주장의 사실 유무를 떠나' 그러한 논리가 나열된 <반일 종족주의>가 대중서로써 일본 우익들에게 활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대단히 답답한 지점이다.

아직까지는, 발간 후 시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관계로, 주목할 만한 일본 학계와 언론의 공식적인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곧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일본 내 지식인들의 평가가 올라올 것이다.

과연 <반일 종족주의>를 대하는 일본 학계와 언론이 역사에 겸허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그 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예측을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과거,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에 '맹목적으로' 열광하던 일본의 모습을 이미 목격한 바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제국의 위안부> 현상과 일본 진보의 타락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위안부 여성들이 일본제국에 '애국적 존재'였으며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는 주장을 전개한 논란의 저작이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박유하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며 박유하 교수는 2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마치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되고 경제적 대가를 받고 성매매를 했다"는 등의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허위사실 적시 및 명예훼손'에 대한 부분을 짚은 바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반응은 달랐다. <제국의 위안부>는 발매 당시 1만 부가 넘는 판매부수를 기록하며 화제의 저작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일본 사회는 이념과 좌우를 막론하고 <제국의 위안부>를 찬양했다. '과감히 나서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했다'며 박유하를 한국의 '양심적 지식인'의 반열에 올리는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일본 우익 사학계의 거물 '하타 이쿠히코',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와 같은 인물들의 지지도 잇따랐다.

특히 일본의 진보를 자칭하는 인사들까지(종종 '리버럴'이라고도 불린다) <제국의 위안부> 찬양에 가담한 것은 의외의 일이었다. <마이니치 신문> <아사히 신문> 같은 일본의 대표하는 진보 언론들은 <제국의 위안부>가 반일 내셔널리즘을 비판한 수작이라고 평가했고 심지어 학술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2015년 당시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를 인터뷰한 <아사히 신문>기사
 2015년 당시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를 인터뷰한 <아사히 신문>기사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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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반면 <제국의 위안부>가 ▲ '일본인' 위안부의 입장에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들의 상황을 재단했다거나 ▲ 위안부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인터뷰가 활용되지 않았다는 점 ▲ 한국어판과 일본어판의 내용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 ▲ 각계 380명의 인사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반대적 성명'을 낸 사실 등 <제국의 위안부>에 비판적인 분석과 보도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보수에 대한 비판의식을 잃은 채 '우경화'하고 있는 일본 진보진영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 주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진보진영은 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우익과 타협했을까? 이러한 '진보진영의 몰락' 현상에 대해서는 서경식, 정영환 등 사학자들에 의한 비판적 진단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의 주장을 인용하고자 한다.

박노자 교수는 오랜 기간 정치의 주류가 되지 못한 일본의 진보세력들이 주류가 되기 위해 '민족주의'를 가미한 우파적 전향을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제국의 위안부>가 일본 진보진영의 "우향우에 필요한 알리바이를 제공해"주었다고 집는다. 이는 일종의 도덕적 면죄부와도 같은 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이와 같은 상황이다.

A : 위안부는 자발적으로 모집에 응한 사람들이더군.
B : 정말? 그건 우익들의 일방적 주장 아닌가?
A : 아니야, 한국인도 그렇게 말하더라니까?
B : 그런가. 앞으로는 위안부의 자발성을 언급해도 비난은 피할 수 있겠군. 한국인도 그렇게 말했으니까.
A : 그러니 앞으로는 여론의 대세에 적당히 맞추자고.
(*본 대화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구성한 상황임)


또 박노자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가 가진 "은근한 역사수정주의"도 일본의 진보들의 '우경화'에 한몫했음을 덧붙인다. 이를테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일본이라는 국가보다 위안부를 모집하러 다닌 '조선인 업자'에게로 돌리는 듯한 서술 행태를 말한다.
 
