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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는 50세였던 1656년에 공식적인 파산 선고를 받았다. 렘브란트는 20대 중반 이후 초상화가로 명성을 쌓아 부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다. 그렇지만 '경매중독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절제 없이 돈을 썼고, 공식적 파산 선고 이후에는 채무 때문에 자신의 그림을 마음대로 팔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렘브란트는 부와 명예의 정점과 바닥을 모두 경험했으며, 100점 이상의 자화상에서 그가 경험한 인생의 다양한 굴곡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그의 자화상은 진솔한 영혼의 고백과 같은 깊은 울림을 감상자에게 전해준다. 
 
독일,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술집에 있는 탕자, 1635  독일,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
ⓒ 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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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술집에 있는 탕자>에서 부유한 귀족 출신인 아내 사스키아를 무릎에 앉히고 술잔을 들어 권하고 있는 렘브란트는 모든 것을 소유한 듯 만족한 표정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과장한 표정과 태도처럼 보이며, 이는 솔직한 자기고백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렘브란트의 그늘 없는 웃음은 34년 후인 1663년경에 그린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에 나타난 늙고 추하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묘한 웃음과 중첩된다. 두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렘브란트의 웃음을 짐멜은 다음과 같이 비교, 정리한다. 
 
"<사스키아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과 비교해보면, 여기서는 웃음이 전적으로 순간적인 무엇인가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삶의 요소들이 우연적으로 결합된 결과인데, 이 요소들의 각각은 서로 완전히 다른 색조를 띠고 있으며 전체는 죽음이 꿰뚫고 흐르며 죽음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두 작품 사이에는 아주 큰 유사성이 존재한다. 후자에서의 노인이 히죽히죽 웃는 모습은 오로지 전자에서의 젊은이다운 쾌활함이 지속적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일 뿐이다. 그리고 마치 삶에 죽음의 요소가 현존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 요소가 전자의 작품에서는 보이지 않는 가장 깊은 지층들로 물러났다가 이제 후자의 작품에서 표면까지 솟구쳐 나왔다."(게오르그 짐멜, <렘브란트: 예술철학적 시론>, 165-66)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 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 1663년경   발라프 리하르츠 미술관
ⓒ 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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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모습의 자화상(제우크시스의 모습을 한 자화상)>은 렘브란트가 죽기 6년 전에 그렸다. 렘브란트는 이마의 굵은 주름과 눈 밑의 살집이 드러난 노년기의 모습을 숨김없이 묘사한다. 감상자를 향해 히죽대는 듯 웃는 그의 표정은 어떤 의미를 표출한 것인지 모호하다. 그럼에도 렘브란트 왼편의 어둠 속 노파의 모습은 그리스의 화가 제우크시스의 전설과 연결해 그 의미를 추정할 수 있게 한다. 제우크시스는 자신이 그린 노파를 보고 미친 듯 웃다가 죽었다. 노파는 자신의 그림을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모습처럼 그려달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렘브란트의 의뢰자들은 렘브란트의 초상화가 실제 모습과 닮지 않았다고 거절하였던 경우가 많았다. 그 이유는 이상화하거나 미화하지 않은 사실적인 묘사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관람자를 향한 렘브란트의 웃음은 그러한 세태에 대한 풍자적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렘브란트의 의도를 세태에 대한 비난이라고 그 의미를 제한할 수는 없다.

화가로서 렘브란트 역시 거울 속에 보이는 자신의 늙은 외모를 사실대로 그려야 할 것인지 고민하였고, 그래서 물감을 두텁게 바른 어둡고 기묘한 자화상을 그렸던 것인지 모른다. 흘러내릴 것 같이 겹겹이 쌓인 주름과 살집, 흐릿하고 침침해 가는 시력,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렘브란트가 거울 속에서 본 자신의 모습에서 확인한 가장 또렷한 부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렘브란트와 죽음

