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가을 오후, 횡단보도가 있는 사거리에 멈췄다. 그 순간 햇볕이 아직은 따갑다는 걸 느꼈다. 다행히 구청에서 새워 놓은 파라솔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파라솔 그늘 안에 몸을 맡기고 짧은 상념에 빠져 들었다. 필자 머릿속엔 피아니스트 문용 3집의 피아노 선율이 떠올랐다. 가을이 무르익는 요샌,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곡을 많이 듣는다. 

지난 9월 9일, 피아니스트 문용(본명 김문용)이 4년 만에 3집 < #도시파라솔 >을 발매했다. 1집은 <소년의 꿈>(2007), 2집은 < UND >(2015)였다. 2집은 '소년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었을까'로 소개한 바 있다. 3집은 유튜브에서 전곡 듣기가 가능하다. '문용 #도시파라솔 전곡 함께 듣기'. 타이틀 곡 '도시방랑자'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허해진다. 구슬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피아니스트 문용 3집 <#도시파라솔> 앨범 재킷 도시인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 문용. 결국 위안은 사람에게서 온다고 그는 강조했다.

▲ 피아니스트 문용 3집 <#도시파라솔> 앨범 재킷 도시인들을 위로하고 싶다는 피아니스트 문용. 결국 위안은 사람에게서 온다고 그는 강조했다. ⓒ 문용

 
피아니스트 문용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덕분에 한동안 바쁜 날을 지냈다. 그는 '퀸'의 트리뷰트 밴드인 '영부인밴드'에서 키보디스트로 활발히 활동했다. 현재 문용은 서울시 마을라디오 용산FM에서 '피아니스트 문용의 다정한 영화음악'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2018 마을라디오 콘텐츠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도시방랑자'엔 바람 소리가 배경음으로 들린다. 일부러 그렇게 녹음한 것일까? 지난 25일 피아니스트 문용을 인터뷰했다.

그는 "첫 곡 '도시방랑자'는 '가을남자'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터덜터덜 걷는 듯한 효과를 주고, 그 주변을 감싸는 가을바람을 묘사한 효과를 입혔습니다"며 "소닉 유스(Sonic Youth)가 리메이크한 슈퍼스타(Superstar)를 좋아하는데, 그 곡에 등장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노리다가 분위기에 걸맞게 가을바람으로 발전한 듯합니다"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문용이 연주하는 모습. 1집 <소년의 꿈>, 2집 <UND>에 이어 피아니스트 문용은 3집 <#도시파라솔>을 발매했다.

▲ 피아니스트 문용이 연주하는 모습. 1집 <소년의 꿈>, 2집 에 이어 피아니스트 문용은 3집 <#도시파라솔>을 발매했다. ⓒ 문용

 
도시파라솔 안에 도시방랑자들
 
음악을 많이 듣다보니, 어느 순간 내가 한 음 한 음을 듣는 게 아니라 그 사이 사이의 공백을 듣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적도 있다. 피아노 선율 속에서 우리는 음계를 알아차리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있는 쉼과 공간을 그리워하고 듣고 있었던 건 아닌가. 노래와 노래 사이의 휴식, 전주와 간주 사이의 어떤 기다림을 즐기는 건 아니냐는 말이다. 

최근 읽은 방수진 시인의 <한때 구름이었다>(문학수첩, 2019.08.16.)에는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낙엽을 버티는 힘'에서 방수진 시인은 "가랑비 몇 방울에도 못 이기는 척 / 떨어지는 잎사귀가 있다 / 잎맥 끝자락부터 몸을 뉘어 놓는, 허나 / 누군가의 어깨 위로 제 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 낙엽과 낙엽 사이 그 허공의 힘으로 눕는다"고 적었다.(71쪽) 낙엽이 떨어지는 건 물체에 닿기 위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낙엽이 만들어놓은 그 공간의 허무함에 안착하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문용의 2집은 사실 조금 무거웠다. 생업과 음악이라는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분리된 자아를 바탕으로 쓴 곡들이 많다. 앨범 재킷 역시 머리가 둘 달린 방울뱀으로 묘사됐다. 그런데 이번 3집 <#도시파라솔>은 좀 더 밝아지고, 경쾌해진 느낌이다. 가을과 잘 어울린다. 두 번째 곡인 '잘부탁합니다' 같은 경우,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어느 카페에서 연인과 함께 들으면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다. 피아니스트 문용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피아니스트 문용은 "대략 15년 전, 막연히 '리듬이 있는' 피아노 앨범을 만들고 싶어서 구상을 시작을 했고, 특별히 밝고 경쾌한 것을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라며 "하지만 리듬을 가미한 덕분에 음악을 듣는 분들이 비교적 경쾌한 사운드로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라고 답했다. '행복의 섬', 'La Cuisine', '안녕' 등을 듣고 있으면 춤을 추고 싶다. 
   
소셜 펀딩으로 발매한 3집 <#도시파라솔> 컨셉 사진. 우리는 음과 음 사이, 도시의 빛과 그늘 사이 그 공백을 꿈꾸는 건 아닐까.

▲ 소셜 펀딩으로 발매한 3집 <#도시파라솔> 컨셉 사진. 우리는 음과 음 사이, 도시의 빛과 그늘 사이 그 공백을 꿈꾸는 건 아닐까. ⓒ 문용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꿈꾸며

앨범 에필로그를 보면, 그는 이번 앨범 < #도시파라솔 >이 "도시 미생들의 멍든 가슴을 치유할 위로의 음악이 되길 바랍니다"고 소망했다. '도시인(방랑자)'은 마치 마른 물고기처럼 도시에 살지만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듯하다. 피아니스트 문용이 꿈꾸는 도시인을 위한 위안, 더불어 삶이란 무엇일까? 그는 앨범 곡들의 제목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나만의 '행복의 섬'이 존재하는, 어느 정도 균형잡힌 생활이 아니라, 서서히 '암살' 당해 숨통이 조여 오는 처지에 놓여있다면, 과감히 먼저 '안녕'을 고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도시의 빛과 그늘이란 그 사이 공백 때문에 더욱 커 보인다. 마치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이 영원히 메워질 수 없는 것처럼.

아울러, 피아니스트 문용은 "제가 생각하는 위안은 결국 '사람'입니다. 근원적 위안은 사람에게서 받는다고 생각합니다"라며 "그래서 다소 느슨한 들, 온전히 혼자가 아닌 연결된 느낌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 느낌이 우리가 도시에 살아가도록 지지해주는 심리적 기반으로서 존재한다고 봅니다"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그는 "혐오는 혐오를 낳고, 그건 혐오를 조장한 사람의 의도에 부합하는 일입니다. 서로의 색채를 아름답게 바라보길 빕니다"라고 바랐다. 

방수진 시인은 <자라나는 소년들>에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바람이라 부릅니다"(42쪽)고 썼다. 도시인들이 외로운 건 무수히 많은 바람 때문이 아닐까. 가을바람이 조금씩 마음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요즘, 피아니스트 문용의 3집 < #도시파라솔 >을 들어보자. 음과 음 사이의 공백을 긴 호흡으로 기다리다보면, 돌아오지 못할 사람이 언젠가 영화처럼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그리움을 삭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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