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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은 진화론 창시자로 알려진 찰스 다윈의 최대 저서이자 2015년 영국에서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학술서'로 선정된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은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고 전문가들조차 "우리나라엔 진화론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이 10명도 안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최근 바로 그 책을 번역한 <종의 기원 톺아보기>가 출간돼 생명과학계에 자극을 주고 있다.

학술서 한 권 번역이 무슨 큰일이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으나 이 책은 단순히 번역만 한 작업이 아니다.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각주 2200개가 달려있고 인명사전과 요약 노트까지 곁들였다. 쉽게 읽을 수 없는 '종의 기원'을 누구든 읽을 수 있도록 바꿔준 책이 바로 <종의 기원 톺아보기>다. 전공생들은 물론 생명과학에 흥미 있는 일반인들에게도 <종의 기원>은 한층 가까이 둘 책이 되었다.

순천향대학교 신현철(61) 교수는 이번 역서를 통해 <종의 기원> 원문의 의미를 잘 전달하는 데 주력했고 그 의미를 더 충실히 이해하도록 문단과 문장, 단어에 철저하게 주석을 달았다. 그래서 '톺아보기(샅샅이 훑어 살피다)'란 제목을 붙였다. 그가 단 주석은 200여 년 전에 쓰인 <종의 기원>을 오늘날 독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다.

<종의 기원 톺아보기> 저자 신현철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다윈의 가장 큰 가르침은 '태도'... 일반인들도 읽어봤으면"
 
<종의 기원 톺아보기>를 펴낸 신현철 순헌향대학교 교수. 신 교수는 전공생들도 이해하기 힘든 <종의 기원>을 솔직하게 읽기 힘들다고 인정하고 누구라도 읽기에 도움이 되도록 연구년 포함 2년간 역사적인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종의 기원 톺아보기>를 펴낸 신현철 순헌향대학교 교수. 신 교수는 전공생들도 이해하기 힘든 <종의 기원>을 솔직하게 읽기 힘들다고 인정하고 누구라도 읽기에 도움이 되도록 연구년 포함 2년간 역사적인 번역작업에 매달렸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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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철하게 평가해 <종의 기원>은 어떤 책인가?
"과학혁명을 생명과학 쪽에서 완성한 책으로 본다. 인간 중심 천동설이 지배했던 중세 시대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이 혁명이 됐던 것처럼, 신이 만들었다고 말하면 모든 설명이 끝나는 시대에 다윈은 창조설을 뒤흔드는 진화론을 썼다.

<종의 기원>은 과학사에 기념비적인 전환점을 제공한 책이다. 다윈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다름을 알려주고 달라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이는 당시 혁명과도 같았다. 그래서 역서에 다윈을 '혁명가'라고 표현했다."

- <종의 기원> 6판 중 초판을 선택한 이유는?
"창조론을 부정하는 듯한 내용으로 보이는 책은 종교재판까지 갈 위험을 안고 있었다. 귀족이었던 다윈은 다행히 큰 화는 면했지만, 고민이 많았던 것 같다. 2판부터는 주변을 의식한 듯 내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 출간돼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혁명과도 같았던 초판을 번역했다."

- 완역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종의 기원>이 필독서였다. 하지만 친구들과 매주 세미나를 해도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과연 이 책이 읽을 수 있는 책이 맞나? 어떻게 필독서가 됐을까? 의문을 가질 만큼 난해했다.

나이 60이 되면 <종의 기원> 역서를 내겠다고 친구들 앞에서 선포했고 60되던 연구년에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해 약 2년간 매달려 역서를 출간했다. 약속을 지키게 됐다."

- 왜 하필 60살이었나?
"공부가 부족해서 공부한 다음에 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는 60살부터 시작하려고 했는데 60살에 마무리해야겠다 싶었다. 60살에 마무리해야 잘못된 부분을 수정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공부가 부족한 듯하다. (웃음)"

- 굉장히 방대한 작업이었겠다. 각주를 그렇게 많이 넣으려고 했던 이유는?
"<종의 기원>은 전공생도 이해가 힘든 책이었다. 어떻게 하면 설명을 잘해줄 수 있을까에 매달렸고 '읽고 싶게 만드는 책으로 번역하자'가 목표였다. 알기 좋게 펴내고 싶어서 각주가 들어가도록 페이지를 자르고 맞췄다. 이 작업이 꽤 걸렸다. 보는 이들이 쉽게 이해하길 바랐을 뿐이다. 위대한 책을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다면 내 할 일은 다 한 거 아니겠나."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기보다 질문을 던진 것"
 
 신현철 교수가 2년간 작업한 <종의 기원> 역서.
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2200개 각주 내용이 충실히 들어있다.
▲ 종의 기원 톺아보기  신현철 교수가 2년간 작업한 <종의 기원> 역서. 그가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2200개 각주 내용이 충실히 들어있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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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윈은 신의 존재를 부정한 건가?
"다윈이 생명의 발원을 증명한 건 아니다. 다윈은 생물이 어쩔 수 없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주변 식물을 예로들어 하나하나 설명했다. 종을 이루는 개체들이 서로 조금씩 다른데 환경에 따라서 개체마다 변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찾아서 나열했다. 다윈은 특별하면서도 완벽하게 창조됐다는 생물이 왜 개체마다 다르냐는 질문을 던지게 했다.