렘브란트는 초상화 작가로 성공하였지만, 역사화나 종교화를 통해 극적 효과를 확장시키는 기법을 연마하였다. 역사화 분야에서 비교적 초기에 그렸던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는 천사>에서 렘브란트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죽음을 선택하였지만, 극적인 상황 전환에 의해 장구한 번영을 누리게 되는 이야기를 재현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인 이삭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는 장면이다. 아브라함과 하녀와 사이에서 이쉬마엘이 태어나긴 하였지만 이삭이 적자였고 자손대대로 다산과 풍요와 번영을 누릴 약속과 예언의 증거이기도 했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는 천사, 1635년경   러시아 에르미타주 미술관
ⓒ 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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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표정에서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찰나의 혼돈과 공포가 느껴진다. 제물이 될 운명인 이삭의 얼굴은 아브라함의 억세 보이는 왼손에 눌려 있다. 칼을 든 아브라함의 오른손은 그를 제지하려는 천사의 손에 잡혀 있다. 아브라함이 놓친 칼은 허공에 떠 있어 이 그림이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

천사와 아브라함, 이삭은 수직으로 배치되어 있고, 인물과 그들의 동작은 마치 회오리치듯이 역동적으로 조합되어 있다. 삶과 죽음이 급격히 교차하는 짧은 순간이지만, 렘브란트는 이 장면의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순간을 재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인과관계에 대한 시간적 순서를 압축하여 삶과 죽음에 대한 종합적인 비전을 축조하였다. 

렘브란트에게 죽음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렘브란트의 첫 아들이 1635년 12월 15일 세례를 받았지만, 몇 달밖에 살지 못했다. 1638년 첫째 딸이 세례를 받았으나 곧 죽는다. 1640년 7월 29일 둘째 딸이 세례를 받았으나 역시 곧 죽고 만다. 1642년 6월 14일 아내 사스키아가 사망한다. 1663년 부부처럼 살며 렘브란트를 돌보던 헨드리케가 사망하고, 1668년 아들 티튀스가 결혼 후 반년 만에 사망한다. 렘브란트는 1669년 사망한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을 제지하는 천사>가 1635년경 그려진 것이라면, 전기적 시간의 전·후 맥락에 차이가 있겠지만, 렘브란트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재현한 것이 운명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아브라함의 얼굴과 렘브란트의 얼굴이 중첩되기도 한다. 렘브란트는 이후에도 계속 같은 주제와 관련한 스케치와 에칭을 남겼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 이삭의 희생, 에칭, 1655  워싱턴 국립미술관
ⓒ 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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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적 재현은 어떤 사건이나 행위의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여 그린 것이라고 해도 화가가 그 장면을 재현하는 형식과 내용, 그리고 소재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한 결과를 집약·축적하여 시각화한 것이다. 화가는 어떤 역사적 장면을 회화로 재현하기 위해 관련된 역사, 일화, 시대상황, 인물에 대해 알아야 하고, 그러한 요소들을 선별하며 가장 효과적으로 그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비교를 하자면, 특정한 상황을 즉각적으로 포착한 사진과 달리 회화는 시간과 공간이 총체적으로 압축되어 용해된 종합적 시야를 개방시킨다. 아울러 화가 개인의 재능에 따라 관람자를 그림에 개입·몰입하게 하여 시·공간을 넘는 의미효과를 지속적으로 창출해 내기도 한다.

그가 그린 빛과 그림자

부족의 지도자이자 가장인 아브라함에게 후계자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요구는 인간적 도덕에 대한 부정이다. 엄연한 살인일 뿐만 아니라, 가족을 보호할 책임과도 정반대에 배치되는 행동이다. 더구나 이삭은 신이 약속하고 예언한 결과이자 증거인데, 그 예언을 부정하는 신의 요구는 부조리한 요구이며 모순이다.

