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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의 수출규제로부터 시작된 한일 무역전쟁은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시킴으로서 다른 수준으로 접어들었다. 설마설마했던 일이 현실이 되면서 많은 한국인들이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이다.
 
왜 일본 아베 총리는 갑자기 한국을 때리기 시작했을까? 일본은 안보 문제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한국인은 없다. 이미 그들의 논리는 여러 면에서 허점을 보였고, 일본은 한국의 반박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안보 장사에 일가견이 있는 한국의 보수 세력 역시 이에 대해 조용히 하겠는가.
 
따라서 이번 일본의 도발은 역사적 맥락으로 봐야 한다. 좁게는 한국 대법원이 내린 강제동원 관련 배상 판결에 대한 반응이지만, 넓게는 스스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그려내기 시작한 한국에 대한 그들의 대응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분단을 극복하게 되면 가장 불편한 것은 결국 일본이기 때문이다.
 
1945년 이후 유지되어왔던 동북아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와 이에 대한 일본의 반동. 그렇다면 이 격동의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군을 만들어라
 
누군가 우리 사무실 정문에 붙여놓은 스티커
 누군가 우리 사무실 정문에 붙여놓은 스티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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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현재 일본과 전쟁 중이다. 총성만 들리지 않을 뿐, 한일 양국 관계는 1945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이럴 때 중요한 건 아군을 늘리는 일이다. 결국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론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들. 도대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냐?"
"왜요? 일본 때문에요?"
"그래. 주위 사람들은 문재인 때문에 나라가 망조 들었다고 난리다. 그 이야기 들으면 진짜 나라가 망할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떠냐?"

 
시절이 하 수상하면 항상 내게 전화하시는 어머니였다. 휴대폰을 붙들고 한참을 현 시국에 대해서 말씀드렸다. 왜 일본이 갑자기 우리한테 수출 규제를 하는지, 그들의 논리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그리고 국내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본의 행태에 분개하여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하는지.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을 처음 듣는 듯했다.
 
그렇게 나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어머니는 그제야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이야기 자체를 처음 듣는다며, 왜 당신의 주위에는 반대로 말하는 사람들만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 주위의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최대 30%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요컨대 이번 사태를 맞아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내부 단결이다. 소위 토착왜구들의 이야기에 휩쓸려 일본을 마냥 두려워하거나, 이 모든 것이 좌파의 음모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현실을 전해야 한다. 이번 위기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설득시켜야 한다. 극일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과정임을 주지시켜야 한다.
 
합리적인 일본 불매운동의 확산
 
노노재팬 사이트의 진화
 노노재팬 사이트의 진화
ⓒ 노노재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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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일 무역전쟁과 관련하여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두 번째 일은 합리적인 불매운동이다. 초기 일부 일본인들과 토착왜구들은 이 운동이 얼마 가지 않을 거라고 폄훼했지만, 현재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그 끝을 모르고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특히 눈여겨 볼 것은 이 운동 자체가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무조건 일본제품 안 사고, 일본여행 안 가던 운동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다. 해당 기업의 일본자본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 등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이 밝혀지고 있으며, 무엇이 일본을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지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제품 불매운동 초기부터 화제를 모았던 노노재팬 사이트를 보자. 처음에는 단순히 일본제품과 대안제품 리스트 확보에 치중하던 사이트가 이제는 롯데, 쿠팡, 다이소 등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던 기업의 자료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 기업들이 일본기업이라고 지목하는 대신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한 뒤 사람들이 판단하게끔 만들었다. 일제에 대해 새로운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마냥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과연 그들이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일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동 한 복판에 'NO JAPAN' 깃발을 내걸었던 중구청장이 대표적인 예이다.
 
왜 그들은 이번 운동이 정부가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하기 때문에 힘을 얻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까. 우리의 적은 어디까지나 일본 시민이 아니라 아베 정부다. 오히려 우리는 이번 무역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일본 시민들과 연대해야 한다. 결국 아베 총리가 무서워하는 것은 일본 내 여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치인이 나서서 우리의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관제운동처럼 보이게 하고 일본 시민들로 하여금 오해를 하게 하니 답답할 수밖에.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시민들에 의해 자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들의 거센 반발로 중구청장이 깃발을 내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한국 시민들은 냉철하다. 촛불시위로 대통령을 끌어내렸던 경험은 시민 각자의 판단에 대한 신뢰를 형성시켰다. 모든 것이 정부 탓이라며, 빨리 일본과 타협해야 한다는 보수 언론들의 주장이 힘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경계인을 돌아보자
 
몽당연필 홈페이지
 몽당연필 홈페이지
ⓒ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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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사태를 맞아 한일의 경계에서 힘들 수 있는 이들을 살피는 일이다. 전선이 생기면 피아구분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 속에서 예상치 않게 피해를 입는 이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의도가 선한들 우리의 불매운동이 누군가에게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라면 다시 재고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한 맥락에서 본 기자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경계인인 자이니치(在日)의 존재이다. 오랫동안 일본 내에서 차별을 받아왔던 그들에게 이번 사태는 매우 커다란 위협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일본에서의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면, 일본사회는 그들에게 누구 편인지 물을 가능성이 높다. 너희는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북조선인인가.
 
내가 시민단체 '몽당연필'을 최근 후원하게 된 이유는 이와 같은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서 그들과 연대하기 위함이다. 결국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 간의 갈등이 역사에서 연유한다고 할 때, 일본의 자이니치는 바로 그 역사의 증인이요, 그들에 대한 일본의 불합리한 처우는 한일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리는 한일 무역전쟁으로 피해 볼 수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호명해야 한다.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반일 감정 분위기에 위협을 느끼는 일본인이 없는지, 일본과 관련된 사업을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없는지 등을 살펴봐야 한다. 결국 이와 같은 성찰이 근거가 되어야 이번 운동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고 오래 갈 수 있다.
 
한일 무역전쟁은 현재 진행 중이다. 그 속에서 개인이 깨어있는 시민으로서 각자의 할 일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태그:#한일무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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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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