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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울증을 앓는다. 대학 초년생이던 내가 엄마와 함께 난생처음 대학병원 신경정신과에 갔던 날, 그 긴 병동 복도의 풍경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20대로 보이는 젊은이는 계속 복도를 불안하게 오가며 뭔지 모를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30대로 짐작되는 여성은 매우 초조하고 침울한 얼굴로 왜 자신의 진료 순서가 오지 않느냐고 간호사를 자꾸 재촉해대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정신과 의사 임세원 교수의 사망 비보를 접하던 날, 나는 긴 복도의 그날을 떠올렸다. 다들 불안정해 보이긴 했지만, 누구 하나 그런 일을 저지를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던 그날 그 복도에 있던 환자들을.

정신질환을 앓는 두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다. 한 아들은 잃었고, 한 아들은 투병 중이다. 그는 평생 절대 아들들에 관한 글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누가 미친 사람 따위에게 신경 쓰겠냐"는 모멸이 던져지던 날, "우리는 정신질환에 대해 한심할 정도로 한 일이 없다"고 절감하고 펜을 든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는 바로 이 아버지, 론 파워스가 쓴 책으로, 빛나던 아들들의 시간에 대한 '축성(祝聖)'의 글인 동시에 조현병과 싸웠던 가족의 연대기다.

정신질환은 뇌에 생기는 질병일 뿐인데...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겉표지.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겉표지.
ⓒ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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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의 원인은 여전히 명백하지 않지만, 신경과학이 뇌를 들여다보게 되면서 과거의 오해를 해소하는 중이다. 정신질환의 선구자인 크레펠린은 "정신질환은 뇌의 생물학적 과정에 결함이 생긴 결과"(74)로, 살면서 맞닥뜨리는 불행에서 기인하는 외인성과 뇌의 내부에 물리적인 원인이 있는 즉 기질적 패턴의 결함과 조직 퇴화에 의한 뇌 손상의 결과인 내인성 질환으로 분류했다.

이후 정신질환은 정신질환자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을 분석 통찰한 스위스 정신의학자 블로일러에 의해 진일보한다. 정신질환은 기질적 요소와 큰 충격과 과도한 스트레스 즉 외인성 원인과 더불어 환경적 요인에도 기인한다고 밝히며, '정신분열증'이란 명칭을 처음 시도한다. 크레펠린과 블로일러는 "정신분석을 정신질환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받아들이는"(80) 주류의 프로이트식 관점에 생물학을 도입해 반박에 나섰다.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주요한 뇌 영역은 충동을 조절하는 전전두피질이다. 사람을 합리적이게도 폭력적이게도 할 수 있는 이 부위는 20세가 되어서야 안정된다. 청소년기가 정신질환에 취약한 이유다. 전전두피질이 성숙하면서 신경세포 회백질 일부를 정리해야 하는 '시냅스 가지치기'를 하는데, 이때 발생할 수 있는 과도한 가지치기가 조현병과 관련 있다.

지난 6일 '정신장애 42%가 아동, 청소년기에 발병하지만 적절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국가 인권위원회 실태조사 분석 결과는 우리의 열악한 정신질환 의료 현실을 적시하고 있다.

저자 론 파워스의 아들들이 조현병 증세를 보인 시점도 청소년기다. 뛰어난 재능을 보이던 두 아들은 사춘기 증상으로 보고 싶었던 부모의 낙관을 배반하고 행복하던 시간들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기타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던 케빈과 문학적 재능이 탁월하던 딘이 무너졌던 과정을 성찰한 저자는 좀 더 빨리 인지하고 대처했더라면, 조현병에 이렇게 무지하지 않았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고 자책한다.

론 부부는 케빈과 딘의 천재성과 조현병이 어떤 상관관계가 있었던 걸까 더듬게 된다. 아들의 창조성이 조현병을 유발한 걸까, 아니면 조현병이 창조성을 불러왔던 걸까. "창조성과 정신이상이 뇌에서 동일한 기원을 공유한다"(227)는 연구가 뒷받침하듯 종종 광기의 천재성은 실재했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쉬는 조현병 환자로 살며 뛰어난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하지 않았던가. 어떤 면에서 "속박되지 않고 정신의 경계선들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은 조현병적 사고와 창조적 사고 양쪽 모두가 지닌 양상"(222)으로, 정상인과 정신질환자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다.

조현병을 혐오하게 한 역사

저자는 조현병을 다룸에 있어, 초기 진단과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하기 위해 비합리적인 정신질환 역사 특히 미국의 역사를 심도 있게 다룬다. 영국에서 기원한 '베들럼'이라 불린 수용소에서 정신병자들은 학대 당하고 죽임 당했다. 우생학이 득세하면서 이들은 제거 대상이 되는데, 나치가 유대인 절멸을 시도하기 전부터, 우생학적으로 쓸모없는 존재인 정신병자들을 사회에서 가장 먼저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처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것이다.

