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왼쪽부터) 최진훈 법무부장,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 정영하 정책기획부장.

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 (왼쪽부터) 최진훈 법무부장,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 정영하 정책기획부장. ⓒ MBC


2016~2017년도에 입사한 계약직 아나운서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발당한 MBC가 31일 자체 진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받아들여 업무 공간 분리를 해결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직무도 부여할 예정이다. 또, 본안소송 1심 판결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현재 MBC와 부당해고 소송을 진행 중인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MBC를 상대로 근로자지위가처분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본안 판결 선고시까지 근로자 지위를 임시로 인정받아 회사에 복귀한 상태다. 하지만 MBC는 이들에게 업무를 부여하지 않았고, 이들에게 기존 아나운서국이 아닌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줬다. 또 사내 인트라넷 접속 권한도 부여하지 않았다.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이러한 MBC의 결정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지난 16일 MBC를 고용노동청에 진정했다. 

MBC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전날인 15일 오후 11시께 최승호 사장에게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메일을 발신했다. 이튿날인 16일 오전, 최승호 사장은 해당 사안에 대해 관계부서에 처리를 지시했지만, 비슷한 시각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서울 고용노동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 "괴롭힘 증거 없지만, 노동인권 측면에서 개선해야" 

MBC는 사내 신고 절차와 규정을 도외시한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한편, 신속하고 공정한 조사를 약속했다. 그 이튿날인 17일 외부 전문가인 김주현 변호사를 위원장으로 한 조사위원회가 꾸려졌으며, 신고자 대표 2인에 대한 면담, 회사 관계자 조사 등을 진행했다. 

조사 결과, 조사위원회는 "현재 2건의 쟁송이 진행 중에 있으면서 임시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은 신고자들의 잠정적 신분을 고려할 때 직장 내 괴롭힘 방지 규정 적용에 있어 정규 지위에 있는 일반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기준과 요건을 그대로 요구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업무 미부여 및 공간 분리에 대해 '6개월 이상 시청자들을 상대해야 하는 아나운서 직무 특수성과 기존 아나운서들이 이미 프로그램에 모두 배정되어 있다는 점, 12층 사무실이 필요한 시설을 갖춘 사무공간이며 기존 아나운서들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 갈등의 골이 깊은 양측 관계가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도적으로 신고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시행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고자들이 해당 조치로 인한 상황에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므로 노동 인권의 측면에서 신고자들의 고통을 해소하고 오해와 소모적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현 상황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위원회는 "신고자들의 현재 상황을 고려하여 신고자들에게 아나운서국 고유 업무 중 적절한 직무를 부여하고, 신고자들에게 부여된 업무 수행의 효율성을 위해 아나운서국 배치를 원칙으로 하되, 아나운서국 공간 사정과 업무 배치 상황을 고려해 시행하라"고 권고했다. 

MBC "방송 출연은 어렵지만, 아나운서국 업무 줄 것" 
 
 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영하 정책기획부장.

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영하 정책기획부장. ⓒ MBC


MBC 아나운서국장은 31일 오전, 진상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진행했다. 정영하 MBC 정책기획부장은 "조사위원회 권고를 이행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지만, 아나운서국 내 공간이 부족해 7명이 모두 아나운서국에 배치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괴롭힘 신고 내용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에 이분들을 우선 배려해 공간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업무 배제 건과 관련, 계약직 아나운서들은 방송 진행이나 라디오 뉴스 진행 등의 업무 부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영하 정책기획부장은 "아나운서 업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아나운서의 방송 출연은 캐스팅의 영역이고 캐스팅은 제작진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기존 프로그램에 이미 배치되어 있는 아나운서들이 있고, 라디오 뉴스 등을 진행하기 위해 계약되어 있는 인력들이 있다. 이들에게 업무를 빼앗을 수도 없는 일 아닌가"라며 "아나운서국 내에는 방송 외에도 여러 업무가 있다. 신고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최대한 의사를 반영해 권고 사항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 아나운서국장과 MBC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은 "MBC의 입장은 단체협약 내용에 따라 1심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것"이라면서 "법원 휴정 기간이 지나면 변론 기일이 열릴 예정이고, 올해 안에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보고 있다"고 말했다.   

