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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유리창을 통해서 본 수장고 내부 모습. 바닥, 천정, 벽면, 가구 등 공간 내 모든 것이 오동나무로 제작됐다. 내부 체험 시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대형 유리창을 통해서 본 수장고 내부 모습. 바닥, 천정, 벽면, 가구 등 공간 내 모든 것이 오동나무로 제작됐다. 내부 체험 시 사진 촬영은 금지됐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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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왕실 유물 5만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 지하 2층에 위치한 수장고의 육중한 문 앞에 스무 명 안팎의 사람들이 모였다. 일반 시민에게 공개하는 박물관 수장고 체험행사를 위해서였다.

이날 행사를 연 학예연구관실은 30㎝ 두께의 철제 문이 열리기 전, 마스크와 덧신, 라텍스 장갑, 이름표를 관람객에게 나눠줬다. 사진 촬영은 금지됐고, 일체의 소지품도 수장고 반입이 금지됐다. 휴대전화도 갖고 들어갈 수 없었다. 
 
 '열린 수장고' 체험 프로그램에 앞서 지급받은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 이름표.
 "열린 수장고" 체험 프로그램에 앞서 지급받은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 이름표.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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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수장고 체험을 안내·해설한 학예연구사가 디지털 키와 아날로그 키를 차례로 사용해 문을 여는 동안 관람객들 사이에 살짝 긴장감이 흘렀다. 학예사는 "금고와 같은 기능을 이 철제문이 한다"면서 "화재 예방과 도난 방지의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조선 왕실의 종묘 제기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기(놋그릇) 및 백자 제기 유물들로, 총 12개의 '오동나무' 수납장에 31종 800여 점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조선 왕실의 제기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가 현재 가정 제례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옻칠 목기와는 전혀 다른 모양이 눈길을 끌었다. 조선의 종묘제례는 고대 중국 주나라의 유교 제례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당시 주나라는 청동 제기를 사용했다.
 
 열린 수장고 내에서 체험한 유기 술동이와 흡사한 실제 유물. 무게가 12kg에 달한다. 전시실에서 촬영했다.
 열린 수장고 내에서 체험한 유기 술동이와 흡사한 실제 유물. 무게가 12kg에 달한다. 전시실에서 촬영했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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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이 제례에 앞서 손을 씻는 그릇과 물을 붓는 도구. 지하 2층 전시실 촬영.
 왕이 제례에 앞서 손을 씻는 그릇과 물을 붓는 도구. 지하 2층 전시실 촬영.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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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삶은 양고기를 담는 제기, 소· 양· 돼지를 도축할 때 쓰는 칼, 주병.
 왼쪽부터 삶은 양고기를 담는 제기, 소· 양· 돼지를 도축할 때 쓰는 칼, 주병.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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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술동이 표면에 새긴 봉황과 닭, 산 문양 등은 아시아 문화권에서 익숙하다고 할 수 있지만, 놋쇠로 만든 제기의 육중한 모습은 다소 생경했다. 이런 양식의 것을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의 공덕과 안녕을 기리는 제례 때 사용했다는 것은 처음 안 사실이었다.

이날 코끼리와 소 모양의 술동이, 용머리가 달린 놋쇠 국자(용작)가 체험용으로 관람객들에게 제공됐다. 수납장에 들어 있는 제기와는 달리 '복제품'이었지만 실제와 똑같은 모양과 크기, 무게로 제작됐다. 학예사에 따르면, 술동이 한 점의 무게는 약 12㎏에 달한다고. 관람객들은 저마다 직접 만져보고, 들어보며 왕실 제기를 체험했다.
 
 종묘 신실 내 제상 재현. 전시실에서 촬영했다.
 종묘 신실 내 제상 재현. 전시실에서 촬영했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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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 행사가 끝난 뒤 같은날 수장고 바로 맞은편 전시실에서 본 '신실 제사상'의 모습은 낯설고 다소 기괴한 느낌을 줬다. 돼지·소를 비롯해 양의 생고기를 덩어리째 종묘제례에 올린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중국 고대의 주술의식에 가깝고, 우리가 익히 알아온 조선시대 문화상과는 약간 동떨어진 모습이라고 할까.    

