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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지난 2016년 4월 2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설명회'에서 박원순 시장이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 2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역세권 2030 청년주택 설명회"에서 박원순 시장이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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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 없으면 브리오슈(brioche)를 먹게 하세요."
 

지난 1782년 발간한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에는 이런 일화가 나옵니다. 빵을 살 돈조차 없어 굶주리는 농민들이 있는 마을에 한 지체 높은 공주가 옵니다. 그는 농민들이 먹을 빵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자 "브리오슈(brioche)를 먹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브리오슈는 버터와 계란이 들어간 당시엔 귀족만 먹었던 빵입니다. 공주는 돈이 없어서 빵을 못사는 농민들의 사정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죠. 이 일화는 프랑스혁명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 대신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는 거짓 설화로 발전되기도 했죠.

서울시가 청년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하는 '역세권청년주택'은 이 일화를 생각나게 합니다. 청년 주거 문제의 원인은 경제적 빈곤이라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청년들에게 브리오슈를 권하는 정책입니다.

보증금 최대 1억 원 넘는 청년주택

문제가 뭐냐고요? 대다수 청년들이 입주하기는 턱 없이 비싼 임대료를 책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서대문구 충정로와 강변역 일대에 공급되는 청년주택은 총 621실입니다. 이 가운데 554실이 시세와 비슷하게 (시세의 85~95%) 책정됐습니다.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온 청년주택의 임대료를 살펴볼까요? 서대문구 충정로에 들어설 청년주택 39㎡형의 경우, 민간 임대(일반공급) 보증금은 1억 1280만 원, 월세는 66만 원입니다. 보증금이 1억 원이 넘는데, 월세도 60만 원이 넘습니다. 이보다 좁은 15~17㎡형도 임대보증금은 4850만~5310만 원, 월세는 29만~32만 원 수준입니다.

청년들이 감당 가능한 수준일까요? 중산층 청년들도 입주하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30세 미만 청년 가구주의 전·월세 보증금은 3193만 원입니다. 평균 수준의 청년 가구주가 서대문 청년주택에 입주하려면, 보증금 부담만 1600만~8000만 원이 더 올라갑니다.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들의 경우 부담은 더 커집니다. 지난해 만 29세 미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월 평균 임금은 123만 4000원입니다. 15~17㎡형 주택의 월세만 낸다고 해도 월 소득의 27.5~29.9%가 주거비로 나갑니다.

청년들이 이 부담을 안고 입주를 하고 싶어 할까요? 제가 알고 있는 30세 대기업 직원도 "보증금 더 주고 청년주택 입주하느니, 차라리 내 집 마련 자금을 모으는데 집중 하겠다"고 합니다.

"시세보다 싸다"는 주장은 탁상행정

서울시는 청년주택이 시세의 85~95% 수준이기 때문에 "싸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공급자 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입니다. 또한 시세보다 저렴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시세 기준도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청년주택 임대료 수준은 학자금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들이 감내할 수준은 못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울시는 청년주택 일반 공급분은 '금수저 청년'들도 입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청년주택 일반 공급분의 입주자 자격 요건, 소득과 자산은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다. 수백억 자산가도 입주할 수 있다.
 청년주택 일반 공급분의 입주자 자격 요건, 소득과 자산은 특별히 제한하지 않는다. 수백억 자산가도 입주할 수 있다.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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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주택 민간임대주택(일반 공급)의 입주 요건을 보면, 만 19~39세 이하이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무주택자입니다. 소득이나 자산 기준은 따로 적용하지 않아 고소득, 자산가 청년들도 입주 가능하게 했습니다. 입주 자격을 '가난한 청년'들로만 제한하면 아무도 입주하지 않을 거란 걸 예측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서울시는 청년주택 사업을 하는 민간 사업자에게 온갖 특혜를 줍니다. 개발할 땅의 용도를 상향해줘서, 고밀 개발이 가능하게 하고, 자금도 저금리로 융자해줍니다. 아울러 건축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주고, 필요하면 사업 컨설팅도 해줍니다.

그렇게 행정력과 예산을 들여가면서 공급한다는 주택이 대부분 부유한 청년들에게 돌아갈 판입니다. 입주자 모집이 끝나고 신청자의 자산 규모를 조사해보면 더 명료한 답이 나올 겁니다. 보증금을 1억 원 이상 내면서 입주하는 청년들을 '정책적 배려 대상자'로 봐야 하나요?

비싼 임대료에 대한 지적은 청년주택 정책 초기부터 숱하게 지적돼 왔습니다. 그럼에도 서울시는 여전히 문제의 본질은 외면하는 모습입니다. 청년주택 임대료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류훈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은 지난 10일 <머니투데이>에 기고를 했습니다. 류 본부장은 이 글에서 "청년세대는 직장과의 출퇴근여건 및 편의시설 접근성이 좋은 도심 내 거주를 선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역세권 청년주택 공급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핵심을 놓쳤습니다. 청년 주거 문제가 단순히 전·월세 주택 공급 부족에 기인한다는 단편적인 인식입니다. 정책수요자의 입장을 공감하는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결여된 것 같기도 합니다.

수요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을 흔히 '탁상행정'이라고 합니다. 정책을 만드는 당국자라면, "역세권을 선호하는데 왜 청년들이 외곽에서만 떠도나, 왜 반지하와 고시원을 전전하는가"라고 수요자 입장에서 되물어봐야 합니다.

'그림의 떡' 하나 더 추가하려는 게 아니라면

문제는 주택의 공급이 아닙니다. 역세권에 공급되는 원룸형 전·월세 주택은 차고 넘칩니다. 지금 부동산 중개사이트를 통해 역세권 임대주택 매물들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임대 매물이 많음에도 많은 청년들이 역세권 주택에 못사는 이유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보증금 1억 원이 넘는 청년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청년들에겐 '그림의 떡'이 하나 추가되는 격입니다.

서울시는 저렴한 임대 주택을 어떻게 공급할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것이 공공의 근본적인 역할입니다. 금수저 청년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민간에 맡겨둬도 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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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