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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달산 자락을 따라서 녹산등대로 가는 길. 이국적인 풍경에 반해 한낮의 햇볕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음달산 자락을 따라서 녹산등대로 가는 길. 이국적인 풍경에 반해 한낮의 햇볕마저도 감미롭게 느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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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소외, 고립, 불편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올라서다. 한편으로는 늘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바다에 눈을 돌렸다. 바다를 통해 세계와 소통했다. 장보고는 바다와 섬을 기반으로 해상무역을 하며 '해상왕'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하지만 조선시대 들어 섬이 푸대접을 받았다. 섬을 비우는 공도정책이 추진되면서다. 뭍에서 숨어든 하층민이나 권력싸움에서 밀려난 양반들이 유배돼 살면서 '죄인의 땅'으로 취급을 받았다.

최근 섬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휴식과 힐링, 해양관광, 미래식량의 보고로 인식되는 분위기다. 섬은 해양 영토의 전초기지이고, 잘 보존된 전통문화·자원의 거점이기도 하다. 정부가 8월 8일을 '섬의 날'로 제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수와 제주 사이, 거문도
 
 음달산에서 내려다 본 거문도 풍경. 동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거문대교가 내려다보인다. 그 사이로 배 한 척이 지나고 있다.
 음달산에서 내려다 본 거문도 풍경. 동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거문대교가 내려다보인다. 그 사이로 배 한 척이 지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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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에 있는 수많은 섬 가운데 하나, '먼 바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 거문도로 간다. 먼 바다와 가까운 바다의 기준은 해안선이다. 섬이 없는 동해와 섬이 많은 서남해의 기준이 다르다. 해안선에서 동해는 20㎞, 서남해는 40㎞ 이내를 근해, 가까운 바다라 한다. 그 너머는 먼 바다로 불린다.

먼 바다에 떠 있는 섬 거문도는 지리적으로 고흥에서 가깝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여수항에서 100여㎞ 떨어져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거문도에 가려면 여수나 고흥에서 배를 타야 한다. 여수항에서는 쾌속선이 하루 두 번, 오전 7시40분과 오후 1시40분에 출발한다. 고흥 외나로도항을 거쳐 거문도까지 2시간 20분 남짓 걸린다. 외나로도항에서 타면 1시간 20분 만에 거문도에 닿는다.

고흥 녹동항에서 떠나는 카페리도 있다. 오전 7시에 출발, 초도를 거쳐 거문도까지 3시간 걸린다. 자동차를 싣고 갈 수 있다. 쾌속선과 달리, 배 위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다도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평화페리를 타고 2박3일 일정으로 거문도를 찾았다.
 
 거문도와 고흥 녹동을 오가는 카페리. 쾌속선과 달리, 자동차를 싣고 오갈 수 있다. 배 위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다도해 풍광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거문도와 고흥 녹동을 오가는 카페리. 쾌속선과 달리, 자동차를 싣고 오갈 수 있다. 배 위에서 바닷바람을 만끽하며 다도해 풍광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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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삼산면의 소재지인 고도와 동도, 서도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서도 장촌마을에서 한나라 때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발견됐다. 거문도가 고대부터 국제 해상교역의 중간기지였다는 증표다. 오수전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오래 전 거문도는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으로 불렸다. 거문도를 찾은 청나라 제독 정여창에 의해 거문도(巨文島)로 불렸다. 학문에 뛰어난 문장가들이 섬에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문도에는 현재 2200여 명이 살고 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이 고도에 있다. 수산물위판장도 여기에 들어서 있다.
 
 거문도에서 맛본 갈치회. 갈치가 많이 잡히는 거문도의 식당에서는 무엇을 주문하든지 갈치를 맛볼 수 있다.
 거문도에서 맛본 갈치회. 갈치가 많이 잡히는 거문도의 식당에서는 무엇을 주문하든지 갈치를 맛볼 수 있다.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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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오래 전, 갈치와 삼치 파시가 섰던 섬이다. 지금도 여전히 수산물이 풍부하다. 면소재지인 고도에 식당이 많다.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은 은갈치 요리가 맛있다. 백반이나 된장찌개를 시켜도 갈치구이 몇 토막은 기본으로 나온다. 섬에서 많이 재배하는 쑥으로 버무린 쑥개떡과 쑥송편, 쑥막걸리도 별미다.