이날 학예사의 설명에 따르면, 매해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창덕·창경궁 남쪽에 위치한 종묘에서 거행되는 종묘제례 때는 실제 유물이 아닌 중요 무형문화재 유기장이 제작한 제기를 사용한다. 이날 관람객들은 경복궁 내 지하 수장고 안에서 특별한 진품 문화재를 직접 본 것이다. 제기들은 약과·기장·쌀·수수·고기 등을 담는 음식용, 술동이, 촛대·향로·등잔·전촉기(촛농을 담는 그릇)등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돼 수납장 안에 들어 있었다.

제기마다 바코드 태그(tag)가 달려 있는 것도 보였다. 학예사는 "해당 유물이 언제 수장고에 들어왔는지, 보존 처리는 언제 했는지, 전시·대여는 언제 했는지 등 유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은 태그"라고 설명했다. 따로 유물 바닥에 유물 고유번호를 새기는 '넘버링'을 하기도 한다고. 넘버링은 유물을 훼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언제든 지울 수 있는 수성 재료로 쓴다.        

이날 또 한가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수장고 내 환경이다. 벽·바닥·천정·수납장·무진동 밀차·상자·작업대 등 공간 안의 모든 것이 오동나무였다. 오동나무는 제습 및 방습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다. 특히 유기 수장고의 경우 20±4도, 45RH%의 항온과 항습을 유지하고 있다.

유물 재질별로 습도는 다양하게 적용하지만, 온도는 대체로 20±4도를 유지한다. 수납장 유리엔 투명 필름이 부착돼 있다. 유리가 깨져 유물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학예사는 "만약 정전이 돼도 일주일은 문제없이 버틴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일반적으로 박물관 소장유물의 약 5% 정도만 전시실에서 전시된다고 알려졌다. 나머지 95% 가량의 유물이 박물관 수장고에서 휴식을 취한다. 우리가 박물관에서 관람하는 유물이 소장품의 전모는 아닌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경우도 전시유물은 총 1600여 점이지만, 전체 소장품은 그 36배인 5만 8000여 점에 달한다. 그래서 박물관 수장고야말로 문화재의 보고, 박물관의 자존심, 정수라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와 광복, 정부 수립을 거치면서 각급 박물관과 미술관 수장고에 어떤 유물이 어떻게 보관돼 있는지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해외로 반출되거나 소실됐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수장고에 있더라' 하는 유물도 꽤 많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고고학자들이 발굴했으나 지하 수장고에 맥락없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방치돼 있다시피 한 국보급 문화재가 수장고를 조사(이른바 수장고 '발굴')하면서 발견된 경우도 적지않았다.

이렇게 전모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수장고를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닌 일반시민에게 열어젖힌다는 것에 우려의 시선도 만만찮았다. 또 관람객의 알 권리, 문화적 충족을 내세워 박물관 직원들도 출입이 쉽지 않은 내밀한 장소인 수장고를 개방했다가 유물 안전에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어왔다.
 
 지난 6월 4일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 공공수장고 전경.
 지난 6월 4일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 공공수장고 전경.
ⓒ 제주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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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최근 국내에선 수장고 개방이 뚜렷한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말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지난 6월 개관한 국립경주박물관의 영남권 수장고(가칭), 지난 6월 개관한 제주도립미술관 공공수장고,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현재 건립 중인 충청권 수장고(가칭) 등은 모두 수장고 내 일부 공간에서 유물을 관람·교육·체험하는 '열린 수장고' 개념을 도입했다. 

그중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내 박물관 가운데 지난 2016년 3월을 시작으로 열린 수장고 프로그램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이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관람객이 직접 문화재를 포장해 본 체험이었다. 세종과 명성황후의 '어보'(국새) 복제품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고 포장하는 과정이었다. 

에어캡 시트(일명 뽁뽁이)가 아닌 목화솜을 중성한지로 두른 '솜포'로 어보를 포장한 뒤 상자에 넣고 봉하는 체험을 돌아가며 했다. 기자도 학예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어보 포장을 해봤다.

