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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부의 경제보복에 분노한 국민들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불길이 거셉니다. 이런 가운데 불길이 뜻하지 않는 곳으로까지 번졌다는 의견이 있어 소개합니다. 이 글 외에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에 관한 경험이나 생각 등을 담은 다양한 글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2019년 7월 1일 일본 경제산업성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기로 발표했다. 명목상으로는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해서"였고, 실질적으로는 그동안 자기들끼리 쌓아놓은 한국에 대한 감정을 풀겠다는 보복조치라고 보면 편했다.

시간이 지나도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대중은 분노했으며, 일본에 대한 반발로 불매운동이 시작되었다. 일본 기업 관련 매장에 가는 사람들이 눈총을 받기 시작했고, '지금 시국'에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것은 매국과 같다. 일제를 쓰지 말고, 사지 말고,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하기 시작했다. 

암묵적 출입금지 구역이 되다

나는 일식 선술집인 이자카야에서 목, 금, 토 사흘 일하는 직원이다. 목이 좋은 번화가에서 넓은 홀을 끼고 일하는 게 아닌, 동네에서 열 개 남짓한 테이블을 둔 음식점에서 나는 주말 근무로 일하고 있다.

(이런 장소의) 자영업자들에게 주말이라는 시간은 더 소중해진다. 휴일을 두고 퇴근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술집인데도 가족들이 오는 경우도 더러 있다. 단골 장사의 성격이 강해지고, 서비스도 잘 챙겨줘야 한다. 하지만 이 많은 제공은 애초에 손님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다.

5월 말, 사흘 동안 치우고 꾸민 뒤 문을 연 가게는 5분 만에 세 팀이 들어오더니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주말에는 두 배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기도 했고 평일에도 안정권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손님이 오지 않는다. 소고기는 미국산이고, 돼지고기는 스페인산이며, 연어는 노르웨이산이지만, 손님의 발걸음은 끊겼다. 우리 매장이 이자카야라서다. 고베규(일본 소고기)를 가져와서 토시살 구이를 하지도, 후쿠시마산 연어를 가져와 회를 뜨지도 않지만, 가게의 이미지가 일본식이니 우리 매장은 암묵적 출입금지 구역이 되었다.

최근 기사에서는 유니클로에 들어가려는 사람이 '지금 시국에'라는 말을 듣고 도로 나오기도 하고, 몰래 사는 사람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일본의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불매운동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냐'라고 댓글을 단 사람은 답글에서 무감정하고 애국심따위 없는 몰지각한 남자가 되어버렸다.

나는 글쎄, 모르겠다. 목, 금, 토 사흘만 나와서 일하는 사람인데, 손님이 없을 때마다 사장님께 돈만 떼가는 것 같아서 뻘쭘해 죽겠으니 손님이나 와라 라는 쪽이다.

실제로 한국의 이자카야에서 사케류와 아사히, 산토리 등의 제품을 제외하고 나면 일본산이라고 확신할 만한 것은 찾기 어렵다. 꼬치류는 굳이 일본의 것을 가져올 필요가 없고, 닭고기는 한국에서 도축되는 연간 마릿수만 10억이다. 고등어는 국산이 맛있고, 칸사이 오뎅탕마저 한국 식자재로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냉동 사누끼 우동면은 제조원이 충북에 있다. 밀은 호주산이다. 다시 말해서 일본 직수입 돈코츠 육수에 가쓰오부시를 잔뜩 뿌려서 사케 월계관 준마이랑 같이 마시지 않는 이상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하는 데에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우리 가게는 이자카야니 먹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가게 인테리어를 2천만 원씩 넣어서 리모델링한 뒤 공사할 동안 영업을 중지했다가 한식집으로 바꿔놓아야지 일본산 식자재를 써도 용서가 될지 모른다.
  
결국 나는 이 불매운동의 방향성이 과연 괘씸한 보복조치를 하고 있는 일본을 향해있는지, 아니면 애먼 자영업자를 향해 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대로는 이자카야와 타코야키, 돈가스, 스시를 판매하는 곳은 매출이 반토막 난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조차 알 수 없다.

내 사장은 건물의 보증금에 임대료까지 싸길래 예전에 있던 가게의 프랜차이즈를 그대로 이어받아 가게를 열었다. 다시 말해 주인만 바뀐 이자카야고, 더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인조 벚나무와 소품들까지 설치했다. 그리고 한달이 조금 지나자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매장의 분위기를 더 꾸민 게 되려 역효과로 돌아온 격이었다.

자영업자들의 희생, 무시해도 되나

이걸 단순히 '재수 없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똥이야 수십 번도 밟아줄 수 있는데, 당장 경제적인 타격을 받아야 하는 업주들이 있다. 그렇다고 건물주들이 일식집인 것을 감안하여 임대료를 일시적으로 낮춰줄 것도 아니고, 보증금에서 까이는 걸 면제해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와중에 일본에 대한 무차별적 적의가 정의실현으로 탈바꿈될 수 있을까.

7월 말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 홈페이지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해놓았고, 일본 당국은 왜 한국이 러시아 군용기를 향해 경고사격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8월이 되자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는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었다. "어차피 냄비근성 아니냐"라는 비아냥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리던 타이밍이었기에, 보란 듯이 불매운동을 장기전으로 돌입하는 분위기다.

솔직히 나는 상관이 없다. 애초에 일본제를 쓰는 거라 봐야 샤프와 몇 가지 문구들이었으니 사지 않으면 그만이었고, 나 또한 지금의 일본 정부가 하는 만행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번 여름에는 일본이 아닌 제주도에 갔다. 이자카야가 장사가 되든 되지 않든 월급제인 나는 어차피 돈을 받을 수 있는 직원이었다.

그래도 나는 걱정한다. 대국민 구호처럼 '노 재팬'이 펄럭이는 요즘 주변에 있는 돈가스집과 덮밥집, 스시집과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뜻하지 않게 받는 타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히 대체재를 사고, 쓰고, 먹으면 되는 사람들과 생계와 직결된 사람들은 처지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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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논객닷컴' 청년칼럼으로도 송고합니다.


태그:#불매운동, #보이콧, #노재팬, #일본,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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