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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는 15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사 원고를 '세 가지 버전'으로 출입기자들에게 배포했다. 일반 버전과 각주 버전, 영문 버전인데 청와대가 특별히 '각주 버전'을 배포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축사 원고에 각주를 달아야 할 만큼 '인용'한 자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용된 자료에는 '시인 2인'과 '독립운동가 2인'이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농촌계몽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 '모더니즘의 시인'이자 평론가 김기림, '삼균주의'를 주창한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 조소앙, 오산학교를 세운 독립운동가 이승훈 등이 그들이다. 흥미롭게도 그 가운데 김기림과 조소앙은 한국전쟁 때 납북된 인사들이다.

이와 함께 일제 강점기에 러시아 아무르지역에서 벼농사를 처음으로 시작한 안중근 의사의 동생들과 지난 1998년 1001마리의 소떼를 데리고 방북했던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에게 존경을 보내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소설자이자 시인 심훈의 '그날이 오면'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끝난 뒤 상설전시관 내 항일무장투쟁 관련 자료가 있는 '나라 되찾기관'을 방문, 만주와 러시아 산간 오지에서 독립 전투를 전개한 무명 독립군을 상징하는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이 끝난 뒤 상설전시관 내 항일무장투쟁 관련 자료가 있는 "나라 되찾기관"을 방문, 만주와 러시아 산간 오지에서 독립 전투를 전개한 무명 독립군을 상징하는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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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초반부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꺾이지 않았고,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 선열들의 강인한 정신이 만들어낸 것이다"라며 소설가·시인·영화감독이었던 심훈(1901~1936년)이 쓴 시 '그날이 오면'의 몇 구절을 인용했다.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


심훈의 '그날이 오면'은 작가가 일제 강점기인 지난 1930년 3월 1일 조국광복의 '그날'을 간절하게 염원하면서 쓴 시다. 하지만 이 시는 해방된 직후인 지난 1946년에서야 발표됐다. 3.1운동(1919년) 당시 경성고보 3학년이었던 그는 학생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28호실에 수감된 그의 수인번호는 '2007호'였다.

문 대통령은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 광복절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 경축사 초반부에 인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의 '새나라 송'

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의 주제를 가장 잘 집약해서 보여주는 구절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다. 문 대통령이 '책임있는 경제강국'과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 '평화경제 구축'을 통해 세우고자 하는 비전이기도 하다. 이것은 '조선의 T.S 엘리어트'로 불렸던 '모더니즘 시인' 김기림(1908~?)의 '새나라 송(頌)'에서 따왔다.

한국 문학사에서 처음으로 '모더니즘 시'를 도입했다고 평가받는 김기림은 해방 직후에 <바다와 나비>와 <새노래> 등의 시집을 잇달아 냈다. 이 시집들에는 '모다들 도라와 있고나', '우리들의 팔월로 도라가자', '어린 공화국이여', '새나라 송' 등이 수록돼 있었다. 모두 해방을 맞은 시인의 기쁨과 감격을 노래한 시들이다.

특히 시집 <새노래>에 수록된 '새나라 송'(1946년 7월)에는 김기림이 지향하는 '새나라'가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빠진 곳 하나 없이 기름과 피 / 골고루 돌아 다사론 땅"을 꿈꾸며 "김빠진 공장마다 동력을 보내"고,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려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라고 독려했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인용한 대목은 이렇다(시 전문은 아래 상자 참조).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리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김기림의 '새나라 송'은 해방된 이후 발표한 시 가운데 '경제건설'과 관련한 시여서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 인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기림은 지난 1940년 재직하던 <조선일보>가 강제로 폐간되자 낙향해 고향(함북 성진)의 경성중에서 영어·수학 등을 가르쳤고, 해방 직후인 1946년 1월 월남했다.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납북되어 북한에서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정부 반대했던 조소앙의 '삼균주의'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21세기 청년독립단 및 뮤지컬 배우들이 오프닝 공연 '나의 독립을 선포하라'를 공연하고 있다.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21세기 청년독립단 및 뮤지컬 배우들이 오프닝 공연 "나의 독립을 선포하라"를 공연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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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찍이 임시정부의 조소앙 선생은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 사이의 균등을 주창했다"라며 "(이것은) 평화와 번영을 향한 우리의 기본정신이다"라고 말했다.

조소앙(1887~1959년)의 삼균주의는 한국이 "대륙과 해양을 잇는 나라", "동북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선도하는 나라"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끌어온 것이다. 아시아가 "평등한 국가들의 다양한 협력이 꽃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을 우회적으로 겨냥한 대목이기도 하다.

김삼웅 전 <대한매일>(현 <서울신문>) 주필은 <조소앙 평전>에서 "'사람과 사람, 민족과 민족, 국가와 국가의 균등한 생활'을 추구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는 1931년 이후 임정의 공식 노선으로 확립되었으며, 대한민국 제헌헌법에 스며들었고 공화국의 기본정신이 되었다"라고 평가했다.