학예사는 "전시나 외부 대여, 보존 처리를 위해 문화재 이동 시 실제로 행하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특히 부모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이 즐거워했다. 한 여성은 "우리 아이는 나중에 커서 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문화재 보존 처리 일을 하고 싶어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궁박물관 측은 이렇게 시민친화적인 프로그램으로 시민에게 다가서고 있지만, 사실 수장고형 전시실과 실제 수장고는 엄연히 다르다. 해외도 마찬가지이지만, 국내 역시 실제 수장고를 일반 관람객에게 그대로 개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부 국립 박물관이 시민 및 언론을 상대로 제한적으로 실제 수장고를 개방한 적만 몇 차례 있었다. 기자가 이날 체험한 수장고도 벽 전면에 대형 유리창을 설치해 관람객이 바깥에서 내부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조성한 일종의 모의 수장고다.    
  
박물관 학예실 관계자는 "유물이 들어 있는 (실제) 수장고의 문을 여는 것은 분기별로 한 번씩 하기로 했지만 2016년 3월부터 시작해 1년만 하고 중단했다"면서도 "수장고를 시민에 개방한다고 발표해 놓고 안할 수가 없어서 대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현재와 같이 전시실 옆 수장고를 만들어 관람객이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볼 수 있게끔 하고, 매월 4회 정기적으로 시민들을 초청해 수장고 안에 직접 들어가 학예사의 해설을 듣는 방식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관계자는 "지금 (모의) 수장고 안에 있는 것은 놋쇠로 만든 제기들이라 아주 민감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유물은 아니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도 실제 수장고와 똑같이 만든 수장고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끔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방형 열린수장고 내 모습. 작업대 위에 유물을 실측하는 자, 두께 재는 도구 등 실측도구와 돋보기, 유물 바닥에 고유번호를 쓰는 넘버링 도구 등이 보인다.
 개방형 열린수장고 내 모습. 작업대 위에 유물을 실측하는 자, 두께 재는 도구 등 실측도구와 돋보기, 유물 바닥에 고유번호를 쓰는 넘버링 도구 등이 보인다.
ⓒ 신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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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고궁박물관의 실제 수장고는 어디에 있을까. 지난 2005년 개관한 이 왕실 유물을 소장 중인 박물관엔 총 19개의 수장고가 존재한다. 이날 기자가 체험한 수장고는 전체 수장고 가운데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19번째 수장고다. 원래 고궁박물관의 수장고는 지난 2005년 서울 용산으로 이사 간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를 물려받은 것이다. 
  
해당 수장고는 놀랍게도 경복궁 근정전∼광화문 사이 지하에 위치해 있다. 여기서 경복궁 서쪽의 고궁박물관까지 약 300m 길이의 통로가 조성돼 있다. 지하 수장고는 크게 서쪽과 동쪽 공간으로 분리되는데, 각각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건설된 것들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서쪽 공간은 본래 방공호와 취조실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옛 조선총독부(중앙청) 서쪽 건물 1층에 일제가 파놓은 지하로 통하는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그 끝에 두꺼운 철문이 보인다. 철문 뒤에 100㎡(30평) 남짓한 규모의 방이 있다. 모래를 채워 방음을 시도한 흔적이 현재 남아 있다.

지하 11m 깊이에 위치한 동쪽 공간은 박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비밀 벙커였다. 국가 비상사태 발생에 대비해 원자탄 공격을 견디도록 철근 콘크리트로 2m 두께의 천정을 만들고 3중 철문 출입구와 제반시설을 갖췄다. 정부 요인의 비상대책회의와 기밀문서 보관 등 전시 대비 업무를 준비한 곳으로 알려졌다.

벙커는 방수 처리가 잘돼 있고 널찍해서 수장고로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는 전언이다. 중앙홀이 위치한 좌우로 16개의 방으로 구성됐고 바닥은 너도밤나무로 마감했다. 전체 면적은 3734m²(1129평)에 달한다. 조선 왕실이 남긴 보물이 대부분 조선의 정궁이었던 경복궁 지하로 들어온 것이다. 또 우리의 씁쓸한 근현대사가 깃든 공간이 오늘날엔 왕족들이 물려준 무가지보를 보관하는 보물창고로 변신한 셈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열린 수장고 프로그램.
 국립고궁박물관의 열린 수장고 프로그램.
ⓒ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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