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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지난 2월, 우리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머문 네덜란드 인상기다. 짧은 여행이라 영혼을 깨우는 깊은 통찰은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무뎌진 감각을 꼬집어 잠자는 감성 정도는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씁니다. - 기자말

(* 이전기사: 재래시장과 결합한 주상복합, 이게 말이 되나?)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큐브 하우스가 완성된 시기다. 1984년도에 지었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35년 전이다. 1980년대 중반의 네덜란드는 전후 고속성장이 멈추고 사회 각 부분에서 정체가 심해지던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험적 건물을 시도하고 용인할 수 있는 그들의 마인드가 부러울 뿐이다. 큐브 하우스에서 우리는 단지 기괴한 건물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눈요기만 할 게 아니라 미래를 고민하고 시대를 앞서고자 하는 건축적 사고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큐브하우스와 연필 모양 건물
 큐브하우스와 연필 모양 건물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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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이 견학을 왔다. 그 나이 특유의 발랄함으로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주택 사이를 돌아다닌다. 당장은 건축적 가치나 미학을 파악하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집이 있다는 걸 본 것만으로도 그들의 상상력 노트엔 자산이 하나 추가될 것이다. 획일적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집에 대한 상상력이 어찌 네덜란드 아이들과 같겠는가.

하버드대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고 문명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도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생각의 교류가 활발해졌고 도시 전체 사고의 총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신경세포 하나하나가 모여 뇌를 이루면 (뇌세포) 개별 단위에서 일어날 수 없는 차원의 창발 현상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개개인의 합을 뛰어넘는 창의성과 소프트웨어가 도시 차원에서 창조된다. 창의성의 배경에는 다양성이 존재해야 하고 다양성은 개방성을 전제로 한다. 로테르담은 다양성과 개방성이 존중되는 도시다. 인종적, 출신 지역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종교적으로도 다양한 믿음이 존재한다.

2017년 인구조사에 의하면 로테르담에서 네덜란드인은 49.7%이고 나머지 반이 이민자 출신이다. 또한 종교는 무교 47%, 가톨릭 19%, 이슬람 13%, 개신교 11%, 힌두교 3.3% 등으로 다양하다. 한마디로 로테르담은 다양성과 개방성 위에 피어난 자유와 창의의 도시인 것이다.
  
시립도서관 건물. 내부 배관이 노출돼 있어 퐁피두센터를 연상시킨다.
 시립도서관 건물. 내부 배관이 노출돼 있어 퐁피두센터를 연상시킨다.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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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된 도시'와 에라스무스 다리

우리는 큐브 하우스를 나와 에라스무스 다리로 향했다. 해양박물관으로 가던 중 브론즈 조각상 하나를 만났다. 과장된 팔다리 인체는 당장이라도 튀어나갈 듯 역동적이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절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갈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러시아 출신 프랑스 조각가 오십 자드킨(Ossip Zadkine, 1888~1967)의 작품 '파괴된 도시(The Destroyed City)'다. 베니스 비엔날레 조각상을 받으며 유명해진 자드킨은 전후 로테르담 시로부터 의뢰를 받고 작업에 착수했다. 1951년 완공된 이 조각상은 전쟁으로 파괴된 로테르담 시민의 절규와 동시에 폐허에서 힘차게 일어나는 동작을 떠올리게 한다.

과장된 동작과 무채색의 질감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오버랩 되는 건 나만의 느낌일까. 의미심장한 건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이다. 심장이 떨어져나간 아픔을 표현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무엇을 떠올리건 감상자의 몫일 것이다.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자드킨의 '파괴된 도시'
 자드킨의 "파괴된 도시"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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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파괴된 도시'가 있는 광장은 로테르담 해양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옥외 전시장에는 실물 배들이 전시물로 정박해 있다. 소방선, 석탄엔진선, 고기잡이배, 드릴선 등과 증기엔진부터 디젤엔진까지 일백 년 전의 로테르담 운하를 돌아다니던 배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 안의 박제된 모형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활약했던 배들을 직접 올라가 보기도 하는 현장체험형 콘텐츠가 인상 깊다.
 
