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음반은 좁고 깊은 사랑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찬란하고 아름다운 요즘 날의 따뜻한 그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극히 지독하고, 씁쓸하고, 얽매이고, 이해하기보다 그저 바라보며 지나갔을 그 어떤 감정들을 노래한다. 여성, 그리고 엄마라는 다분히 자유롭고, 다분히 고통스런 이 두 개의 키워드는 포크의 건조함, 개러지 록의 거침, 펑크의 솟아남을 오가며 천미지 개인의 어두운 감정들을 꺼낸다.

그렇게 마주한 첫 장면은 애쓰지 않고 담담하게 흘러간다. 자글거리는 노이즈와 내면의 문을 열어젖힐 것만 같은 진하고 깊은 기타 선율은 일인 칭 발화로 시작된 서사를 끌어와 우리에게로 확대한다. 즉, 첫 곡 'Love song'의 늘어지고 빈티지한 질감의 기타 톤과 이어지는 'Searching for lovers'의 낮은 기타 리프, 고임의 신경질적인 소음 다발들은 3호선 버터플라이의 음악이 그랬듯, 허클베리 핀의 존재가 그랬듯 날 것의 감정들을 소환하고 청각화 한다.
 
 인디 신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던 천미지가 첫 번째 정규 음반 <Mother And Lover>을 발매했다.

인디 신을 중심으로 활동해오던 천미지가 첫 번째 정규 음반 을 발매했다. ⓒ 먼데이브런치

 
여기서 인디 신을 중심으로 오랜 활동을 거쳐 첫 번째 정규 음반을 발매한 그의 작법 센스를 발견한다. 그것은 선율이 살아 있다는 점이다. 타이틀 'I want to be your mother'의 "Put you into me / die in me"이란 투박하고 시적인 언어. 'My satisfiable baby'의 "Green hills green hills / let's roll let's roll"이란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랫말의 나열이 무질서가 아닌 하나의 이미지로 삼켜질 수 있는 건 많은 악기를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그가 멜로디를 놓치지 않고 엮어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다.

특히 시종일관 관조적인 창법으로 가사, 반주와 거리를 두되 사운드, 편곡에 있어 망설임 없는 시도는 이 창작물에 더욱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리드미컬하고 쉬운 연주의 'Don't be scared'는 사이사이 배치한 코러스와 휘파람으로 배경을 환기하고 어쿠스틱 기타와 속삭이는 보컬로 무채색을 퍼뜨리는 'Wet kitty'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등장하는 나른하고 몽환적인 다층의 코러스로, 독특한 편곡의 신선함으로 음반의 중심을 쌓아낸다.
 


다시 말해 여기에는 온통 낯선 것투성이다. 천미지 라는 인디 뮤지션의 존재와 한국 대중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여성과 엄마를 앞세운 글감. 또한 선명하고 선명하지 않은 것 사이를 오가는 가시 돋친 음압의 부풀음과 잔잔한 감정의 울렁임까지. 불안한 멜로디와 시적인 도무지 뜻을 알 수 없는 노랫말을 곱씹다 보면 잘 알지 못하며 알고 있는 내면의 말들이 터져 나온다. 정점은 노이즈로 문을 닫는 끝 곡 '도피'.

"누구는 초비참을 말하고, 누구는 유한함을 말한다 / 누구는 자조를 흘렸고, 누구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이 행간에 놓인 헛헛함에 취해 여러 번 음반을 돌려 들었다. 낭비 없는 사운드의 활용, 망설임 없는 편곡의 차용, 선명한 멜로디, 단면적이고 날카로운 가사. 프로듀싱에 참여한 동료 음악가 김사월을 비롯해 악기 연주에 모두 여성이 참여했다는 점은 음반의 또 다른 돋을새김이다. 치열하고 건조하게 바라본 천미지의 속내가 흐르고 흘러 누군가에게 깊게 가닿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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