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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은 음악과 미술 등 예술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적지 않은 여행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살고 싶어 하는 도시로 꼽기도 한다. 달포 전 동유럽 및 발칸 지역을 여행했는데 오스트리아의 빈은 순전히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때문에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가 되었다.
 
빈에는 가볼 만한 곳도 많지만, <키스> 원본을 볼 수 있다는 벨베데레 궁전 미술관을 방문했다. 관람객들로 붐비는 와중에 다른 작품에 우선하여 <키스>를 보기 위해 클림트 전시실로 서둘러 갔다.
 
너무 유명해서 식상할 수도 있는 그림이었지만 원본을 볼 수 있다는 기대와 설렘이 묘한 흥분을 자아냈다. 복사본으로 여러 번 봤지만  원본 앞에서 진짜 키스를 보듯 생생한 감흥이 일었다.

한 번도 외출해 본 적이 없다는 원본   
벨베데레 미술관에만 전시되어 있는 원본 작품 <키스>. 외부에 전시된 적 없는 원본 작품을 보러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을 방문했다.
▲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벨베데레 미술관에만 전시되어 있는 원본 작품 <키스>. 외부에 전시된 적 없는 원본 작품을 보러 빈의 벨베데레 미술관을 방문했다.
ⓒ 김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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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곱슬머리의 남자가 한 여자를 안고 행하는 불완전한 `키스`! 입술과 입술이 닿지 않는 미완성의 키스는 영원히 서로의 입술에 이르지 못한다.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한 키스(혹은 완벽한 사랑)에 닿으려는 목마른 욕망에 남녀는 엑스터시(황홀경)에 빠져있다. 입술과 입술 사이의 그 영원한 거리! 닿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간절하다.
 
<키스>의 환상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곁에 나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 그림과 마주쳤다. 아, <포옹>(the embrace)! 이때까지 에곤 실레(Egon Schiele)라는 이름은 들어보긴 했지만 낯설기만 했다. 이 <포옹>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크림트의 <키스>가 몽환적이었다면 에곤 실레의 <포옹>은 초월적이었다. 이것은 분명 일종의 세렌디피티(serendipity)다. 크림트를 만나러 갔다가 크림트보다 더 매력적인 실레를 만났기 때문이다.
 
에곤 실레의 <포옹>은 몽환적이라기 보다 초월적이다. 클림트의 <키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흥을 주었다
▲ 에곤 실레의 <포옹> 에곤 실레의 <포옹>은 몽환적이라기 보다 초월적이다. 클림트의 <키스>에서 느끼는 것과는 다른 감흥을 주었다
ⓒ 김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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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곤 실레(1890.6~1918.10)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표현주의 화가로 초기에 구스타프 클림트(1862.7.~1918.0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점차 크림트의 영향에서 벗어나 죽음의 공포, 내밀한 관능적 욕망 및 고독한 인간의 실존에 관심을 기울였다. 의심과 불안에 싸인 인간의 육체를 뒤틀고 왜곡된 형태로 거칠게 묘사하기도 했다. 때로는 에로티시즘이라고 비난도 받았지만, 성과 죽음을 표현하여 구원에 이르고자 했다.
 
<키스>는 남과 여라는 육체와 육체가 만나 완전한 사랑(키스)를 지향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반면 <포옹>은 육감적이라고 할 수 없는 두 육체가 처절하게 껴안고 있는 모습에서 영혼과 영혼이 겹쳐 하나 되는 초월적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명작을 동시에 감상하고 난 후 마침 여행 중 틈틈이 읽고 있던 시집의 시 몇 구절이 생각났다. 13세기 페르시아의 신비주의 시인 잘란 아드딘 무하마드 루미가 황홀경에 빠져 쓴 시의 몇 구절을 인용해본다.
 
"당신 없는 내 세상에는 빛이 없습니다
더는 당신에게 떨어뜨려 놓지 마십시오
당신 없는 나는 어린아이와 같으니"
 
"내가 신(神) 속에서 찾고자 했던 것을
오늘 한 사람 속에서 만나네"
 
예술이란 무엇인가? 클리셰 같이 들리긴 하지만 영혼의 울림을 줄 수 있는 것, 음악이든 미술이든, 시든 춤이든,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면 예술 아니겠는가! 육체와 영혼,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이별, 이원론적인 구분이긴 하지만 철학과 예술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원론적 주제를 하나로 통합하고 이를 넘어서려 시도하는 자가 또한 예술가가 아니겠는가!
 
에곤 실레에서 그런 예술가의 초상을 보았다.

그의 작품 <포옹>에서 그러한 영혼의 울림을 느꼈다.

둘 다 멋진 작품이지만 <키스>냐 <포옹>이냐 어린아이처럼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키스>보다 <포옹>이었다.

태그:#구스타프 크림트 , #에곤 실레 , #키스 , #포옹, #벨베데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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