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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8월 2일 오후 1시 53분]
 
담배꽃입니다. 6월 고창(전북)에서 만났습니다.
 담배꽃입니다. 6월 고창(전북)에서 만났습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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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꽃'이다. 아마도 직접 못 본 사람들이 더 많을 그런 꽃이지 않을까 싶다. 설명에 보면 '우리나라 중부 지방에서 주로 심는 작물'이라고 되어 있는데, 내가 아는 한 충청남도 일부 지역과 전라도와 경상도처럼 따뜻한 지역에서 특히 많이 심는 그런 작물이니 말이다.

담배 피는 사람들 중에도 담배란 작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식물체 자체는 물론 꽃은 더더욱 모를 사람들이 더 많지 않을까? 지레짐작해 본다.

담배는 남미가 원산지인 아열대 및 열대작물로 매우 크게 자란다. 대략 1m 50cm~2m 정도 자란다고 한다. 원산지에선 다년생 작물인데 우리나라에선 월동이 힘들어 해마다 다시 심는다.

전형적인 농촌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마도 김제라는 지역명을 듣는 순간 '벽골제'와 '넓은 논'을 우선 떠올릴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실제로 고향이 김제라고 밝히면 '열에 아홉'은 넓은 평야를 이야기한다. 이는 아마도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 고향 김제는 같은 김제지만 논보다 밭이 훨씬 많은 곳이다. 당연히 밭농사가 많다. 그러니 김제 광활이나 만경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넓은 논 풍경도 볼 수 없다. 이런 내 고향에선 복숭아와 고추, 여러 가지 콩, 참깨와 들깨 그리고 담배 등 어지간한 밭작물들은 거의 다 심었다.

당시 고향 농가들이 목돈을 쥘 수 있는 대표적인 작물들은 복숭아 같은 과일들과 고추 그리고 담배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농사짓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충)은 어떻게 팔 것인가? 즉 판로다. 그러니 판로가 보장되는 담배 농사는 농부들에게 그만큼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실제로 담배를 심는 집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왜일까? 
 
담배는 손으로 일일이 잎을 따야 하기 때문에 일손을 많이 필요로하는 작물입니다. 때문에 농촌에서 많이 볼 수 없는 작물이 되었습니다. 몸에 해로우니 사라짐이 아쉬울 것 없는 작물이긴 한데 꽃은 보고 싶은 욕심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담배는 손으로 일일이 잎을 따야 하기 때문에 일손을 많이 필요로하는 작물입니다. 때문에 농촌에서 많이 볼 수 없는 작물이 되었습니다. 몸에 해로우니 사라짐이 아쉬울 것 없는 작물이긴 한데 꽃은 보고 싶은 욕심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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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의 원료가 되는 담뱃잎을 얻고자 심는 전매작물로 담뱃잎이 어린 아이들 키만큼 자라는 이즈음부터 한여름 내내 잎을 따 엮어 말립니다.
 담배의 원료가 되는 담뱃잎을 얻고자 심는 전매작물로 담뱃잎이 어린 아이들 키만큼 자라는 이즈음부터 한여름 내내 잎을 따 엮어 말립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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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든 비싸든 농사지어 놓으면 나라에서 다 팔아주니 담배 농사가 돈 쥐는 데는 유리하긴 하지. 봄에 모종 옮겨 심으면 크게 할 일도 없어 편하긴 하고. 그래서 담배 농사 맛을 들인 사람들은 계속 짓곤 했는데… 그런데 담뱃잎 따기가 보통 힘들어야지. 잎이 상하면 안 되니 비료푸대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놓고 잎을 따서 차곡차곡 애기 다루듯이 얹으며 밀고 다니며 따야 하거든.  그 큰 잎을. 그러니 힘들지.

거기다 제일 아래부터 따올라가는데 자라는 거 보면서 매일 몇 장씩 따지 않나. 그러니 쪼그려 앉아 따다가, 엉거주춤 앉아 따고, 조금 더 일어나 따다가 허리 조금 수그려 따다가 이런 식으로 잎 높이에 따라 따야 하고. 그러니 좀 따면 정강이부터 허리, 어깨까지 안 아픈 곳이 없어. 지금부터 한여름 내내 따는데, 덥기는 엄청 덥지. 그런데 냄새도 나고 껄끄럽고. 담뱃잎 따면 끈적끈적한 것이 나오거든. 손에 쩍쩍 달라붙어 잘 씻기지도 않고, 그게 아주 고역이었어.

