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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21일 JTBC2 ‘악플의 밤’. 설리는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와 같이 착용 여부는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6월 21일 JTBC2 ‘악플의 밤’. 설리는 브래지어는 액세서리와 같이 착용 여부는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했다.
ⓒ JTBC2 ‘악플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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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꼭지 다 보이잖아!"

외출할 때마다 엄마와 실랑이가 벌어진다.

"보이면 좀 어때? 젖꼭지 포함해서 가슴을 드러내도 상관없다는 의미에서 하는 '노브라'라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옷이 얇아지는 여름일수록 나도 모르게 자꾸 거울을 확인하게 된다. 역시나 가슴 위로 존재를 증명하듯 두 꼭지가 봉긋 솟아 있다. 사람들이 내 깊은 뜻을 알까? 외부의 시선이 두렵긴 나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엔 "여름에 왜 두꺼운 겨울 나시를 속에 입냐?"라고 동생이 물었다. 뜨끔한 마음에 당당해지자며 얇은 나시와 흰 티 한 장 달랑 걸치고 집을 나섰는데, 결국 견디지 못하고 어두운색의 싸구려 티셔츠를 사 입었다. 찌찌는 찌찌일 뿐. 8년 전부터 옷을 입을 때마다 암시를 걸듯 되뇌지만, 내면의 트집쟁이는 주책없이 떠든다.

'길거리에서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14살부터 12년간 난 철사가 들어간 땀이 차는 소재의 답답한 브라를 매일 입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중학교 때부터 브라 착용은 의무였다. 아침마다 교문 앞에 선 선도부 언니들은 등을 쓸어가며 브라끈을 일일이 확인했다. 혹여 노브라가 발견되면 옆에 있던 선생님이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여자애가 칠칠치 못하게."

이 모든 상황이 나에게 '여자는 찌찌를 가려야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안 해도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저 브라 안 하는데요?"라며 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땐 화가 날 정도로 반가웠다. 진작 알았다면 더 빨리 벗어 던졌을 것을! 8년 전, 내가 노브라를 시작한 이유는 이토록 단순했다. "안 해도 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엄마는 안 하면 가슴이 처진다고 걱정했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그 근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브라가 가슴을 조여 소화 불량, 생리 불순 등을 유발한다는 연구가 많았고, 굳이 연구하지 않아도 해본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조이지 않는 편안함. 벗고 나서야 알았다. 그동안의 내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정도였다. 비교적 수월한 늦가을에 시작해 겨우내 행복감을 맛보았다. 위기는 여름에 찾아왔다. 노브라로 얇은 반팔티를 입고 처음 나간 날, 누구든 내 어깨를 툭 치며 속삭이듯 말할 것 같았다. "저기요, 브라를 깜빡하고 나오신 거 같은데요?" 혹은 누군가 나를 '음란한 여자'로 낙인찍고, 성폭력의 대상으로 리스트업 하면 어쩌나 바짝 긴장하며 어깨를 움츠렸다. 지하철 안에서는 혹여 남자와 마주하는 상황이 생길까 봐 구석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미 맛본 편안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고민하는 내게 친구들은 '젖꼭지 패치'를 권했지만, 쓰레기를 만들면서까지 굳이 그걸 가려야 하나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왜 노브라를 하는 걸까? "여름에 왜 두꺼운 겨울 나시를 입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비로소 나는 알았다. 8년 동안 브라만 벗었지, 젖꼭지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벗지 못했다는 걸.

몸은 몸일 뿐, 음란하게 보는 시선이 문제다

부끄러움만큼 두려움도 컸다. 성추행을 당할 때마다 난 '이 자식이 돌았나?'보다는 '이 남자가 노브라인 날 어떻게 생각할까?'에 더 집중했다. 신고하면 오히려 내 쪽에서 유혹했다고 들지나 않을까. 늘 원인을 나한테서 찾았다. 하지만 그때도, 지금도 난 안다. 내 가슴은 잘못이 없다. 브라를 내 몸처럼 여기며 가슴을 가리고 다닐 때도 성추행은 당했으니까. 내가 두려운 건 성폭력이 아니라 폭력의 빌미를 줬다는 비난까지 덤으로 받을 상황이다.
  
어쩌면 내 노브라는 하나의 자기방어 훈련일지 모른다. 어떤 상황이 오든 "내 가슴은 잘못이 없어"를 분명하게 말하기 위한 연습 말이다. 가슴이든, 허벅지든 나의 몸 어디든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당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길거리에서 스치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들 때문에 평생 찌찌를 가려야 한다니! 들여야 하는 품과 비용이 너무 아깝다. 올 여름 나는 답답한 나시티도 벗어버렸다.  

내 찌찌가 무슨 잘못인가? 몸은 그냥 몸일뿐, 문제는 그 몸을 음란하게 보는 시선이다. 나에게 노브라는 그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겠다는 선언이다. 얼마 전 방송에 나온 설리의 말처럼 "그냥 내가 편해서" 하는 거다. 이런 평범한 일이 여성에게는 투쟁이 되거나, 투쟁처럼 비친다.

1년 전, 페이스북이 남성의 반라 사진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반라 사진만 삭제한 사건이 있었다. 그때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시원하게 윗도리를 벗어던진 '불꽃페미액션'의 그녀들처럼 나도 음란 마귀들을 향해 외치고 싶다.

찌찌가 찌찌지 별거냐!

태그:#노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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