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여름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한 여자프로농구의 6번째 구단 금호생명 펠컨스는 창단 후 7시즌 연속 최하위라는 수모를 당했다. 그러던 2004년 겨울리그에서 김지윤, 이언주 같은 스타 선수들과 곽주영, 정미란 등 특급 신인이 가세한 금호생명은 챔피언 결정전에서 '스타군단' 삼성생명 비추미(현 삼성생명 블루밍스)를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여자프로농구에 새 바람을 일으킨 신흥명문구단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금호생명은 KDB생명 위너스로 이름이 바뀌고 팀이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끝내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KDB생명은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한 2011-2012 시즌을 마지막으로 6시즌 연속 봄 농구에 나가지 못했고 급기야 모기업에서는 농구단 운영 포기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이경은(신한은행 에스버드)을 비롯한 주력 선수들이 차례로 이적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지난 시즌 네이밍 스폰서를 받고 OK저축은행 읏샷이라는 이름으로 한 시즌을 치렀던 (구)KDB생명 선수들은 지난 4월 드디어 새 보금자리를 찾았다. BNK금융지주그룹이 구단을 인수하고 이번 시즌부터 부산BNK 썸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유영주 감독을 비롯해 최윤아, 양지희 코치 등 코칭스태프를 모두 여성으로 구성한 BNK는 이번 시즌 코트에서 '여성시대'를 열기 위해 단단히 벼르고 있다.

네이밍스폰서 받아 출전한 2018-2019 시즌, 4위로 선전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한 안혜지의 발굴은 지난 시즌 BNK의 최대수확이었다.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어시스트 1위를 차지한 안혜지의 발굴은 지난 시즌 BNK의 최대수확이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KDB생명은 2017-2018 시즌을 4승 31패 승률 .114의 처참한 성적으로 마쳤다. 마지막 22경기를 모두 패했을 정도로 무기력한 시즌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의 의욕이 떨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KDB생명은 2017-2018 시즌을 끝으로 모기업이 농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2017-2018 시즌의 KDB생명은 본부의 지원이 끊어진 채로 고지에 내몰려 적들의 포화를 견딘 군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여자농구연맹은 시즌이 끝난 후 KDB생명을 인수할 기업을 찾아 다녔다. 작년 4월에는 모 금융투자회사에서 농구단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기업은 직원7명에 헤지펀드 운용 규모가 20억 정도인 신생 운용사로 프로 농구단을 운영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었다. 결국 지난 7월 인수의사를 철회하면서 (구)KDB생명은 WKBL 위탁운영팀으로 2018-2019 시즌에 참가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지난 2012-2013 시즌 V리그 서울 드림식스의 네이밍 스폰서로 참여하기도 했던 OK저축은행이 WKBL 위탁운영팀의 네이밍 스폰서로 등장했다. 이미 남자 배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OK저축은행은 수원을 연고로 한 OK저축은행 읏샷이라는 이름으로 WKBL위탁운영팀을 지원해주기로 했다. 구단을 인수한 기업이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한국여자농구연맹과 선수들로서는 급한 불을 끈 셈이었다.

OK저축은행은 예상대로 3위 삼성생명과 큰 격차를 보이면서 봄 농구 진출에 실패했다. 하지만 OK저축은행은 정규리그에서 13승을 올리며 기대 이상으로 선전했다. KDB생명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마지막 시즌보다 무려 9승을 더 따냈고 승률도 .257가 상승했다. OK저축은행은 KEB하나은행을 5위, 신한은행을 최하위로 두며 4위라는 성적을 기록했다. 독보적인 꼴찌후보라는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은 '작은 이변'이었다.

득점 2위(19.27점), 리바운드 4위(10.00개)에 오른 외국인 선수 다미리스 단타스가 팀 공격을 주도한 가운데 5년 차 포인트가드 안혜지의 성장이 단연 돋보였다. 주전 포인트가드 이경은의 이적으로 풀타임 주전이 된 안혜지는 6.54득점 3.00리바운드 6.37어시스트 1.14스틸로 맹활약하며 어시스트 부문 전체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비록 신장(164cm)의 약점은 분명하지만 넓은 시야와 과감한 돌파에 이은 패싱센스는 단연 발군이다. 

여성들로만 구성된 레전드 코칭스태프, 코트에 새 바람 일으킬까
 
 90년대 여자농구를 대표하던 스파 플레이어 출신 유영주 감독은 BNK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90년대 여자농구를 대표하던 스파 플레이어 출신 유영주 감독은 BNK의 초대 사령탑으로 선임됐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OK저축은행은 BNK금융지주회사가 팀을 인수하면서 이번 시즌부터 BNK 썸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한다. BNK는 초대 감독으로 현역시절 엄청난 파워와 뛰어난 농구센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영주 감독을 선임했다. 유영주 감독은 신한은행과 우리은행 위비 왕조시대의 주역이었던 최윤아 코치와 양지희 코치를 선임해 여성들로만 이뤄진 '레전드 코칭스태프'를 구성했다.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던 BNK는 검증된 외국인 선수 단타스를 다시 지명했다. 2017-2018 시즌 KB스타즈, 2018-2019 시즌 OK저축은행에서 활약했던 단타스는 올해 WNBA에서도 9.2득점 4.5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올린 바 있다. 물론 외국인 선수로서 개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팀이 더욱 젊어진 만큼 코트 위에서 선수들을 이끄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BNK는 이경은과 함께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한채진이 '친정' 신한은행으로 떠났다(공교롭게도 KDB생명의 간판선수였던 이경은과 한채진이 모두 신한은행으로 이적했다). 팀의 리더이자 간판슈터였던 한채진의 공백을 특정 선수 한 명이 메우긴 쉽지 않다. BNK 팀 내에서 가장 좋은 외곽슛 능력을 갖춘 구슬과 노현지의 활약이 절실한 시즌이다.

지난 9월에 열린 아시아컵에서 대표팀에 선발됐던 토종 빅맨 진안의 성장도 BNK의 성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지난 시즌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주전급 선수로 활약했던 진안은 8.64득점 4.36리바운드의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다. 단타스, 김소담, 정선화와 함께 BNK의 골밑을 사수할 진안이 제 역할을 해준다면 BNK는 골밑과 외곽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겁 없는 2년 차 이소희 역시 팀의 활력소 역할을 해줄 예정이다. 

지난 시즌 OK저축은행 유니폼을 입고 올린 4위라는 성적은 분명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하지만 BNK라는 이름을 달고 출발하는 첫 시즌 성적이 좋지 못하다면 BNK는 7시즌 연속 봄 농구에 실패했던 KDB생명의 자리를 물려 받는 것뿐이다. 국민은행 세이버스(현 KB스타즈) 감독대행 시절 그리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던 유영주 감독이 이번 시즌 코트에서 진정한 '우먼파워'를 보여줘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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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하나원큐 2019-2020 여자프로농구 BNK 썸 유영주 감독 안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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