다윈이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기보다 '신이 한 일을 제대로 평가하고 싶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생각만 강요하지 말고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 '생존을 위한 투쟁'이나 '경쟁'으로 번역되던 3장 제목(the struggle for existence)을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바꿨다. 훨씬 완곡한 표현인 듯한데.
"다윈의 진화론 하면 우린 '경쟁'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다윈은 '생존경쟁'을 주장한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강조했다. 다윈은 이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우리에게 서로 경쟁하지 말고 개개인에게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치라고 했는데 우리가 곡해한 것이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적합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는 설명으로 이해한다. 오늘날 용어로 '생태적 지위'를 달리하면 경쟁을 피할 수 있단 이야기다. 적당한 번역을 고민하다가 그런 말을 찾았고 그렇게 번역해서 기분이 좋다."

- 번역의 중요성이 다시 보인다. 번역을 달리해서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사례를 더 말한다면.
"원문에 '플레이스(place)'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를 장소, 위치, 지점 등으로 번역해버리면 다윈이 쓰고자 했던 의미가 사라진다. 몇 번이나 고치면서 찾아낸 것이 '생태적 지위'였고, 이를 적용했더니 모든 것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초판 원문에는 'God'이 1번 나오고 'Creator'는 7번 나온다. God도 나오고 Creator도 동시에 나왔다. 나는 초판에 나온 이 Creator가 자연이라고 생각한다. 2판부터는 Creator가 모호한 의미로 보인다."
 
종의 기원과 진화론을 이야기하면 찰스 다윈만 떠올리는데 다윈 옆에는 월리스라는 평민 신분의 연구자가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 못지 않은 추론과 연구결과로 다윈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다윈은 알고 월리스는 잘 모른다.
▲ 신현철 교수가 <종의 기원 톺아보기>를 번역하기 위해 참고한 책 중 일부 종의 기원과 진화론을 이야기하면 찰스 다윈만 떠올리는데 다윈 옆에는 월리스라는 평민 신분의 연구자가 있었다. 월리스는 다윈 못지 않은 추론과 연구결과로 다윈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다윈은 알고 월리스는 잘 모른다.
ⓒ 노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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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작업을 오롯이 다윈 혼자 한 것인가?
"다윈을 충격에 빠트린 인물이 있다. 평민 신분 '월리스'였는데 월리스가 보낸 논문 검토 부탁 편지 한 통이 다윈이 진화론을 서둘러 완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월리스가 검토를 부탁한 논문을 보고 다윈은 매우 놀랐다. 논문은 다윈 자신이 20여 년간 정리해서 발표만 남겨둔 연구 내용과 매우 비슷했다. 월리스의 편지로 인해 <종의 기원>은 더 빨리 완성될 수 있었다."

- 2년간 고된 작업이 끝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개정판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내가 번역한 내용이 100% 맞다고는 못 하기 때문이다. 내용이 빠진 것도 있겠고, 번역 실수도 있을 것이다. 역주도 그에 따라 뺄 거 빼고 넣을 거 더 넣으려고 한다. 2023년 정년퇴임 전에 개정판을 내고 싶다. 그래서 누구든 읽다가 잘못을 발견하면 꼭 알려달라고 했다."

- 다윈은 <종의 기원>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관찰이나 직접적인 데이터 없이 추론하고 맹목적으로 믿어버리는 건 하지 말라는 뜻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종의 기원>은 전공 학생은 물론 일반인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내겐 학문과 배움의 자세를 알려주었다. 교만하지 말아야겠다 싶다."

- 생명과학 분야로 진로 방향을 설정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위대한 과학자의 삶을 되돌아보고 작품 의미를 생각해보면 또 다른 의미를 발견할 것이다. 왜 고전을 읽나. 고전 읽기는 삶의 양식을 넓히는 거다. <종의 기원>도 과학계 고전이다. 그동안 어려워서 도전할 생각을 엄두도 못 냈던 거지만 읽어보면 의미 있는 결과가 있다. 읽는 데 도움 되라고 톺아보기 책을 펴냈다."
 
신현철 교수는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이학석사·박사 취득했으며 현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저서로는 <진화론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진화론 논쟁> <울릉도, 독도의 식물> <한국의 보전생물학> <대학론, 대학을 공부하다> 등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천안아산신문에도 실립니다.


태그:#신현철 교수, #순천향대학교 생명시스템학과, #종의 기원 톺아보기, #찰스 다윈 진화론, #창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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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과 천안 아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소식 교육 문화 생활 소식 등을 전합니다. 지금은 출판 분야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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