거문도는 백도와 한 묶음으로 엮인다. 흑산도와 홍도, 울릉도와 독도가 한데 묶이는 것과 같다. 거문도의 풍광이 빼어나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섬에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여러 군데 있다. 갯바위낚시 포인트도 지천이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늘어선 구릉도 한 폭의 그림처럼 이국적이다.

등대에 묻어난 세월의 더께
 
 동백숲터널을 지나서 만나는 거문도등대. 왼쪽에 있는 작은등대가 1905년에 세워진 것이다. 지금은 오른쪽의 큰 등대가 불빛을 밝히고 있다.
 동백숲터널을 지나서 만나는 거문도등대. 왼쪽에 있는 작은등대가 1905년에 세워진 것이다. 지금은 오른쪽의 큰 등대가 불빛을 밝히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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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여행은 거문도등대와 녹산등대가 대표한다. 100년 역사를 품은 거문도등대는 세련된 도시색시, 녹산등대는 수줍은 시골색시에 비유된다. 거문도항에서 고도와 서도를 연결하는 삼호교를 건너서 거문도등대는 왼편에, 녹산등대는 오른편에 위치하고 있다. 거문도의 서도에 속한다.

거문도등대에서는 세월의 더께가 묻어난다.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903년에 세워진 팔미도등대. 거문도등대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1905년에 세워졌다. 서도의 유림해수욕장에서 갯바위지대인 '목넘어'를 거쳐 수월산 동백숲 터널을 지나서 만난다. '목넘어'는 태풍이나 해일이 일 때 집채만 한 파도가 갯바위를 넘나든다고 이름 붙은 곳이다.
 
 거문도등대로 가는 길목, 목넘어어서 본 천일염. 파도가 옮겨놓은 바닷물이 바위 위에서 소금으로 변해 있다. 완전한 자연산 천일염이다.
 거문도등대로 가는 길목, 목넘어어서 본 천일염. 파도가 옮겨놓은 바닷물이 바위 위에서 소금으로 변해 있다. 완전한 자연산 천일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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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넘어'의 바위에서 우연히 만난 천일염이 눈길을 끈다. 사람의 손길이라곤 미치지 않고, 순전히 파도와 햇볕이 만든 소금이다. 자연이 빚은 순 진짜 100% 자연산 천일염이다.

'목넘어'에서 등대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다. 한낮에도 햇볕이 한 줌도 들지 않는다. 아득한 해안가 벼랑 위를 따라 걸을 때엔 경쾌한 율동감까지 느껴진다. 거문도등대는 동백숲 터널이 끝나는 지점에서 파란 하늘과 짙푸른 바다, 녹색의 잔디를 배경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100살이 넘은 거문도등대는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불빛은 지난 2006년에 세워진 키 크고 젊은 등대가 밝힌다. 내부 계단을 따라 등대 꼭대기인 팔각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드넓은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거문도등대에서 본 관백정과 기암괴석. 관백정에 서면 수월산의 기암절벽은 물론, 날씨 좋은 날에는 백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거문도등대에서 본 관백정과 기암괴석. 관백정에 서면 수월산의 기암절벽은 물론, 날씨 좋은 날에는 백도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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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벼랑 위에 세워진 정자 관백정도 내려다보인다. 백도를 조망한다는 전망대다. 수월산의 해안절벽도 멋스럽다. 화창한 날엔 동쪽으로 28㎞ 떨어져 있는 백도는 물론 저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백도로 가는 유람선은 거문도항에서 탄다. 백도는 국가명승(제7호)으로 지정돼 있어 섬에 들어갈 수 없다. 유람선에서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지만, 빼어난 절경으로 많은 여행객을 유혹하고 있다.