미국은 약물을 '위대한 해결사'로 등극시키며, 정신질환자의 '탈수용화'에 박차를 가한다. 정신질환 환자들에 들이는 예산이 아까웠던 정치인들은 정신질환자들의 인권 존중을 위해 이들을 가두지 말라는 토마스 사즈의 '탈수용화' 이론을 차용하며 정당성을 획득한다.

인권 존중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탈수용화'는 무력한 정신질환 환자를 그대로 거리로 내몰아, 국가가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시킨 채, 이들을 병원에 수용하는 대신 감옥에 가두게 했을 뿐이라고 저자는 일갈한다. 아무 대책 없이 밖으로 내던져진 환자들은 구걸을 하거나 정신 착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곧바로 죄인이 되어 감옥에 갇혔다.

1945년 전쟁의 트라우마로 고통 당하는 참전자들의 아픔에 공감했던 트루먼 대통령은 의무적 의료보험을 의회에 제출하지만, 토마스 사즈를 지지하던 미국의학협회는 트루만의 의료보험 정책을 "소비에트 국가라는 아치의 쐐기돌"이라며 맹공을 퍼부어 좌절시킨다. 이후 1979년 카터 대통령에 의해 제출된 '정신보건 체계법'은 만성 정신질환자(조현병, 분열정동장애, 양극성장애 환자)에 중점한 정책이었으나, 딱 310 일을 유지하다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폐지된다.

레이건 정부가 예산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정신보건 체계법'을 없애 과연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아꼈을까. 교도소에 정신질환자를 가둠으로써 초래되는 비용은 이들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의 몇 배를 상회하는 역설을 자행했다. "탈수용화는 사실상 수용 장소를 옮기는 것이었을 뿐... 미국의 구치소와 교도소는 가장 거대한 정신보건 시설이 되었다. 전 재소자의 절반이 정신질환이 있거나 약물 남용 장애가 있는 이들"(359)라는 사실이 이를 아프게 증명하고 있다. 정신질환자는 감옥에 갇힌 채, 간수의 협박, 감금, 폭언, 폭행, 강간, 살해 등에 처참히 노출되고 말았다.

한국이 마주한 정신질환의 현실

'탈수용화'가 과연 정신질환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냐는 저자의 뼈아픈 질문은, 지난해 벌어졌던 임세원 교수 사망 사건을 떠올리며, 불편하지만 피할 수 없는 논쟁을 촉발시킨다. 정신질환자의 돌연한 공격은 정신질환자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를 제기시켜 '정신건강복지법'(임세원법)을 발의하게 했다.

하지만 '보호의무자제도'를 폐지하고 '사법입원제'를 도입하려는 이 법안은 정신질환자들을 다시 수용소에 함부로 가둘 수 있다는 오래된 공포를 일으키며 정신장애계를 공분시켰다.

비운에 운명한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은 이 사건이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낙인이 되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지만, 심각한 위험에 노출된 정신질환 관련 종사자들의 안전을 도외시할 수 없고, 이어진 정신질환자의 살해 사건 또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켰다.

정유정의 소설 <네 심장을 쏴라>는 음모에 휘말려 정신질환자로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된 젊은이의 이야기다. 비단 소설뿐 아니라, 종종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는 정신병원 강제 입원의 인권 침해 서사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도 '탈수용화'를 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론 파워스가 지적하는 적절한 치료를 위한 입원 정책 또한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위한 주장이다. 적실한 입원 치료로 더 큰 피해를 막는 것이야말로 정신질환자의 인권에 기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약물 처방만으로 정신질환자를 '탈수용화'한 것이 제약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한 것 외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코트니 하딩의 주도하에 진행된 '회복'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정신질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절한 약물 치료와 지역사회의 보살핌이 균형을 이루면 심각한 조현병 환자가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563) 그의 실험에 참여한 환자 중 51%가 상당히 개선되고 회복되었으며, 45%는 30년이 지난 뒤에도 정신이상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는 결과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저자는 책 머리말에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상처받기를 바란다"고 썼다. 뿐만 아니라 행동하고 개입하기를 바란다고도 밝혔다. '아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다.' 하여 독자는 이 책에 명백히 상처받을 것이다. 하지만 행동하고 개입하라는 요청을 즉각 수락하는 일은 가볍지 않다. 어떻게 행동하고 개입할 것인가라는 난관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조현병을 앓았던 아들을 둔 지인의 말을 옮기는 것으로, 행동과 개입, 그 시작의 첫발을 제언하고 싶다.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사회가 책임져야 할 '환우 돌봄'을 엄마에게, 가족에게만 돌리지 말고, 사회가, 마을이 '환우 엄마'가 돼주세요."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 정신질환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그 혼돈의 연대기

론 파워스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심심(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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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