해양박물관의 선박 옥외 전시물
 해양박물관의 선박 옥외 전시물
ⓒ 황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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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박물관 전시라인을 따라 가다가 끝에 이르면 에라스무스 다리를 만나게 된다. 에라스무스 다리는 길이 802m의 현수교로 1996년 완공됐다. 마스강을 가로질러 로테르담의 남북을 연결하고 있고 '백조'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로테르담의 랜드마크인 다리 이름이 '에라스무스'가 된 까닭은 그가 로테르담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을 딴 '에라스무스 대학'도 로테르담 최고의 대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에라스무스는 1466년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이마저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당시 귀족이 아니면 특별한 성이 없이 이름만으로 불렸기 때문에 에라스무스의 성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그래서 그는 후대뿐만 아니라 생전에도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Erasmus of Rotterdam)로 불리었고, 본인 또한 그렇게 불리길 원했다.

에라스무스는 인문주의자로 평가된다. 이탈리아에서 발흥한 르네상스가 15세기 중반에 시작됐다면 에라스무스의 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주지하다시피 르네상스는 신(神) 중심 사고에서 인간 본위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인본주의 사상을 일컫는다. 에라스무스 본인은 르네상스의 거대한 물결을 의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뛰어난 사상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역시도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지배적 도그마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서 시작했다.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

사실 인문주의자란 처음부터 신학적 도그마를 뛰어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 뿌리는 그리스 고전을 연구하면서부터이다. 성경의 원전 중 구약은 히브리어(히브리 민족의 역사서다), 신약은 그리스어(당시는 헬라어가 보편어였다)로 쓰였다.

중세에는 라틴어로 번역된 신구약을 텍스트로 사용하고 있었다. 인문주의자들은 원전에 의거하고자 하는 문헌학적 연구 욕심으로 그리스 고전어를 공부하다보니, 자연의 원리와 세속적 인간을 탐구 대상으로 하는 그리스 철학을 자연스레 습득했다. 인본주의를 향한 창을 연 것이다.

르네상스를 여는 또 하나의 줄기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투르크에게 멸망하면서 수많은 학자들이 서구 라틴세계로 망명했다. 이때 비잔틴과 아랍의 실용적 학문도 따라 들어와 중세 유럽의 정신세계에 망치질을 했다.

에라스무스 역시 고전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그는 어려서 로테르담을 떠나 평생 유럽 각 도시를 전전했다. 그에게는 혁명적 열정이나 사상적 심오함은 없었지만, 당대 지식인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행동은 과격하지 않았고 그의 저서는 고매하지 않았다. 그래서 증오하는 적도 없었지만 열렬한 추종자도 없었다. 그의 사상은 확 타오른 불은 아니었지만 종이에 물이 스미듯 서서히 유럽을 적셔나갔다.
 
한스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 초상
 한스 홀바인이 그린 에라스무스 초상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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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년 에라스무스는 그리스어 성서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주석을 달아 <교정 신약성서>라고 제목을 붙여 발간했다. 교황청에서는 환영의 입장을 표하고, 교황은 그를 로마로 초청해 같이 일할 것을 제안했다. 만화가 김태권의 표현대로 '인디 지식인'으로 살아온 그는 어디에도 매이고 싶지 않아 제안을 거절한다. 새롭게 번역한 신약성서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에는 그동안 쌓아올린 인디지식인의 명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교황청은 대중적 인기가 있는 그를 곁에 놓고 싶었던 것이다.

그가 인디지식인으로 유명세를 탄 첫 번째 저작이 <격언집>이다. 풍부한 라틴어 지식과 조예가 깊은 그리스어를 바탕으로 당시 민간에 떠돌던 금언과 속담을 편찬했다. 고대의 신비 언어와 귀족 언어를 대중에게 그런 식으로 마구잡이 유통시켜도 되냐는 일부 인문주의자의 비난도 있었지만 에라스무스는 대중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여겨 기어이 출간한다. 1500년 초판은 그저 그랬지만 내용을 추가한 1508년 증보판이 빅히트하며 유명인사가 된다.

친구 토머스 모어의 초정으로 영국으로 건너간 에라스무스는 새로운 저서를 출간한다. 에라스무스를 인류 지성사 목록에 올리게 한 <우신예찬>이다('바보의 자기자랑'이 정확한 번역이다). 모어의 집에서 아무런 참고 자료 없이 단숨에 써내려갔다고 한다.

태그:#PERDIX, #홀란드 인문기행 , #로테르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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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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