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의 한을 풀었다. 그동안 세계의 높은 벽에 부딪혔던 한국 농구가 25년간 이어진 농구월드컵 14연패를 끊고, 1승을 거뒀다.

김상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농구 국가대표팀이 지난 8일(현지시간) 중국 광저우 체육관에서 열린 '2019 국제농구연맹(FIBA) 농구월드컵' 순위결정전 M조에서 아프리카의 복병 코트디부아르를 맞아 80-71로 승리했다.

1994년 캐나다 대회 이집트전 이후 25년 만에 세계무대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이로써 순위 결정전 마지막 경기를 마친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1승 4패를 기록하며 대회를 마감했다. 

투혼의 코트디부아르전, 25년 만에 의미있는 1승

한국 대표팀은 '부상병동'이었다.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부상자가 발생했다. 김종규, 이대성, 이정현, 정효근이 결장했다. 사실상 8명으로 코트디부아르를 상대해야 했다. 이미 4연패에 그치면서 사기는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수들은 투혼을 발휘했다. 1쿼터를 18-14로 앞서는 등 초반 흐름이 경쾌했다. 라건아의 미들슛과 이승현의 높은 야투성공률에 힘입어 초반 기선을 제압한 것이 주효했다. 허훈도 오픈 찬스에서 2개의 3점슛을 적중시키며 깜짝 활약을 선보였다.

2쿼터 중반에는 강상재가 공수에서 높은 기여도를 보여줬다. 2쿼터가 종료될 때 점수는 50-30이었다. 

한국은 코트디부아르와의 높이 싸움에서는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지만 야투율에서 훨씬 앞섰다. 3쿼터에서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다. 라건아를 중심으로 양희종과 강상재가 수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66-47로 앞선 한국은 4쿼터 초반 코트디부아르의 맹렬한 추격에 다소 흔들렸다. 9점차로 좁혀진 점수는 김선형과 라건아의 연속 득점으로 다시 점수차를 벌렸다.

4쿼터 막판에도 고비가 찾아왔다. 78-71로 7점차까지 좁혀졌지만 라건아의 디펜스 리바운드와 허훈의 속공으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라건아는 26득점 16리바운드로 더블더블을 기록했고, 허훈이 3점슛 4개를 포함, 총 16점을 올리며 기대 이상으로 분투했다. 박찬희도 14득점 6어시스트로 이번 대회의 부진을 날려버렸다.

1994년 캐나다 대회에 출전한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3전 전패로 탈락한 뒤 순위 결정전에서 이집트를 89-81로 꺾은 바 있다. 이후 한국 농구는 1998년 그리스 대회에서 5전 전패, 2014년 스페인 대회에서도 5전 전패에 머물렀다. 그래서 코트디부아르전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승리였다.

세계 농구 흐름에 뒤처진 한국, 향후 과제는?

이번 2019 중국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FIBA 5위), 러시아(10위), 나이지리아(33위)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조별리그 통과보다 1승에 초첨을 맞췄다. 하지만 1승은 허황된 꿈에 불과했다. 이미 세계 농구는 한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었다.

첫 경기 아르헨티나에 69-95로 무릎을 꿇었다. 러시아전에서는 선전했으나 높이의 열세를 절감하며 73-87로 패했다. 1승 제물로 삼은 나이지리아는 한국에 한 수 가르쳤다. NBA 현역리거를 보유하고 있는 나이지리아는 한국에 108-66으로 대파하며 굴욕을 안겼다. 물론 패배를 예상한 경기였지만 42점차는 한국 농구의 현 주소와도 같았다.   

한국은 순위 결정전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1승 가능성이 높은 쪽은 아무래도 중국이었다. 홈 그라운드 이점을 안고 있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은 중국을 맞아 예상 외로 잘 싸웠다. 중국과 대등한 경기력으로 엎치락 뒤치락한 끝에 73-77로 분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막판 체력 저하가 없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경기였다.

그나마 세계가 아닌 몇 단계 레벨이 낮은 아시아 무대에서는 어느 정도 통한다는 것을 일깨워준 경기였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라건아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kt빅토리움 연습체육관에서 열린 자카르타ㆍ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 농구 대표팀과 부산 kt 소닉붐의 연습경기 시작에 앞서 대표팀 라건아(라틀리프)가 슛 연습을 하고 있다

대표팀 라건아(자료사진) ⓒ 연합뉴스

 
특별 귀화 선수 자격으로 한국 국가대표가 된 라건아의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대회였다. 자신을 '언더사이즈 빅맨'이라고 소개한 라건아는 199cm의 다소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러시아, 나이지리아 등 피지컬이 우수한 팀들과의 맞대결에서 군계일학의 플레이를 선보였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경기당 평균 23득점, 12.8개의 리바운드를 잡아내며 고군분투했다.

아쉬움이라면 한국이 철저히 라건아에 의존하는 팀이었다는 데 있다. 피지컬이 무척 중요한 농구의 특성상 한국 선수들은 세계와 겨루기엔 여러모로 열세였다.

그렇다고 피지컬만으로 실패를 돌리기엔 기본기에서도 차이가 컸다. 일대일 대결에서 약점을 드러냈고, 특히 오픈 찬스에서 정확도 낮은 야투율은 결정적인 순간 흐름을 끊었다. 조별리그에서 상대한 아르헨티나, 러시아, 나이지리아는 여러 차례 클린슛을 적중시킬 만큼 슈팅에서 한국을 압도했다.
 
최근 3점슛이 부각되고 있는 농구의 흐름에서 한국만이 크게 뒤처졌다. 김상식 감독은 워낙 높이에 치중하다 보니 전문 슈터를 12인 로스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피지컬의 열세인 한국과 같은 아시아 팀들이 살아남으려면 외곽포가 터져야 한다. 골밑과 외곽을 지배하지 못하는데 농구에서 승리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수비에서도 약점을 노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골밑 수비에 집중한 나머지 외곽슛을 여러 개 허용했다. 빠른 기동성과 높이가 동반되지 않으면 3점슛 허용빈도를 낮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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