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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캠핑장 주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소리와 함께 잠이 깨었다. 밖에 나가보니 어젯밤 만났던 한국 부부가 묵었던 자리는 비어있다. 일찍 길을 떠난 것이다. 호숫가를 걷는다. 산속의 싸늘함이 상쾌하다. 호수 위로는 하얀 김이 맴돌고 있다. 한 폭의 풍경화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물에 손을 넣으니 예상 밖으로 따뜻한 기운이 감돈다. 어디선가 온천물이 흘러들어오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로토루아(Rotorua)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평소에 하던 대로 관광안내소를 찾아갔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안내소는 규모가 크고 관광객도 많다. 안내소에는 동전을 넣고 사용하는 샤워장도 설치해 놓았다. 샤워장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젊은이가 대부분이다. 샤워장이 없는 무료 캠핑장에서 지내는 청춘남녀가 많다는 이야기다.
 
1900년대 초 영국이 지은 박물관
 1900년대 초 영국이 지은 박물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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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사람들이 즐기는 잔디 볼링장이 정원에 조성되어 있다.
 영국 사람들이 즐기는 잔디 볼링장이 정원에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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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안내 책자에 소개된 정원(Government Garden)을 찾았다. 뉴질랜드 마오리(Maori) 원주민과 타협해 1900년대 초에 영국 사람이 건축한 건물들이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넓은 정원에 들어서니 유황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고풍을 자랑하는 박물관 건물 앞에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지금은 문을 닫았다.

박물관에는 못 들어갔어도 다른 볼거리가 넘쳐난다. 잘 가꾼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다. 조각품들이 전시된 정원도 있다. 끓어오르는 온천도 있다. 안내문에는 섭씨 212도라고 쓰여 있는 뜨거운 온천물이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규모가 큰 온천장도 있다. 고급 호텔을 연상시키는 로비에서는 한국어 팸플릿도 볼 수 있다.

온천장을 나와 걷고 있는데 음악 소리가 들린다. 정원 한쪽에 있는 공연장에서 밴드가 공연하고 있다. 간이 의자에 앉아 즐기는 사람,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함께 즐기는 사람 그리고 서서 구경하는 사람 등으로 주위는 붐빈다. 아내와 나도 잠시 사람들 틈에 끼어 음악을 즐긴다. 한국 사람으로 보이는 동양 사람이 베이스 기타를 치고 있다. 수준 있는 연주다.

음악까지 즐긴 후 가까이에 있는 호수를 찾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호수다. 호수 주위 산책로를 걷는다. 아름드리나무가 뿌리를 하늘로 올리고 쓰러져 있다. 호수 근처라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바람에 쓰러졌을 것이다. 뿌리가 얕은 나무다. 오래전 독재 시절에 읽었던 '뿌리 깊은 나무'라는 잡지가 문득 떠오른다. 결국에는 독재 정권에 의해 폐간되었지만...

산책로 주변에는 하얀 수증기와 함께 온천수를 뿜어내는 곳이 많다. 가까이 가서 보면 맑은 물이 끓어오르고 있다. 진흙이 끓기도 한다. 혹은 하얗고 노란색이 뒤섞인 지면의 틈바구니에서 수증기만 내뿜는 곳도 있다.

점심시간이다. 관광안내책자에 소개된 식당이 많은 장소를 찾았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에 분위기 있는 식당들이 줄지어 손님을 맞이한다. 대표적인 서양 요리, 스테이크를 비롯해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중동 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다. 한국 식당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거리를 끝까지 걸었으나 보이지 않는다.
 
각 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줄지어 있는 식당거리
 각 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 줄지어 있는 식당거리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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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서양 음식으로 점심을 끝내고 시내 한복판을 걷는다. 거리에는 관광객이 많다. 한국 식당이 보인다. 단체로 온 한국 관광객으로 붐비는 또 다른 식당도 만난다. 작은 한국 식품점도 지나친다. 로토루아에 한국 사람이 많이 산다는 생각이 든다.

도로를 임시로 통제한 곳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을 만났다.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끝날 무렵이라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 기타와 드럼 소리가 요란한 작은 무대에서는 히피 스타일의 여자가 흥겨운 멜로디를 노래하고 있다. 음악에 취한 모습이다. 자신만의 삶을 마음껏 구가하는 가수(?)의 매력에 잠시 빠져든다.

시내를 자동차로 조금 더 돌아본 후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와 다름없이 파란 하늘을 가득 담은 호수에는 사람이 많다. 산속 특유의 몸속 깊숙이 파고드는 서늘함이 서서히 찾아온다. 이러한 서늘함에도 한여름을 만난 듯 물에 들어간 사람도 많다. 이국의 생소한 풍경과 하나 되어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난 한국 부부는 지금도 운전하고 있을 것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바쁘게 움직이는 여행을 택했기 때문이다. 나의 여행 스타일과 비교된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람쥐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삶이 있다. 코알라처럼 나무에 몸을 의지하며 잠에 취해 보내는 삶도 있다. 어느 삶이 더 좋다고 판단하지 말자. 삶은 타인이 간섭할 수 없는 자신만의 가치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 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태그:#뉴질랜드, #로토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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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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