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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를 대표하는 명승지 두무진으로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령도를 대표하는 명승지 두무진으로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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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국내 100여 개의 섬을 돌아본 필자에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었다. 남북갈등의 현장이자 가끔 교전이 벌어졌던 서해5도를 방문해 분단된 현실을 피부로 느껴 보고 싶었다.

주말이어서일까? 서해5도로 출발하는 인천연안여객선 터미널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터미널 한켠에는 휴가 후 귀대하거나 부대 배치를 위해 기다리는 해병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서해 최전방에서 대한민국을 지키는 군인들이다. 키도 크고 늠름해 보이는 해병대원들.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해병대원들을 바라보다가 금강산관광을 다녀오던 도중에 보았던 북한군인들 모습이 오버랩됐다.

금강산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차창 밖에서 근무 중이던 북한 군인들은 작은 키에 깡마른 모습들이었다. "그래! 믿음직스럽게 보이는 군인들이 우리나라를 철저히 지켜주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푸른 파도 건너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북한 땅을 살펴보는 사이 목적지인 백령도에 도착했다.
  
심청각 인근에는 북한을 바라보고 서있는 탱크가 놓여있어 최전방임을 느낄수 있었다.
 심청각 인근에는 북한을 바라보고 서있는 탱크가 놓여있어 최전방임을 느낄수 있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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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곳에 적을 두고 포격전까지 벌어졌던 서해5도인지라 살벌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팻말을 들고 서있는 관광버스 운전사에게 한 자리를 부탁해 탑승을 승낙받았다.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 손에 닿을 듯한 북녘땅을 바라보니

고구려시대 '곡도'라 불린 백령도는 1896년(조선 고종) 황해도 장연군에 속했다가 1945년 8월 15일 경기도 옹진군에 편입됐다. 이어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로 통합됐다.

인천에서 228㎞떨어진 백령도는 면적 51.09㎢로 우리나라에서 14번째로 큰 섬으로 섬 하나가 면을 이룬 곳이다. 백령도는 황해도 장연군과 17㎞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이다. 인구가 5천 명이 넘는 섬이지만 북한과 마주하는 섬이어서인지 군인들이 더 많은 섬이다.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4시간이면 백령도에 도달할 수 있다. 1970년대 백령도에서 해병대원으로 근무했던 친구 얘기에 의하면 "당시 황진호는 12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여객선으로 4시간이면 백령도에 도달할 수 있다. 1970년대 백령도에서 해병대원으로 근무했던 친구 얘기에 의하면 "당시 황진호는 12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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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지 않는 백령도 면소재지는 육지의 시골 면소재지 모습과 꼭같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백령도 면소재지는 육지의 시골 면소재지 모습과 꼭같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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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사무소 인근에 숙소를 정하고 도로에 나가 시가지를 살펴보니 육지에 있는 시골 면소재지와 다를 게 없었다.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다니고 가게를 들락거리는 주민들을 바라보며 "이곳이 북한과 마주하는 최전방 섬이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운전기사가 "관광객들이 북한땅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라며 일행을 안내한 곳은 진촌리에 있는 심청각이다. 심청각이 이곳에 자리한 이유는 심청이 몸을 던진 인당수와 연봉바위가 바라다 보이기 때문이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인당수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세워진 심청각에서 관광객들이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심청전의 배경무대인 인당수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세워진 심청각에서 관광객들이 북한을 바라보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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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는 3무로 유명해요. 여러분이 보다시피 신호등, 대문이 없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귀신잡는 해병'이 있어 귀신이 없어요"라고 농담을 한 운전기사가 백령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여러분! 백령도가 서해 최북단에 있는 섬이니까 원래 북한땅인줄 아시죠? 위도상으로는 37°58분에 위치한 남한땅입니다. 해방 후 12년간 고립된 땅으로 6.25전쟁 당시 3개월간 점령당한 적이 있어요. 섬이니까 백령도의 주업이 어업일 것 같은데 농업이 주업입니다. 섬 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남은 생산물은 육지로 보냅니다."

운전기사가 바다건너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산들을 가리키며 "저기가 바로 황해도 장연군입니다"라고 설명해줬다. "아! 저기도 우리 땅인데. 갈 수 없다니!" 쾌속정으로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은 거리다. 목소리 큰 사람이 "야호!"하면 곧바로 "야호!" 하는 대답이 돌아올 것만 같아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렇게 가까운 땅에서 남북은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포격전까지 벌였다. 답답한 가슴을 억누르며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운전기사가 입을 열었다.
 
