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 창작집단3355

 
스스로 육체를 찍는 과정을 통해 외모지상주의 허구성을 통쾌하게 비판한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로 화제를 모았던 박강아름 감독이 이번에는 <박강아름 결혼하다>라는 범상치 않은 제목의 영화를 들고 관객들을 다시 만났다.

지난 5일 폐막한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첫 공개된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제목 그대로 박강아름 감독의 결혼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녀의 첫 장편영화인 <박강아름의 가장무도회> 촬영 도중 진보정당활동가이자 요리사인 정성만과 사랑에 빠진 박강 감독은 결혼 이후 남편과 함께 그토록 바라던 프랑스 유학길에 오른다. 

가난한 유학생 부부의 삶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20대부터 꿈꾸어왔던 길을 차근차근 밟으며 부푼 기대에 접어든 박강 감독은 함께 유학길에 오른 남편이 주부 우울증에 빠지며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맞는다. 

일찍이 프랑스 유학을 계획했던 박강 감독과 다르게 아내를 따라 프랑스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뿐인 성만은 말이 통하지 않는 프랑스에서 집안일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는 것이 소원인 박강 감독은 이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남편의 반응에도 아이를 낳고 육아는 자연스레 남편 성만의 몫으로 돌아간다. 
  
한국에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남편을 아무런 연고가 없는 프랑스에 데려가는 것에 모자라 집안일, 육아까지 떠맡기는 아내가 이기적으로 느껴진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성별만 바뀌었을 뿐 가족을 위한 한쪽 배우자의 일방적인 희생은 한국 가부장적 가족문화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그리고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은 언제나 여성의 숙명처럼 받아들여졌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 창작집단 3355


성 차별적인 문화가 예전만큼은 줄었다고 하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특히 연세가 많은 분) 남편, 아이를 위한 여성의 희생을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최근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놀라운 말은 단연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해"였다. 어르신들에겐 당연한 얘기였을 것이다. 아이는 무조건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게 사회적 통념으로 작용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여성들의 꿈과 욕망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아내를 따라 프랑스에 온 후 가사 노동,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여성영화제 상영 내내 화제가 된 것은 독박 육아와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대상이 남성이기 때문이다. 임신과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되고 가정에서 집안일과 육아를 '독점'으로 수행하거나 부부가 함께 경제활동을 해도 육아와 가사노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성의 삶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살 수는 있어도 그 자체로 독특한 이야기는 되지 못한다. 

남편이던 아내이던 한 쪽 배우자만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을 홀로 감당하는 것은 분명 개선해야 하는 가족 문화의 악습이다. <박강아름 결혼하다>는 본의 아니게 남편에게 집안일과 육아를 떠맡기게 된 감독이 자신에게 내재된 구시대적인 면모를 발견하고 성찰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이 있으면 일단 밀어붙이고 결국 관철시키는 박강아름은 주부 우울증에 걸린 성만을 위해 매주 일요일 자신의 집에서 식당을 여는 프로젝트(외길식당)를 남편과 함께 공동으로 진행하고, 딸 보리를 낳은 이후에는 육아에 시달리는 성만의 고충을 이해하기 위해 한동안 쉬었던 외길식당을 다시 여는 수고로움을 이어나간다. 

그렇다고 영화 속 박강아름 감독이 아예 육아와 집안일을 남편에게 전적으로 떠넘긴 것은 아니다. 사실 남편이 박강 감독보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많아보일 뿐 이를 독박 육아라고 보기도 힘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강 감독은 아이를 혼자 돌보는 시간이 많아진 남편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진다. 또 남편을 달래기 위해 집 거실에 식당도 열고 가족문화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흥미로운 다큐멘터리 영화도 만들었다.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박강아름 결혼하다>(2019) ⓒ 창작집단 3355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희생과 죄책감을 강요 당했던 여성들은 여전히 누구에게도 사과받지 못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래야 행복한 가족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얼마 전까지도 몸소 겪은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가부장적 가족문화에서 오랫동안 여성들이 짊어지고 왔던 성역할을 남자가 대신 수행하는 <박강아름 결혼하다>를 보고 크게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고정된 성 역할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의 꿈을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박강아름 감독 부부가 부러웠다. 요즘은 젊은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 내 평등문화가 점점 자리 잡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가부장제가 뿌리깊게 박혀 있는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기에 <박강아름 결혼하다>의 뜻하지 않는 성 역할 전복은 여러모로 흥미롭게 느껴진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기간 동안 매진 세례를 기록하는 등 영화제 내내 화제가 된 <박강아름 결혼하다>가 조만간 개봉을 통해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이 영화를 통해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가족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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