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0월 청산리 대첩의 승리가 전해지기 4개월여 전, 작아 보이지만 위대한 승리가 있었다. 독립군 창설 이래 첫 승리, 소수의 독립 연합군이 360여명의 일본 정예군을 물리친 봉오동 전투였다. 역사 교과서에 단 몇 줄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 <봉오동 전투>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역사적 실존 인물, 위인이 전면에 나선 게 아닌 이름 모를 민중들이 주인공이 됐다는 것. 마적단의 리더 황해철 역의 유해진도 그 맥락이었다. 북한 황해도 사람인 황해철은 동생이 자신의 눈앞에서 죽는 광경을 목격하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본군을 토벌하는 독립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영화 홍보차 지난 1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유해진은 "어떤 투철한 역사의식이 있던 건 아니고 그저 끌리는 대로 작품을 택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운을 뗐다. 

"근현대사 지식 없지만, 영화 참여하며 배워"

공교롭게 유해진의 전작이 <말모이>다. 일제강점기 한글 말살 정책에 항거한 이들을 다룬 이야기. 두 작품에서 연이어 항일 캐릭터를 맡게 된 것에 유해진은 "거기에 의미를 두시는 분이 있는데 엄청난 사명감을 갖고 작품에 임하진 않는다"며 "그럼에도 나이가 먹으면서 어떤 메시지지가 담긴 작품을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가)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이라는 의미도 있었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통쾌함도 있더라. 독립군이 일본군을 유인하는 과정을 그린 게 통쾌하게 다가왔다. 민중의 울분? 그런 게 보였다. 어제 농민이었던 사람들이 독립군이 되지 않나. 황해철이 가상 인물이긴 하지만 시나리오에 잘 설명돼 있었다. 적당한 유머도 있고, 긴장감도 지닌 인물인데 그 균형을 잘 잡아야 했다. 자칫 벗어나면 작품에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으니.

황해철은 동생 때문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이다. 제가 예전에 드라마 <토지>에서 김두수 역할을 했을 때 그 엄마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면서 서희(김현주)를 죽어라고 쫓잖나. 그것처럼 해철 역시 그런 경험을 했기에 일본을 평생 싫어하며, 동생 같은 장하(류준열)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있는 것이지."


유해진은 말 그대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섬세하고 자세하게 분석하며 작품에 임하는 걸로 유명하다. 가상 인물 황해철을 그렇게 이해한 뒤 그는 해당 캐릭터의 트레이드 마크인 항일대도 액션을 연구했다. 어떻게 칼을 들고, 어떤 액션을 보여야 하는지 고민한 그는 특유의 투박한 액션을 감독과 고민하며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뛰는 액션캠 역시 유해진의 아이디어였다.

"액션 하면 항상 하는 이야긴데 무술 감독님이 워낙 잘하신다. 그리고 사실 제 대역을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 했다. (<봉오동 전투> 연출인) 원신연 감독님이 부탁했더라. 그분만의 솔직한 액션이 있다. 촬영 초반에 일본군과 전투신에서 해철의 액션에 기교가 있거나 화려함이 있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했었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 삶에서 느껴지는 투박함이 묻어야 했다.  그래서 대역을 해주신 거고. <무사> 때부터 인연이 있다. 저와 닮았다고? 그 형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걸 아마 본인은 이병헌 닮았다고 할 것 같다(웃음)."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어제 농민이었던 사람들이 독립군이 되지 않나. 황해철이 가상 인물이긴 하지만 시나리오에 잘 설명돼 있었다." ⓒ 쇼박스

 
그는 평소 독립군 역사에 "딱 역사책에 나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길게 공부할 기회가 없었다"며 "<말모이> 때 한글학회도 그렇고, 영화를 하면서 알아간 게 크다"고 말했다.

"전 이번 영화가 참 좋았던 이유가 봉오동 전투가 승리했던 전투라는 것만 알고 있지 그 과정을 잘 모르잖나. 그걸 설명했다는 거였다.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하기까지 이런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그린 게 참 좋았다. 물론 역사책에 나오는 그 유명하신 분들의 작전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그걸 실행하기 위해 목숨 걸고 뛴 많은 분은 가려져 있다. 참 가슴 아픈데 숫자만으로 남아 있는 분들... 그분들을 조명해서 의미가 더 깊은 것 같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 쇼박스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영화 <봉오동 전투>의 한 장면. ⓒ 쇼박스

 
지금은 공개할 수 없는 어떤 다짐

이 말을 하며 유해진의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 그만큼 진정성을 담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말모이> 때 그는 한글학회가 있던 자리를 찾아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유해진은 "이 자리에서 얘기하긴 그렇고, 그런 시간이 있긴 했다"고 말을 흐리며 전했다.

그렇기에 소위 '국뽕', 그러니까 과하게 애국심을 강조하며 직접적으로 고취시키려 한다는 일각의 비판에도 할 말이 있었다. 유해진은 다소 조심스럽게 "역사극이라면 늘상 나오는 단어인데 잘 모르겠다. 그럼 간접적으로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며 "(독립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걸 돌려서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직선적 이야기다. 오히려 돌려 이야기하면 더 어색할 것"이라 답했다.

보통사람의 힘을 그는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봉오동 전투>에 깔린 정서도 곧 그것과 일치한다. 보통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단순한 명제에 대해 유해진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며 "그렇게 바뀌려 노력하는 시대 아닌가"라고 짧고 굵게 답했다.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황해철 역을 맡은 배우 유해진.

"이번 영화가 참 좋았던 이유가 봉오동 전투가 승리했던 전투라는 것만 알고 있지 그 과정을 잘 모르잖나. 그걸 설명했다는 거였다. 봉오동으로 일본군을 유인하기까지 이런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그린 게 참 좋았다." ⓒ 쇼박스

 
다만 현재 일본 무역 보복 조치로 경색된 한일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봉오동 전투>가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에는 "좋지 않은 시국에 영향받고 싶진 않다"며 "영화는 영화의 힘으로 흘러가야 한다고 본다. '마침 영화가 좋다고 해서 봤는데 영화를 보니 후련하기까지 하다'는 그런 평을 받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흥행 스코어 자체에 제가 (주연이라고) 부담을 갖진 않으려 한다. 그저 다들 고생한 만큼만 보답받으면 좋을 것 같다. 천만 영화들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200, 300만 되기도 얼마나 힘든가. 개인적으로 전 200만 관객 정도가 손익분기점인 영화를 많이 하고 싶다. 영화 예산마다 물론 정도는 다르겠지만 너무 천만만 외쳐서도 안 된다고 본다. 중박 영화들이 많이 나와야 다양성도 확보가 되는 것이겠지. 천만은 사실 모든 조건이 잘 맞아 떨어지고 운도 있어야 가능하다. 그 숫자에 대해선 감히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유해진 봉오동 전투 일본 독립군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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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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