신앙과 인간적 도덕 사이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믿음을 따라 순종하였고, 그 결과 믿음은 강화되었고, 그의 후손은 번성하였다. 아들에 대한 책임과 신앙이 이율배반적인 상황에서 아브라함은 신앙을 따르는 방향을 선택하였고 그의 선택은 옳았다. 이삭은 오른 쪽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별다른 저항 없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것처럼 누워있다. 그렇지만 그의 세워진 무릎의 모양은 그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나이 어린 이삭이 자신의 죽음에 의심과 공포 없이 순응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신앙의 영역에 속한다. 살아있는 인간은 죽음 앞에 공포를 느낀다고 가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과 아버지의 뜻에 대한 순종인 이삭의 희생은 예수의 희생과 연결된다. 두 희생의 유사점과 별개로 결과는 달랐다.

이삭은 극적인 상황전환에 의해 장수를 누렸지만 예수는 고통스런 죽음 이후 부활하였다. 신의 아들과 인간의 아들이기에 그 차이가 생긴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러한 담론은 과학이나 객관적 증거, 또는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 바깥의 이야기들이다. 물론 신학이나 철학적 담론의 대상으로 죽음의 문제를 다루기에 이보다 더 적절한 사례는 드물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자크 루이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 1787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 지봉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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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응한 유명한 사례로 소크라테스의 경우가 있다. 그는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이를 '철학적으로' 인정했다. 즉 "죽음은 다음 두 가지 가운데 하나다. 즉 아무런 의식이 없는 심연으로 빠지거나, 수많은 종교가 보장하듯 다른 세계로 영혼이 옮겨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전자라면 두려워할 것이 없고, 후자 역시 걱정할 게 없다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사형을 선고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죽는다는 것이 다른 세계로 가는 거라면 (시인들이 얘기하듯) 앞서 죽은 모든 사람들을 그 세상에서 만날 것이다.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이상 나이들 스피비, <그리스 미술> 78-79에서 요약 및 재인용, 원전은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이삭은 소크라테스가 언급한대로 "종교가 보장하듯 다른 세계로 영혼이 옮겨지는 것"이라고 확신하였을까? 한편 카라바지오는 더욱 인간적인 수준에서 같은 상황을 재현하였다. 카라바지오의 그림에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은 아브라함의 냉혹함과 이삭이 느끼는 극도의 공포이다. 
 
우피치 미술관
▲ 미켈란젤로 카라바지오, 이삭의 희생, 1594-6년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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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제물로 바치려하는 아브라함의 나이는 100살을 훨씬 넘긴 나이였다. 인간적 도덕과 애끓는 부정을 초월한 아브라함의 나이나 그의 결정은 비현실적이다.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 쓴 말을 보자.

"살아가면서 어디서 구원을 찾고, 삶이 끝나면 저기, 무덤 속에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양정무,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5>, 46에서 재인용) 전지전능한 신의 뜻이 지상의 가장 낮은 곳까지 전달되는 일이 항상,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까? 그림 속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이삭은 신의 뜻을 이해한 것인가?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한다. 렘브란트의 그림은 순간의 극적 전환을 확실히 제시하며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한 복합적 사색을 촉발시킨다. 아브라함이 아들의 목을 치려는 순간과 천사의 제지는 동일한 시점에 일어난다. 아브라함의 고뇌와 깨달음, 그리고 확신도 동시에 발생한다. 짐멜은 렘브란트의 그림에 재현된 극적인 순간의 종합적인 의미화 효과에 대해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모든 현재의 순간은 그 이전에 경과된 삶의 전체에 의해 규정되고 모든 선행하는 순간들의 결과이며, 따라서 이미 그러한 이유만으로도 모든 현재적 삶은 그 안에서 주체의 전체적 삶이 현실이 되는 형식이다."(게오르그 짐멜, 『렘브란트: 예술철학적 시론』, 33)

렘브란트의 그림은 오래되고 유명한 이야기이지만 감상자가 현재적 현실감을 더욱 극적으로 체감·교감하게 만든다.

태그:#렘브란트, #자화상, #아브라함, #이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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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학위 받은 지 오래 되었습니다. 문학, 미술, 영화, 미학, 철학, 사회학에 관심이 있고, 이들을 용해, 융합하여 사색한 결과를 글로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양회화 분야에 집중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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