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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가 24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가 24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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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축소·은폐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헌병수사관과 군의관, 군 검찰관, 부대 간부들까지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서른 명 가까이를 고소·고발했는데 그중에 지금껏 단 한 명도 책임을 진 사람이 없다."

2014년 여름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던 이른바 '윤 일병 사건'의 유가족 김진모씨의 말이다. 김씨는 선임병들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당하다 고통 속에 숨져간 고 윤승주 일병(사후 상병으로 추서)의 매형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큰 충격 속에 빠뜨렸다. 한 병사가 목숨을 잃을 때까지 한 달 넘게 지속적으로 가해졌던 선임병들의 무자비한 구타와 엽기적 가혹행위가 밝혀졌다. 민낯을 드러낸 야만적 병영 문화에 온 국민이 경악했다.
 
윤 일병 사건이 처음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2014년 4월 6일, 폭행을 당하다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간 윤 일병이 이튿날 숨진 직후 군 당국은 '선임병에게 맞고 쓰러진 후 음식물에 기도가 막힌 병사가 민간 병원으로 후송된 지 하루 만에 숨졌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육군은 언론 브리핑에서 사망 원인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뇌에 산소공급이 중단돼 발생한 뇌손상"으로 명시했다. '기도 폐쇄에 의한 뇌손상'이 사인이라는 육군의 설명에선 폭행의 심각성은 별로 부각되지 않았고, '음식물을 먹다가 폭행을 당해 발생한 우발적 사고'라는 뉘앙스가 강했다.
 
윤 일병의 사인이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보도자료가 기자들에게 배포된 시점(2014년 4월 7일 오후 7시 51분)은 아직 사체에 대한 검시를 시작하지도 않았던 때로, 이는 사망 다음날 아침 국방장관에게 제출된 중요사건보고에도 그대로 담겼다. 부검 → 장관보고 → 언론보도의 정상적인 순서가 아니라, 거꾸로 언론보도 → 장관보고 → 부검 순으로 질식사라는 사인이 굳어진 것이다. 이는 군 검찰이 가해자들을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로 기소하는 데 주된 근거가 됐다.
 
'냉동식품을 먹던 병사가 선임들로부터 폭행을 당해 음식이 목에 걸려 질식사한 사건' 정도로 치부된 윤 일병 사건은 3개월 넘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7월 30일 KBS가 윤 일병이 목숨을 잃었던 데는 상상을 뛰어 넘는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 전까지 육군의 설명을 전한 보도 외에 단 한 건의 관련 보도가 없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KBS 보도 직후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열고 윤 일병에게 가해졌던 끔찍한 폭력의 실상을 낱낱이 폭로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자칫 묻힐 뻔했던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 데는 유족의 끈질긴 노력이 숨어 있었다. 김진모씨는 사건 발생 직후 병원에서 처남의 몸에 남아 있던 멍 자국을 사진으로 기록했고, 어떤 언론도 주목하지 않던 상황에서 모든 공판에 참석하면서 증거를 수집해왔다.
 
분노한 여론 앞에 8월 4일 한민구 국방장관이 대국민사과를 발표했고, 5일에는 권오성 육군참모총장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육군은 재판관할을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이관했고, 군 검찰은 가해자들에게 최초 적용했던 상해치사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했다.
 
2016년 6월 3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주범 이아무개 병장은 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40년, 하아무개 병장과 이아무개 상병, 지아무개 상병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 유아무개 하사는 징역 5년형이 확정됐다.
 
폭행의 직접 가해자들에게 단죄가 이뤄진 후, 윤 일병의 유족은 사건 축소·은폐 의혹을 사고 있는 헌병수사관과 군 검찰관, 부검의 등을 직무유기, 허위진단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군 검찰은 이들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족은 포기하지 않았다. 2017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이다.
 
재판이 시작된 지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소송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그동안 재판부가 두 번 바뀐 데다, 잘해야 서너 달에 한 번 공판이 열리는 탓에 언제쯤 결과가 나올지 기약하기 어렵다.

그래도 의미 있는 성과는 있었다. 윤 일병의 사인에 대해 지금껏 알려진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에서 '횡문근융해증'이라는 감정결과를 도출해낸 것도 그중 하나다. 최근에는 당초 군 당국이 윤 일병의 사인으로 내세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사'를 민간병원 의사에게서 들었다고 주장했던 헌병수사관을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게 됐다.
 