MBC는 최근 행정소송 1심 판결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아 업무 복귀를 논의 중인 보도국 프리랜서 앵커 건과 관련해서는 "계약직 아나운서들의 사례와 다르다"고 강조했다.

최진훈 법무부장은 "프리랜서 앵커 건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선발한 앵커의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문제였다. 근로자성이 인정된다면 5년 동안 회사에 근무했기 때문에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케이스였다"고 설명하며, "전문계약직 아나운서 소송의 쟁점은 계약 갱신 기대권 인정 여부"라고 말했다. 

상반기 400억 적자... MBC, 비상경영체제 돌입 
 
 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

31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에서 진행된 MBC 경영상황 및 직장 내 괴롭힘 진상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 ⓒ MBC


한편 MBC는 오는 8월 1일부터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MBC는 올 상반기 공영방송 MBC의 신뢰도와 영향력의 상승세가 뚜렷하고 예능, 드라마 역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자평했지만, 달라진 미디어 환경과 비대칭 규제 등 여러 원인으로 인해 지상파 광고 시장 규모가 급격하게 축소함에 따라 상반기에만 400억 원 대의 영업손실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어 3년 연속 대규모 적자로 회사의 지속가능성 및 미래 성장 동력이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들어 2020년 예산 편성에 2019년 대비 500억 원 이상의 비용 절감을 위한 자구 노력을 시행할 예정이다. 

주요 내용은 이미 시행 중인 임원 임금 10% 삭감, 업무추진비 30% 반납, 전 직원 연차수당 현금보상한도 축소 등을 이어가면서, 추가적으로 1) 해외 지사 효율화 및 파견 대상 업무 축소 2) 업무추진비 축소 및 경비 긴축 3) 프로그램 탄력 편성 및 제작비 효율화 등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또 노동조합과의 합의를 통해 1) 영업 성과와 상여금 연동 2) 임금 피크제 확대 적용 등을 추진한다.  

"비대칭규제 해소되지 않으면 지상파 생존 어렵다"

MBC는 자체 비용 절감 노력과 함께, 비대칭규제가 해소되지 않으면 지상파 방송사 적자가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하게 했다.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은 "중간 광고에 대한 시청자 불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방송사는 콘텐츠 제작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면서 "중간 광고는 이미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등에는 허용되어 있다. 지상파 3사만 중간 광고 못 하게 하면서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라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미 분리 편성으로 중간 광고가 사실상 시행하고 있는데 중간 광고 허용이 지상파 적자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조 기획조정본부장은 "광고주들이 PCM(프리미엄 광고)보다 중간 광고를 더 선호한다. 이미 지상파를 떠난 광고주들을 끌어올 수 있는 효과도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MBC는 지상파 3사에 집중된 방송통신발전기금 징수 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강조했다. 방송발전기금은 방송광고판매에 연동되어 징수율이 정해진다. MBC는 3.87%를 적용받고 있지만, 종합편성채널 4사는 1.5%, CJ E&M은 방송발전기금 납부 의무가 없다.

정영하 정책기획부장은 "지상파에 집중되어 있는 높은 징수율을 공평한 기준으로 책정해주길 요구하는 것"이라면서 "공정한 환경에서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능희 기획조정본부장은 "비대칭규제 해소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본 요건"이라면서 "최근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시청자를 흡입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면 앞으로는 넷플릭스가 허락하지 않는 콘텐츠는 제작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지금도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계약할 때 한류스타의 출연, 로맨스 장르 등 '세계 시장에서 팔릴 만한' 아이템에 치중하고 있다. 넷플릭스에 잠식된다면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콘텐츠는 제작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MBC 비상경영체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