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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첫째 주에 옥상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40년 넘는 아파트 생활에서 얻지 못한 경험을 맛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 - 기자말

40년 넘게 아파트에서 살았다. 1976년 12월부터 아파트에서 살았으니까 어쩌면 난 대한민국 아파트 개발 역사와 함께 살아온 걸 수도 있다. 학창시절인 1980년대까지는 강남에서 살았고, 대학 졸업 후 1990년대에 잠시 목동에서 살았다. 그리고 결혼 후 2000년대부터는 쭉 분당에서 살고 있다.

어릴 때는 빈 땅마다 아파트가 들어서는 걸 보며 자랐다. 강남에 부동산 열풍이 부는 걸 눈으로 직접 본 거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서울 올림픽을 치르면서는 사람이 살던 집들을 헐고, 논과 밭 그리고 산들을 깎아서 아파트를 짓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신도시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개발된 그런 곳에서 내가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 단지 40년 넘게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그 편안함에 푹 빠져 지냈었다. 하지만..
▲ 신도시 아파트 단지 40년 넘게 아파트에서 살아온 나는 그 편안함에 푹 빠져 지냈었다. 하지만..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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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아파트 생활을 이어온 것 같다. 부모님이 주거 공간으로 선택했던 아파트라는 공간이 익숙해서 나도 자연스럽게 선택했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도 주거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가 전체 주거 공간의 약 50%, 단독주택이 약 33%,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이 약 12%라고 한다. 주택 이외의 거처도 5%에 달한다.

그 50% 안에 속했던 나는 "집은 역시 아파트가 최고야"라는 아파트 중심적인 사고에 빠져서 살아왔던 것 같다. 신도시 아파트에서 사는 삶은 그만큼 편안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아파트에서 사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한정된 공간에 많은 사람이 뒤섞여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때부터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안 들리던 게 들렸다. 편리한 일상으로 생각했던 게 점점 불만으로 다가오는 거였다.

처음엔 사람 사는 정으로 생각했던 이웃의 시선과 관심이 점점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이웃 간 단절을 극대화한다고 하지만 같은 공간에 살면서 시설을 공유하다 보면 낯이 익게 마련이다.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안부를 나누게 된다. 거기까지는 함께 사는 이웃끼리 나누는 따뜻한 온도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살았던 아파트의 같은 층 복도 양 끝 집들은 모두 화분을 복도에 내놓고 키웠다. 그 집 사람들은 아침마다 복도에 나와 화분에 물을 주며 출근하는 사람들과 안부를 일상처럼 나누기도 했다. 나도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그들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들은 복도뿐만 아니라 아파트 화단 근처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내가 어쩌다 평소보다 늦게 나가거나 일찍 들어와도 마주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오늘은 왜 늦게 나가우?"라거나 "일찍 들어오셨네, 어디 아프신가?"라며 개인사에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부담스러워졌다.

부담스러운 관심은 어느 순간부터 참견 혹은 감시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2년 전 어느 사건을 계기로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파트 생활이 불편해졌다.

당시 우리 집 노견의 몸에 종양이 생겼다. 16년을 함께 산 개가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던 어느 날 이웃들이 우리 집에 몰려와 항의했다. 병든 개의 몸에서 불쾌한 냄새가 났는데, 환기를 위해서 창문이나 현관을 열면 그 악취가 다른 집까지 풍긴다는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이웃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창피했다. 그렇게 앓던 개가 죽은 뒤, 우리 가족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집을 깨끗이 청소했다. 며칠 후 출근길에 만난 이웃들은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미소를 지으며 개의 안부를 물었다. 분명 우리 가족이 잘못한 거였지만, 현관을 두드리며 화내고 소리치던 그들의 얼굴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것들이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졌다. 식사 때면 다른 집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불쾌하게 흘러들어왔고, 주말이면 찾아오는 옆집 손주들이 뛰어노는 소리도 소란스럽게 들려왔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물어오는 안부가 간섭으로도 느껴졌다. 동네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단골이라고 반기는 얼굴에서 장삿속이 보였다. 한마디로 그 동네에 정이 떠나버린 거다.

그게 약 2년 전이었다. 그때부터 아내와 난 이사를 고민하며 다양한 선택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 고민과 대화 끝에 지난 여름 즈음 아파트를 떠나보자고 결정을 내렸다.
 
옥상에서 바라 본 분당 얼마 전 이사 온 옥상에서 바라 본 분당 아파트 단지
▲ 옥상에서 바라 본 분당 얼마 전 이사 온 옥상에서 바라 본 분당 아파트 단지
ⓒ 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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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에게는 마당 있는 집에 살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다. 우리는 분당 근교의 전원주택을 알아봤지만, 비용과 교통문제로 일찌감치 후보에서 제외했다. 대신 마당처럼 꾸밀 수 있는 옥상을 가진 공동 주택을 찾아보게 됐다.

우리는 우선 인터넷으로 옥상집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검색한 내용은 대부분 아파트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자료였다. 아파트가 50%에 육박한다지만, 나머지 50%를 위한 자료는 그에 비해 불친절했다. 우리 부부는 발품을 판 끝에 분당 어느 산 아래 옥상집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 복잡다단한 사연은 다음 회에 말하겠다.

(* 다음 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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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을 위해 하프타임을 보내는 50대 남자. 월간문학 등단 수필가이자 동화 공부 중인 작가. 그리고 여러 매체에 글을 연재 중인 칼럼니스트.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