지난 24일 <오마이뉴스>는 고 윤승주 일병의 매형 김진모씨를 만나 지난 5년 동안 유족들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는 경기도 하남시 김씨 자택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 "의사, 군법무관, 군간부 다 한통속이 되어 조작했다"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가 24일 경기도 하남시 자택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군 당국을 상대로 이어가고 있는 힘겨운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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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당초 국가보훈처는 윤 일병의 사망이 국가 수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서 윤 일병의 국가유공자 지정을 거부해왔다.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2년 반 동안 1심이 진행 중이었는데 재판부가 화해조정 권고를 했다. 유족과 보훈처가 이를 받아들여 지난 2018년 1월 3일 마침내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 우리로선 첫 번째 성과였다."
 
- 사건 직후부터 유족은 윤 일병이 '기도폐쇄에 의한 질식'이 아니라 폭행으로 인한 사망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윤 일병이 사망한 지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반드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서 내가 사진을 찍어놨다. 이 사진을 보고도 질식사로 죽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군 당국은 처음부터 이 사건이 살인죄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분명하다. '구타는 있었지만 질식사로 죽었다'고 사인을 둔갑시켰다. 헌병은 조작에 불리한 증거들은 일부러 배제시켰고, 질식사에 유리한 증거들은 부각시켰다.
 
다행스럽게도 질식사했다는 증거는 음식물을 먹다가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한 가지 사실밖에 없었지만, 구타가 직접적 원인이 돼 죽음에 이르렀다는 증거는 차고도 넘쳤다. 현장검증 동영상을 보면 냉동식품을 먹던 중 가해자들이 윤 일병을 폭행했다는 걸 보여줄 뿐, 음식물을 먹다가 목을 맞아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죽었다는 내용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는다.
 
또 윤 일병이 폭행을 당하다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가던 광경을 우연히 본 제보자가 가해자 중 한 사람으로부터 폭행사실을 전해 듣고는 이날 밤 본부포대장에게 공중전화로 보고했다. 제보자는 윤 일병이 음식물을 먹다가 질식한 것이 아니라 폭행 때문에 쓰러졌다고 분명히 말했고, 본부포대장은 이런 내용이 담긴 통화 녹음과 메모를 다음날 아침 대대장에게 보고했다. 이후 대대장은 부대를 방문했던 헌병대장에게 이런 내용을 전달했다. 윤 일병이 숨지기 전 이미 헌병대에서는 질식이 아니라 폭행이 원인이라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다."
 
- 4월 6일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갔던 윤 일병은 다음날인 7일 오후 4시 20분께 사망했다. 윤 일병이 사망하던 날 저녁 육군이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음식물이 기도를 막아 발생한 뇌손상으로 추정"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또 이는 국방장관에게 보고된 중요사건보고(8일 오전)에도 그대로 담겼다. 정작 부검은 이후(8일 오후 3시)에서야 이뤄졌다. 부검이 이뤄지기도 전에 서둘러 '질식사'로 결론 내리려 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군이 사인을 질식사로 꿰어 맞추려 했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건 국군양주병원 의무기록지와 부검감정서다. 가해자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다 심정지가 온 윤 일병은 연천의료원-국군양주병원-의정부 성모병원 순으로 후송됐다.
 
국군양주병원 군의관은 연천의료원과의 전화통화로 '응급처치시 윤 일병의 입과 인두에서 구토 및 음식물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을 들었다고 의무기록지에 기재했다. 하지만 내가 직접 연천의료원 의료진을 만나 확인한 결과, 응급처치를 할 때 나온 음식물은 밥풀 크기 정도의 조그만 조각 하나뿐이었다고 했다. 또 국군양주병원의 전화를 받거나 그런 사실을 이야기 한 적도 없다고 했다.
 
