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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은 장마 같지 않은 장마가 쭉 지속되었다. 이른바 마른장마! 벼논의 논물이 말라 쩍쩍 갈라지고, 밭작물은 목이 타들어갔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지각생 장마가 찾아왔다. 가뭄에 단비 같은 장마가 반갑다. 그간 농부의 마음을 애를 태운 게 미안했는지, 늦장마는 요 며칠 세찬 빗줄기를 뿜어냈다. 굵은 장대비에 논물은 찰랑찰랑, 밭작물들도 생기를 되찾았다.
 
500여주 심은 우리집 고추밭이다. 아직까지는 잘 자라고 있어 기대가 크다.
 500여주 심은 우리집 고추밭이다. 아직까지는 잘 자라고 있어 기대가 크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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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님들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이젠 저수지물도 거즌 차겠어!"
"그래 세상 이치에 죽으란 법은 없는 법이여!"
"벼 이삭거름 주면 올해도 풍년들겠지!"
"아직 입찬소리는 일러! 태풍이 언제 올지 모르잖아!"


이웃집 두 어르신께서 이야기 끝에 우리 집 고추밭으로 시선이 옮겨왔다.   

"요집 고추농사 제법일세! 지하수로 물을 자주 준 모양이지? 벌써 초벌고추를 따야겠는 걸! 제때 따내야 자꾸 달려!"  

어르신들 말마따나 우리 고추밭에도 아랫도리가 많이 붉어졌다. 가뭄에도 씩씩하게 잘 자라 준 고추가 고맙다. 다른 분께서 훈수가 이어진다.

"지금 얼른 따 내고 소독을 철저히 하라구! 고추농사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니까! 고추건조기는 있지?"

첫물 달린 것이라 양은 그리 많지 않다. 허지만, 토실토실 붉게 익은 고추가 예쁘기만 하다.
 
숱하게 달린 우리집 고춧대. 가뭄과 장마를 이기고 튼실하게 자라주었다.
 숱하게 달린 우리집 고춧대. 가뭄과 장마를 이기고 튼실하게 자라주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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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고추 농사

고추농사 짓기는 다른 농사에 비해 일손이 많이 간다. 오죽하면 밭농사 중에 고추농사는 고생바가지가 열린다고 할까? 
 
고추꽃이다. 고추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 예쁘다.
 고추꽃이다. 고추꽃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참 예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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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초순, 나는 고추농사를 전문으로 하는 분한테서 모종 500여주를 주문하여 심었다.

옮겨 심은 고추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크면 곁순을 따준다. 곁순을 질러줘야 곁가지도 많이 나오고 고춧대가 튼실하게 자라기 때문이다. 고춧대가 크게 자라면 말짱을 박아 줄을 띄어 붙잡아준다. 우리 고춧대는 키가 크게 자라 다섯 차례나 쓰러지지 않게 묶어주었다. 시도 때도 없이 고랑에 자라는 풀 때문에 부직포를 깔아 김매는 작업을 줄였다.

다음은 고추 병해충 방제! 진딧물을 비롯하여 응애, 총체벌레 등 각종 해충이 고춧대를 괴롭힌다. 또 탄저병이라는 병과 무서운 역병이 돌면 고추농사는 순식간에 망가지는 수가 있다. 풋고추나 따먹을 요량이면 몰라도 붉은 고추를 수확하여 고춧가루를 내려면 소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친환경으로 고추농사를 짓다가 병해충에 견디지 못해 농사를 그르치는 사람들도 더러 더러 있다. 아무튼 고추농사는 여느 농사에 비해 일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든다. 무더위에 고추 따기도 쉽지 않고, 태양에 의존하여 건조하는 것도 만만찮다. 요즘은 건조기에 말리니 그나마 한결 수월해졌다.

고추가 익어가니 가을이 머지않았다

내 고추 따는 일을 도와주기 위해 두 어르신들께서 팔을 걷어붙였다.

"이 정도면 전문가 이상이야!"
"그래요?"
"아마추어 수준을 넘었다니까!"
"몇 년 텃밭을 가꾸다 보니 요령이 생겼어요."
 
 
고춧대에 숱하게 고추가 달렸다.
 고춧대에 숱하게 고추가 달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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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칭찬을 들으니 공연히 기분이 좋다. 고추 한 가마 남짓 후딱 거두었다. 쉽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수확한 고추는 꼭지를 따 맑은 물에 깨끗이 씻었다. 씻은 고추를 마당에 널어놓으니 벌써 가을이 온 것처럼 풍성하다.
  
첫물 수확한 고추를 물로 깨끗이 씻었다. 건조기에 들어갈 것이니까 씻어 말리면 청결고추가 된다.
 첫물 수확한 고추를 물로 깨끗이 씻었다. 건조기에 들어갈 것이니까 씻어 말리면 청결고추가 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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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물이라 그런지 빛깔도 좋고, 고추가 통통하여 품질이 좋아보인다.
 첫물이라 그런지 빛깔도 좋고, 고추가 통통하여 품질이 좋아보인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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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은 고추는 건조기 판에 널어 물기를 제거하여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씻은 고추는 건조기 판에 널어 물기를 제거하여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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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께서 돌아가시고, 빗방울이 들어 고추건조기에 집어넣었다. 기계가 사람 손을 대신해주니 비가 와도 걱정이 없다. 첫물고추를 수확하며 자연이 베푼 혜택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빨간 고추가 익어가는 걸 보니 가을도 머지않은 것 같다.

태그:#고추, #첫물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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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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