백령도와 북한 장연군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조업 중인 중국어선들. 많을 때는 백령도에서 연평도까지 1000여척이 들어와 조업한다고 한다. 배 뒤쪽에 보이는 산들이 북한 장연군에 속한 산이다.
 백령도와 북한 장연군 사이 비무장지대에서 조업 중인 중국어선들. 많을 때는 백령도에서 연평도까지 1000여척이 들어와 조업한다고 한다. 배 뒤쪽에 보이는 산들이 북한 장연군에 속한 산이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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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곶해변 모습. 전 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다는 규조토 해변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천연 비행장이다. 사진을 보면 4륜구동차량이 지나갔는데도  바퀴자국이 깊이 패이지 않았다.
 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곶해변 모습. 전 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다는 규조토 해변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천연 비행장이다. 사진을 보면 4륜구동차량이 지나갔는데도 바퀴자국이 깊이 패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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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인지라 남북 상호간에 단속도 못하는 중국어선들.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얄미운 존재들이다. 남북이 통일되었다면 중국배들이 들어와 조업할 수 있을까? 분하다. 하루빨리 통일을 해야 할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천연기념물 391호인 사곶해변으로 갔다. 사곶해변은 전세계에서 두 곳 밖에 없다는 규조토해변으로 비행기의 이착륙이 가능한 천연 비행장이다. 한 때 군비행장으로 쓰였을정도로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다. 모래사장을 건너 관광객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동안 자동차 바퀴 자국을 보니 흔적만 남고 깊이 패이지 않았다.

서해5도 주민들을 위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정주자금이 도움이 돼

백령도에도 염전이 있을까? 있다. 1970년대에 2500여명이 종사했던 염전은 거의 문닫고 있었다. 소금 한가마에 1만원하는데 인천항까지의 운반비와 하역비를 주고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다.

연평도포격사건으로 관광산업이 망했던 백령도에는 귀농하는 분들이 돌아오기도 한다. 국가에서 서해5도에 사는 주민들을 위해 '정주자금'을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1896년) 중화동교회(장로교회)가 있다. 때문인지 주민의 70%가 기독교도이고 25%는 천주교도인이라고 한다
 백령도에는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세워진 (1896년) 중화동교회(장로교회)가 있다. 때문인지 주민의 70%가 기독교도이고 25%는 천주교도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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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자금은 10년이상 거주자에게는 매달 10만원, 10년미만일 때는 5만원을 지원받는다. 호적만 올려놓고 실제로 거주하지 않는 주민을 가리기 위해 한 달에 16일 이상을 백령도에 거주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서해의 해금강이라고 불렸던 두무진

백령도의 최고 명승지는 두무진이다. 마치 장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두무진(頭武津)은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답다. 다양하고 기묘한 기암괴석들이 펼쳐있어 관광객들이 "외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고 탄성을 지은 곳이다.

46용사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천안함 위령탑

일행이 탄 차가 들른 곳은 천안함 위령탑이다. 탑은 2010년 천안함 피격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천안함 승조원 46용사의 희생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위령탑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전시용으로 비치해둔 탱크와 다연장포가 설치돼 있었다. 올라가는 길 주변은 지뢰지대라는 표시가 돼 있어 일행을 긴장시켰다. 위령탑 방문을 마치고 내려와 운전사와 대화를 나눴다.
  
2010년 천안함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천안함 위령탑 모습
 2010년 천안함사건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천안함 위령탑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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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위령탑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탱크와 다연장포가 있었다
 천안함위령탑으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탱크와 다연장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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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포격사건 때 주민들이 놀라지 않았습니까?"
"1970년도에는 북한 공군 AN2기가 백령도 상공을 지나가곤 했어요. 그러면 국군이 대공화기 사격을 하곤 했었기 때문에 놀라진 않았어요."


저녁이 되어 인근 삼겹살집에 들렀을 때 외출 나온 군인들이 큰소리로 떠들며 활기차게 웃는 모습에서 긴장감은 느낄 수 없었다. 인근 대청도를 향해 힘차게 나가는 배속에서 생각해 보았다. "통일이 된다면 이 아름다운 섬, 풍요로운 섬 백령도가 평화로운 섬이 될텐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수넷통뉴스에도 실립니다.


태그:#백령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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