국군양주병원의 거짓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윤 일병을 후송하면서 또 다른 군의관을 앰뷸런스에 동승시켜 성모병원 응급실 의사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전했던 거다. 이 두 가지 거짓말이 국방부 조사본부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감정서의 사인 판단 근거로 제시돼 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고 윤승주 일병’의 매형 김진모씨가 부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갈비뼈 15대가 부러졌는데도, 부검의는 심폐소생술 때문에 부러졌다”고 사인조작 의혹을 지적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고 윤승주 일병’의 매형 김진모씨가 부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갈비뼈 15대가 부러졌는데도, 부검의는 심폐소생술 때문에 부러졌다”고 사인조작 의혹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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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검 현장에도 직접 입회한 것으로 안다. 당시 사체 상태는 어땠나.
"전신에 타박상이 있었다. 허벅지와 무릎에서도 광범위한 피하출혈이 발견됐다. 누가 봐도 과다출혈이어서 내가 부검의에게 '과다출혈로 죽은 것 아니냐'고 항의했다. 하지만 부검의는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심지어 갈비뼈 15대가 부러졌는데도, 부검의는 심폐소생술 때문에 부러졌다고 했다.
 
부검의가 작성한 부검감정서에는 '후두, 기관, 기관지에서 음식물이 관찰되는 점', '민간병원 의사에 의하면 최초 사망자 기도에 음식물이 차 있었던 점', '민간병원 의사에 의하면 기도폐쇄에 의한 뇌손상으로 사망했다는 소견인 점'을 근거로 '기도폐쇄성 질식사로 추정'된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민간병원 의사는 사인에 대해 언급한 적이 전혀 없다고 했고, 최초 윤 일병에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던 연천의료원 간호사 역시 석션을 했을 때 밥풀 크기의 음식물이 빨려나왔을 뿐 다량의 음식물이 나왔다가 말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 헌병수사관과 부검의 등을 직무유기, 허위진단서 작성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부대를 잘못 관리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부대지휘관, 거짓말을 한 헌병수사 담당자, 군의관 등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까지 거의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가재는 게 편'이라고 군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했다."
 
- 불기소 처분 이유에 대해선 뭐라고 설명했나.
"군사법원에서는 '음식물이 기도에 가득 차 있었다'는 이야기를 자신들은 들은 것 같다는 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어주더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들었다는 건데, 이런 진술의 신빙성을 군사법원은 따지지 않았다. 분명한 건 이런 얘기를 한 민간병원 의료진은 아무도 없다는 거다. 둘 중 하나는 분명히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양측을 불러다가 대질 신문을 하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도 그걸 하지 않더라. 군사법원이든 군 검찰이든 별로 진상 규명 의지가 없었다."
 
- 유족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병사가 장기간 폭행을 당했는데도 보호하지 못한 점, 사망 원인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 사망 이후 유족에게 수사자료를 성실하게 공개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지난 2017년 4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
"혼자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혀보려 하다가 초번에 좌절도 많이 맛봤다. 그래서 형사고발을 통해서 진실을 규명하고 싶었는데, 군사법원이 피의자들의 보호막 역할을 할 줄을 몰랐다. 군 검찰에 고발하면 무혐의 처분을 내리고 군사법원에 항고를 하면 또 기각을 시키더라.
 
고소·고발을 해도 군인들은 군사법원으로 이첩돼 버리니, 민간법원에서는 이걸 처리할 방법이 없다. 이런 상황에선 민사소송을 해서 당시 수사 자료들을 민간법원으로 나오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축소은폐 정황이 담겨 있는 증거들을 민간 법관들이 보면 판단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취지로 소송을 시작하게 됐다."
 
- 군 당국을 상대로 일일이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증거자료들을 수집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재판부에서 육군본부에 사실조회를 요청하면 육군본부에서 개인정보가 들어 있다는 이유를 대면서 제출을 하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서 필요한 자료를 입수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오래 걸리고 힘이 든다.

예를 들면, 수사기록 몇 페이지에 있는 '검안검시 동영상'에 대해 공개 신청을 했는데, 육군 쪽에서 '부존재(존재하지 않는다)'고 답변이 왔다. 내가 직접 검안검시에 입회를 했기 때문에 동영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 무슨 소리냐고 전화해서 따졌다. 그랬더니 수사기록에는 '검안검시 동영상'이 아니라 'VTR CD'라고 되어 있어서 없다고 했다는 거다. 말장난 하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명칭조차 밝히지 않고 증거를 꽁꽁 숨겨 놓고 있었다."

- 군 당국이 사건 초기부터 윤 일병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물증들을 아직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 제보자가 '윤 일병이 음식을 먹다가 질식한 것이 아니라 폭행 때문에 쓰러졌다'고 본부포대장에게 보고한 내용을 담은 통화 녹음과 메모가 헌병수사기록에는 등재되지 않고 사라져 버렸다.