조소앙의 삼균주의에 따르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균등'을 위해서는 '정치·경제·교육의 균등화'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보통선거제와 주요사업의 국유화, 국비 의무교육제가 필요하다. '민족과 민족의 균등'을 위해서는 소수민족과 약속민족이 압박에서 벗어나야 하고, '국가 간의 균등'을 위해서는 제국주의가 타도되고, 전쟁이 금지되어야 한다.

조소앙은 임시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냈고,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1928년).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김구 등과 함께 남북회담에 동행했다.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한국전쟁 때 납북됐고, 현재 평양시 신미리에 위치한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남강 이승훈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못봐"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 후반부에 독립운동가 남강 이승훈(1864~1930년)이 지난 1922년 공산주의 청년들에게 한 말을 인용했다.

"나는 씨앗이 땅 속에 들어가 무거운 흙을 들치고 올라올 때 제 힘으로 들치지 남의 힘으로 올라오는 것을 본 일이 없다."

당시 이승훈은 "우리가 할 일은 민족의 역량을 기르는 일이지 남과 연결하여 남의 힘을 불러들이는 일이 아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해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이승훈의 말을 인용한 뒤 "우리 힘으로 분단을 이기고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책임 있는 경제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라며 "(이것이)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는 길이고, 일본을 동아시아 협력의 질서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승훈은 안창호가 결성한 항일 비밀결사 신민회에 가입했고, 민족교육운동의 일환으로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오산학교 교장과 이사장, <동아일보> 사장 등을 지냈다. 지난 1919년 3.1운동 때 33인의 민족대표(기독교)로 참여했다.

안중근 의사 동생-정주영 회장 오마주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천안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에서 열린 제74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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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의 동생들(안정근·안공근)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오마주(hommage, 존경·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기자 주)한 부분도 눈길을 끈다.

문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우리가 원하는 나라"의 하나로 "농업을 전공한 청년이 아무르강가에서 남과 북, 러시아의 농부들과 대규모 콩농사를 짓고 청년의 동생이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나라"를 들었다.

여기에서 "농업을 전공한 청년"은 안중근 의사의 동생 안정근·안공근을, "서산에서 형의 콩으로 소를 키우는 청년의 동생"은 고 정주영 전 회장이 오마주한 것이다.

안정근·안공근은 러시아 아무르지역에서 처음으로 벼농사를 시작해 성공했다. 이곳의 최대 생산물은 콩으로 러시아 콩 전체의 46.1%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북한은 이곳과 결연을 맺고 지난 2012년부터 농업협력을 시작했고, 남한은 농업의 투자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남한이 진출할 경우 남북농업협력이 이곳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전에 정주영 회장은 70만 평 규모의 현대서산농장에서 수천 마리의 한우를 키웠다. 이곳에서 키워진 총 1001마리의 한우가 김대중 정부 시기인 1998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넘어갔다. '정주영 소떼방북'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당시 83세였던 정 회장은 소떼를 데리고 판문점을 넘기 전 임진각에서 "이번 방문이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정주영 소떼방북'은 이후 남북민간교류의 물꼬를 튼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았다.
 
새나라 송 / 김기림

거리로 마을로 산으로 골짜구니로
이어가는 전선은 새나라의 신경
이름 없는 나루 외따른 동리일망정
빠진 곳 하나 없이 기름과 피
골고루 돌아 다사론 땅이 되라

어린 技師(기사)들 어서 자라나
굴뚝마다 우리들의 검은 꽃무꿈
연기를 올리자
김빠진 공장마다 동력을 보내서
그대와 나 온 백성의 새나라 키워가자

산신과 살기와 염병이 함께 사는 비석이 흔한 마을 마을에
모터와 전기를 보내서
산신을 쫓고 마마를 몰아내자
기름친 기계로 운명과 농장을 휘몰아갈
희망과 자신과 힘을 보내자

용광로에 불을 켜라 새나라의 심장에
철선을 뽑고 철근을 늘이고 철판을 피리자
세멘과 철과 희망 위에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나라 세워가자

녹슬은 궤도에 우리들의 기관차 달리자
전쟁에 해어진 화차와 트럭에
벽돌을 싣자 세멘을 올리자
애매한 지배와 굴욕이 좀먹던 부락과 나루에
새나라 굳은 터 다져가자

다이나모 아침부터 잉잉거리는 골짝
파이프 팔 들어 떠받친 젊은 산맥들은
희랍 낭하의 목이 굵은 여신들
해발 삼천척 호수를 끌어안은 당돌한 댐
얄루강 오천년의 신화를 말렸다 불렸다가

음악을 울리렴 새나라의 노래 부르렴
드부르샥크의 애련한 신세계가 아니다
거리거리 마치소리 안개 속 떨리는 기적
전기로 돌아가는 논밭과 물레방아
그대와 나의 놀라운 심포니 울려라

어린 새나라 하나 시달린 꿈을 깨어 눈을 비빈다
동해 푸른 물 허리에 떨며 일어나는 '아프로디테'
모두가 맞이하자 굳이 잠긴 마음의 문을 열어
피 흐르는 가슴과 가슴을 섞어 새나라 껴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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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