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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를 시야에 두고 있다'는 아이치현 오무라 지사의 발언을 1면으로 보도하고 있는 26일자 아사히 신문
 "재개를 시야에 두고 있다"는 아이치현 오무라 지사의 발언을 1면으로 보도하고 있는 26일자 아사히 신문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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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야에서 열리고 있는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아래 트리엔날레)'의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아래 부자유전)'의 재개와 관련된 움직임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전시가 중단된 지난 8월 4일 이후, 재개를 위한 '부자유전' 실행위원회와 시민들의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집회, 행사장 주변에서의 피케팅을 비롯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전시 재개를 위한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던 주최측이 드디어 재개와 관련된 움직임에 나섰다. 이번 '트리엔날레'의 주최측 실행위원회 회장인 아이치현 오무라 지사는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재개를 시야에 두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이번 '부자유전' 중지와 관련된 전시에 대해 검증하는 '검증위원회'의 중간보고에 따른 것. 전시 중단 이후 오무라 지사의 지시에 따라 설치된 '검증위원회'는 25일 있었던 중간보고를 통해 '부자유전'의 전시가 "'표현의 자유'나 현실의 답답함에 대해 생각한다는 착안은 타당하다"고 평가하면서 "조건이 갖추어지는 대로 빠르게 재개를 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로써 두 달 가까이 이어져 온 '부자유전' 전시 중지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 것이다.

또 다른 '검열' 있을 수 없어

하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 상황이다. 검증위원회가 주장하는 "조건이 갖추어지는 대로"의 내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 '조건'은 '전시방법이나 해설프로그램의 개선과 추가', '사진촬영과 SNS확산을 막는 룰을 철저하게 함'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부자유전' 실행위원회와 '부자유전' 재개를 위해 활동해 온 시민들도 '전시 재개'가 비로소 언급된 것에 대해 반기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분위기이다. 검증위원회가 주장하는 내용이 또 다른 '검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검증위원회가 얘기하는 해설프로그램의 내용 중 일부에는 "일본군 '성노예'의 역사실 사실을 불확실한 것으로 표현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자유전' 실행위원회는 다음날인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일단 재개 소식을 환영하면서도 검증위원회의 중간보고가 또 다른 검열에 해당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검증위원회가 언급한 일본군 성노예 관련 전시 내용에 대해서도 "검증위원회가 공평성을 내세워,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회가 전시설명문에 기재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사회적 공정과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자세가 아닐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재개'는 말할 것도 없이 현상복귀를 의미하고, 우리는 조건없는 재개를 강하게 요구하며 그를 위한 협의라면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재개를 바라는 아이치현민의 모임'의 시민들도 오무라 지사의 전시 재개 표명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재개의 방법은 '조건없는' 원상복귀임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남은 기간 동안에도 집회를 비롯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재개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활동을 계속할 예정이다.
 
전시 중지가 두 달 가까워 옴에도 전시장 입구에서의 시민들의 피케팅은 계속되고 있다
 전시 중지가 두 달 가까워 옴에도 전시장 입구에서의 시민들의 피케팅은 계속되고 있다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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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번 매코맥 등, 외국 시민들도 재개에 한목소리

재개를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일본 국내에만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 외 다른 나라의 시민들이 '부자유전' 재개를 위한 성명을 발표했다. 기자를 비롯한 외국 거주 한국인들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아이치 트리엔날레2019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세계 시민' 108명은 26일 재개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에는 일본어 외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한국어로도 번역되어 <일본, 허울뿐인 풍요>로 알려진 호주 국립대학 개번 매코맥 명예교수와 <죽어가는 천황의 나라에서>의 저자인 시카고 대학 노마 필드 명예교수를 비롯해 전 세계의 지식인, 예술가, 일반 시민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번 우익들의 주요 공격 표적이 된 '평화의 소녀상'이 성폭력 희생자들에 대한 헌정이며 평화 세상에 대한 염원이 담겨진 작품임을 언급하며 주최측이 "부당한 압력과 폭력에 굴복해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돌아보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이번 '부자유전' 전시 중지는 세계인권선언 19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트리엔날레가 대규모 국제 행사에 걸맞게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더 이상 짓밟지 말고 하루 속히 전시를 재개할 것을 요구했다.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1면에 다룬 아사히 신문 27일자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정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1면에 다룬 아사히 신문 27일자
ⓒ 이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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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재개 막으려는 일본 정부

오무라 지사가 '재개'를 언급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일본의 문화정책을 담당하는 문화청은 이번 '부자유전' 전시가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중앙정부에서 지급하기로 한 7800만 엔(약 8억 원)을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대해 오무라 지사는 절차상의 문제가 없을 뿐더러 정부로부터도 보조금에 대한 약속을 공식적으로 받았음을 확인했다. 또한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법적 소송도 불사할 것임을 시사했다.

지금까지의 역사 인식을 볼 때 일본 정부의 이런 대응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자유전' 재개를 어떻게든 막아보려는 이들의 '초조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부자유전,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앞으로 남은 시간은 채 3주가 되지 않는다. '부자유전' 실행위원회와 일본의 시민들은 부당한 권력의 검열과 폭력에 맞서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손에 넣는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써낼 수 있을까? 기자도 일본에 사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활동에 힘을 보태면서 평화의 소녀상이 시민들과 재회하는 감동의 순간을 전하는 기사를 쓰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태그:#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아이치 트리엔날레, #평화의 소녀상, #전시 재개, #오무라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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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고야의 장애인 인형극단 '종이풍선(紙風船)'에서 일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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