또 사건 발생 당일 윤 일병이 입원해 있던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급파된 헌병 수사관이 윤 일병의 온 몸 구석구석을 찍은 6장의 사진이 있었는데, 헌병대는 1장만 유족에게 공개하고 나머지 5장은 '비공개' 또는 '부존재' 통보했다. 민간병원 의사에게 질식사했다는 소견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헌병 수사관은 이런 내용을 기록했던 수첩을 분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 민사소송 과정에서 윤 일병의 사인과 관련해 새로운 사실도 밝혀졌다.
"최초 군 검찰은 윤 일병의 사망원인이 '폭행으로 인한 기도폐쇄' 때문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1심 공판 과정에서 사인을 '좌멸증후군 및 속발성 쇼크'로 변경했다. 폭행으로 근육조직이 파괴돼 발생한 유독물질이 장기에 악영향을 끼쳤거나, 외상으로 인한 출혈로 몸속을 흐르는 혈액이 부족해지면서 쇼크로 사망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이번 민사소송 과정에서 재판부가 직권으로 법의학자에게 사인에 대한 의견서를 받았다. 법의학자 이숭덕 교수는 윤 일병의 사인을 '횡문근융해증'이라고 감정했다. 외상으로 근육이 괴사하면 단백질 효소인 '크레아틴키나제'라는 독성물질이 생기는데, 이게 혈관으로 스며들어서 신장의 세뇨관을 파괴시키면서 신장이 기능을 멈췄다는 설명이다. 좌멸증후군과 비슷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 사인을 규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 지난 5년간 가해자들에 대한 재판, 군 관계자들에 대한 고소·고발 사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소송 등을 진행하고 있다.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인가.
"가족들의 시간은 5년 전 승주가 세상을 떠나던 그때에 여전히 멈춰 있다. 아무리 잘 되어봤자, 승주가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비극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가족들은 행복할 수가 없다. 국가유공자로 지정된다고 해서, 가해자가 40년형을 받았다고 해서 가족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겠는가.

아들이, 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내가 행복해도 될까? 우리가 행복해도 될까? 이렇게 좋은 집에서, 좋은 음식 먹으면서 살아도 될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이 정도인데 국가유공자도 되지 못하고 가해자 처벌도 하지 못한 집은 가정 자체가 파괴돼 버릴 수밖에 없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는 “부대를 잘못 관리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부대지휘관, 거짓말을 한 헌병수사 담당자, 군의관 등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중인 ‘윤 일병 사건’ 매형 김진모씨는 “부대를 잘못 관리하고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한 부대지휘관, 거짓말을 한 헌병수사 담당자, 군의관 등은 반드시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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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진행하고 있는 재판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방부와 군 조직이 군에서 아들을 잃은 민간인을 상대로 온갖 겁박과 사기, 공갈을 다 자행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개인에게 입증하라고 한다. 정말 비열하다. 군이 이런 일을 60년, 70년째 계속 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미처 몰랐다. 군 의문사가 수천, 수만 건 되는 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내 가족이 당하지 않았더라면 가장 좋았겠지만, 다들 자신에겐 닥칠 일이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나라에서 1년에 70여 가정은 이런 일을 겪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군 의문사에 관심을 가지고 죽 살펴보니, 사건이 터지면 군은 어떤 매뉴얼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도 이 매뉴얼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보자고 다짐했다. 만나는 군인은 관등성명을 적어 놓고 인상착의도 몽타주를 그리듯 기록하고, 말투가 어떤지 특이점이 뭔지, 녹취도 반드시 하고 있다.
 
지난 5년간 생업을 다 포기하고 이 일에만 매달려 있다. 돈이야 다른 가족들이 도와주니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싸움이 나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다. 선례를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누군가는 내가 걸었던 길을 따라오면서 힘을 얻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그 길을 앞서서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8년 1월, 국가보훈처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숨진 고 윤승주 상병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 고 윤승주 상병 국가유공자 증서 지난 2018년 1월, 국가보훈처는 선임병들의 구타와 가혹행위로 숨진 고 윤승주 상병을 국가유공자로 지정했다.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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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 일병, #김진모, #28사단 폭행사망 사건, #군 사망사고, #병영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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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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