몸에 안좋다는 말도 있었고. 그러니 누가 담뱃잎 따는 일 가려고 하겠나. 인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품앗이 해줘야 하는 집은 따주기도 하고 엮어 주기도 하지만 어지간해선 안 하려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렇다 보니 (일)손 구하지 못해 한두 해 심고 포기해버리는 집들도 많았고."
 
6월 중순, 고창(전북)에서 찍었다. 그 무렵 이미 내 어깨만큼 자랐었다. 지금쯤은 아마도 훨씬 키도 크고, 담배의 원료가 되는 잎도 훨씬 크게 자라지 않았을까. 그래서 담배 수확도 할 것 같아 친정엄마(아래 엄마)께 물어보니 이처럼 말한다.

목돈 쥐기 쉬운 작물인데도 심는 농가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담뱃잎 따기가 고역이라 일손이 아쉬웠기 때문 아닐까? 이는 우리 고향 사정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도 담배를 심는 집이 서너 집 있었다. 우리 복숭아 과수원 가는 길에도 해마다 담배가 자라는 밭이 있었다. 그래서 과수원 원두막에 거의 매일 가다시피 하는 여름방학이면 담뱃잎 따는 모습과 엮어 매단 커다란 담뱃잎들이 말라가는 것을 보곤 했다. 

엄마 말대로 더운 여름에 수확한다. 수확한 잎자루를 엮어 그늘에 매달아 말린다. 붉은빛을 띠면서 마르는데, 수확도 끝나고 잎이 다 마르면 관련 기관에서 트럭을 몰고 와 모두 가져갔다. 그렇게 가져간 담뱃잎들은 '잘게 썰거나' 등과 같은 일정의 가공과 포장을 거쳐 애연가들이 만나는 담배 형태로 탄생하는 것이다.
 
"방학 때 원두막에 매일 갔으니까 차츰차츰 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거든. 담뱃잎을 따기 시작할 때는 키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던 담배가 잎을 따낼수록 키가 껑충 자라 방학 끝날 무렵에는 꼭대기에 말라버린 꽃과 작은 잎 몇 개만 매달고 있대. 우리 키보다 훨씬 컸잖아. 그래서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 밑 그게 어린 마음에도 멋있게 보이더라고!"

"그랬나? 담배만 심고 밭을 놀릴 수 없잖아. 그런데 담배 뽑고 난후 뭘 심기에는 좀 늦고. 그래서 좀 일찍 심으려면 담배를 급히 뽑아내야 하고. 그래서 담배 밭에는 늦게 거두는 메주콩을 주로 심었다. 6월에 콩을 심으면 이즈음 제법 자라 콩 열리는데 지장이 없는거지. 담배 농사 짓는 사람들은 대 뽑아내는 것도 일이었어. 심는 사람들은 많이 심었으니까"
  
6월의 담배꽃. 어린 시절, 커다랗게 자라는 담배는 무척 크게 느껴졌습니다.
 6월의 담배꽃. 어린 시절, 커다랗게 자라는 담배는 무척 크게 느껴졌습니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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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에서 담배꽃을 본 순간 반가웠다. 엄마 말에 의하면 "차 타고 가다보면 더러 보이기도 한다"지만 난 30여 년 만에 보게 된,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성이 한창 돋던 청소년기에 눈에 넣곤 하던 추억 속의 꽃이라서다.

차를 타고 달리는데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제법 큰 담배밭들이 보였다. 기계로 어지간한 농사일은 다 할 수 있다지만 내가 아는 한 담뱃잎은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그로 미뤄 짐작, 그렇다면 그만큼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우리나라 농촌 대부분 현실이 그런 것처럼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 많은 담뱃잎들은 누가 다 딸까? 오지랖 넓은 걱정을 한다.

담배꽃은 어쩌면 그리 유쾌하지 못한 꽃일 수 있다. 담배가 사람에게 해로운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담배 농가가 사라져도 아쉽진 않을 것 같다. 그런데 30여 년  만에 본 추억 속의 꽃. 그래서 반갑고 더 예쁘게 와 닿던 꽃. 아마도 꽃을 만나기 전 나처럼 오래전 기억 속에만 있을 사람들도 많을 것 같고, 꽃의 존재조차 모를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 내 담배꽃 추억에 엄마의 담뱃잎 따던 경험을 얹어 보았다.

덧붙이면,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것은 1600년대 초, 300여 년간 자유경작을 하다가 1921년부터 전매경작으로 돌렸단다. 지난 날 참 많이 심던 작물 중 하나였는데, 1970년 무렵부터 심는 농가들이 많이 줄었고 지금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태그:#담배꽃, #담배(애연가), #고창(전북), #전매작물, #담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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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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