백도의 지명 유래도 재밌다. 섬이 100개여서 '백도'라고 한다. 100개에서 하나 모자란 99개여서, 한자로 일백 백(百)자에서 한 일(一)을 뺀 흰 백(白)을 써 '백도'라는 말도 있다. 멀리서 보면 섬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백도'라 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백도는 39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안개 자욱한 백도 풍경. 거문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도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본 풍경이다.
 안개 자욱한 백도 풍경. 거문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도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본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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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옥황상제가 못된 짓을 한 아들을 바다로 귀양 보냈다. 아들은 반성은커녕 용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풍류를 즐겼다. 옥황상제는 신하들을 보내 아들을 데려오도록 했다. 아들을 데리러 간 신하들도 용왕의 시녀들과 사랑에 빠져 돌아오지 않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가 아들과 신하들을 돌로 변하게 했다. 백도의 서방바위, 석불바위, 매바위 등 절경의 바위들이 모두 옥황상제의 아들과 신하들이라는 얘기다. 상상력의 나래를 펴본다.

거문도 속 영국
 
 거문도 몽돌해변에서 본 녹산등대 풍경. 녹산등대는 거문도등대와 함께 거문도여행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거문도 몽돌해변에서 본 녹산등대 풍경. 녹산등대는 거문도등대와 함께 거문도여행을 대표하는 관광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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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산등대는 거문도등대의 반대편에 있다. 거문도항에서 삼호교를 건너 오른편, 서도의 음달산 능선을 따라간다. 거문도뱃노래 전수관을 지나 서도와 동도를 잇는 거문대교 입구에서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발아래로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보며 걷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구릉이 이국적이다. 벼랑 아래에선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며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바다 위를 크고 작은 배들이 부산히 오가고 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도, 뒤돌아서 보는 지나온 길도 모두 한 폭의 수채화 풍경이다. 흡사 그림 속이라도 걷는 것 같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까지도 감미롭게 해주는 명품 길이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에서 거문도 인어상이 세워진 해양공원도 만난다. 달 밝은 밤이나 새벽에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지고 소리를 내서 어부들을 태풍으로부터 구했다는 인어다.

녹산등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몽돌해변도 아름답다. 구릉의 밭자락에는 거문도가 자랑하는 쑥이 지천이다. 누구라도 반하게 하는 길이고 풍경이다. 혼자라도 좋지만, 연인이나 가족끼리 함께 가면 더없이 좋다.
 
 거문도에 있는 영국군 묘지. 1885년 영국군의 거문도 무단 점령 때 숨진 영국군의 묘지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거문도에 있는 영국군 묘지. 1885년 영국군의 거문도 무단 점령 때 숨진 영국군의 묘지 가운데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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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에서 눈여겨볼 것이 더 있다. 옛 영국군의 묘지가 고도에 있다. 1885년(고종 22년) 4월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핑계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군함과 수송선 8척을 끌고 와서 2년 동안 머물렀다. 항구의 이름도 '포트 해밀턴'이라고 불렀다.

영국은 청나라와 일본에 자신들의 거문도 점령 사실을 알렸지만, 정작 조선 조정엔 알리지 않았다. 고종은 한 달 뒤 청나라를 통해 영국군의 점령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외딴 섬 거문도가 조정에서도 모르는 사이 열강들의 각축장으로 변한 것이었다.

영국군은 지금의 거문초등학교 자리에 막사를 짓고 머물렀다. 영국군은 섬주민들에게 일당을 주면서 일을 시켰다. 초콜릿, 통조림 등 먹을거리도 나눠줬다. 군의관들이 무료 진료도 해줬다. 이방에서 온 점령군이었지만, 영국군은 주민들과 불편하지 않게 지냈다고 한다.

그때 영국군 9명이 총기사고로 죽었다. 그 묘지 가운데 3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거문초등학교를 지나 화양봉 전망대로 가는 길목이다.

영국군이 설치한 해저케이블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영국군은 거문도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다. 해저케이블 연결의 흔적을 영국군 묘지 부근에서 만난다. 영국군이 설치한 테니스장도 인근에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신사 터도 바닷가에 남아 있다. 삼산면사무소 뒤편 언덕이다. 학자 귤은 김유(1814∼1884)를 모신 귤은사당은 거문도 동도에 있다. 노사 기정진에게서 학문을 익힌 김유는 거문도에 낙영재를 세워 후진 양성에 힘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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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