박유하의 논리를 받아들이면 위안부 문제로 화해를 거부하는 한국인/조선인 민족주의자들과 선을 그어 일본 주류의 자민족 중심주의에 더 가까워지는 한편, 진보 진영에서의 기존의 포지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가해자의 책임을 면책시켜주는 박유하식 '은근한 역사수정주의'는 그만큼 '연성'전향에 안성맞춤이었다. - 정영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중, 박노자 교수 '해제'

이 같은 일본 진보진영의 타락은 <제국의 위안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인기를 얻는데 기여하고 말았다. 나아가 그들은 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과 한국 국민들의 분노를 단순 반일 민족주의로 취급했다. 피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내셔널리즘으로 취급해야 할까? 그 또한 민족주의의 한 행태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일본이라는 국가의 책임을 부정하는 '가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과 비교될 것은 아니다. 결국 일본 진보진영은 자기 안에 숨겨진 가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을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한일 양국민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반일 종족주의> 시험대에 올라선 일본의 진보

<반일 종족주의>는 위안부, 징용노동자들의 아픔이 '개인의 선택', 즉 자발성에 의거한 것이라고 판단하는 데 그 초점이 있다. 다시 말해 위안부, 징용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일본제국의 시스템에 동참한 것이므로 일본에 국가적 책임을 지울 수 없으며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는 일본 극우가 지향하는 역사수정주의 관점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이들의 역사관을 따라가다 보면 일본은 전쟁범죄에 대한 국가적 책임에서 해방된다. 모든 것이 결국 '개인의 선택'이었으므로 국가의 잘못은 상쇄되며 일본이 사과를 해야 할 이유도, 역사에 겸허해야 할 이유도 사라진다. 나아가 애초부터 잘못이 '없었으므로', 일본이 과거처럼 군대를 보유하는 등 보통국가의 시스템을 갖추는 것에도 걸릴 것이 없어지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반일 종족주의>와 일본 극우가 지향하는 일본판 내셔널리즘의 미래라 볼 수 있다.

스스로가 이토록 일본적 내셔널리즘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는데도 불구하고 <반일 종족주의>와 일본 극우세력들은 외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과격한 민족주의'인 양 취급하고 비난까지 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일본의 진보는 바로 이러한 내셔널리즘을 비판해오며 성장했다. 서경식 교수의 저서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등에 따르면 일본의 진보는 2차 대전 후 등장한 '평화주의' 가치를 옹호하며 군대 보유를 금지한 현행 일본 헌법을 지지하고 있다.

더불어 아시아 민족들과의 평화적 관계 구축을 지향하고 보수파의 내셔널리즘과 국가주의를 비판, 국가에 희생 당한 소외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며 자기 정체성을 키워왔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한국의 역사문제에 다소나마의 성의라도 보일 수 있었던 근간에는 바로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다.  
 
기림비와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14일 오후 서울 남산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옛 조선신궁터앞)에서 기림비 제막식이 열린 가운데, 이용수 할머니가 한국 소녀의 모습을 한 기림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 기림비와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인 8월 14일 오후 서울 남산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옛 조선신궁터앞)에서 기림비 제막식이 열린 가운데, 이용수 할머니가 한국 소녀의 모습을 한 기림비를 어루만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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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반일 종족주의> 일본어판 발간에 일본 진보진영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까? <제국의 위안부>도 논란이 많은 저작이었지만 <반일 종족주의>에는 비할 바 아니다. 1명의 저자가 일으킨 파급력이 이 정도였는데 자그마치 6명의 한국인이 이야기한 <반일 종족주의>는 일본에서 더욱 큰 파문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만약 여기서 일본 진보진영이 우경화 일색의 일본 사회 분위기, 혐한의 정서에 은근히 편승하고 일본 중심주의에 발 담그고자 한다면 이것(반일 종족주의)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그 대신 정체성을 상실하고 타락해버리는 위기 또한 스스로 초래하게 될 것이다.

물론, <반일 종족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진보의 의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5년 전처럼, 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고 한국의 반일 민족주의만을 문제 삼던 맹목적 시각을 버리라는 것에 그 초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반일 종족주의>에 대한 학자들의 반론도 수없이 많다. 다만 그것을 집대성한 대중서적이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일본의 진보진영은 그런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일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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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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