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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가진 자의 무기가 아니라 낮은 자를 위한 지혜가 되어야 한다." 평생을 실천하는 신앙인으로, 의로운 인권변호사로, 약자들의 벗으로 한결같은 삶을 살다 2004년 선종하신 고 유현석 변호사님의 생전 말씀입니다. 유 변호사님은 70년대 남민전 사건, 80년대 광주항쟁, 90년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등 굵직굵직한 변론으로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천에 분투하셨습니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2009년 5월 유 변호사님의 5주기에 맞춰 유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출연한 기부금을 바탕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출범시키고, 공익소송사건을 선정하여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를 통해 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된 소송이 우리 사회에 남긴 변화를 되짚고자 합니다. [기자 말]

 
 박씨가 현재 수감 중인 광주교도소.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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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17일 오전 10시 15분, 기동순찰팀(CRPT)이 광주교도소 2-1하2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트랜스젠더 여성(MTF) 수용자 김아무개씨가 홀로 갇혀 있는 방이었다. 기동순찰팀은 김씨 방에서 보온물병덮개 1개, 모포 3개, 부채 1개를 발견했고 곧바로 김씨를 조사수용했다.

김씨는 보온물병덮개는 배급받은 온수병을 따뜻하게 하려고 모포를 잘라 주머니 모양으로 이어 붙인 것을 출소자로부터 받은 것이고, 모포 3개는 입실할 당시부터 이미 거실에 있던 것이며, 부채 1개 또한 안양교도소 수용 당시 여름에 에너지 절약을 위해 소측에서 나눠 준 것이라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1월 29일 광주교도소 징벌위원회는 금치 9일의 징벌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김씨는 조사수용된 때로부터 징벌이 종료된 2월 6일까지 21일간 징벌방에 감금되었다. 조사수용 기간은 금치 기간에 산입되지 않았다.

징벌의 이유는 두 가지였다. 김씨의 방에서 발견된 보온물병덮개 등을 허가 없이 소지한 점, 그리고 정당한 사유 없이 교도관의 직무상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동순찰팀의 거실특별검사가 있기 35분 전인 오전 9시 40분쯤 광주교도소 수용관리팀장이 위생을 위해 필요하다며 이발을 지시하자 김씨가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징벌방에 갇힌 김씨는 공동행사 참가, 신문 열람, 텔레비전 시청,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을 제외한 자비구매물품 사용, 작업, 전화통화, 집필, 서신수수, 접견을 제한당했다.

강제이발 거부하다 징벌방에 갇히다

교도소 수용자에 대한 대표적인 인상이 있다. 머리카락을 빡빡 깎는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옛 행형법 제23조는 "수형자의 두발과 수염은 짧게 깎는다"고 하여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를 뒀다.

옛 행형법시행령 제93조 제1항은 "수형자의 두발은 1월에 1회이상, 수염은 10일에 1회이상 짧게 깎아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당시 법무부예규 '수용자 이발 등 지침'은 남자 수형자의 앞머리는 10㎝, 뒷머리·옆머리는 각 2㎝로 규정했다. 이에 더해 징벌을 받으면 스포츠형(앞머리 3㎝)으로 짧게 깎을 수 있도록 했다. 여자 수용자의 경우 '단발카트형' 또는 '파마웨이브형'을 원칙으로 했다.

이후 강제이발은 인권침해라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옛 행형법이 2007년 형집행법으로 전면개정되면서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삭제되었다. 형집행법 제32조는 "수용자는 자신의 신체 및 의류를 청결히 하여야 하며, 자신이 사용하는 거실·작업장, 그 밖의 수용시설의 청결유지에 협력하여야 한다"(제1항),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제2항)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사정이 없는 한 머리카락이 길다고 해서 곧바로 위생 등에 해롭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므로 이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될 수 없다.

한편, 법무부령인 교도관직무규칙 제33조 제1항은 "(교도관은) 수용자로 하여금 자신의 신체와 의류를 청결하게 하고, 두발 및 수염을 단정하게 하는 등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지도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지도'란 권력적·법적 행위에 의하지 않고 행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행정객체에 협력을 구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이 또한 수용자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는 될 수 없다.

강제이발은 법적 근거 없이 수용자의 기본권인 신체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법하며 따라서 교도관의 강제이발 지시도 정당한 지시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소측은 부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금치 징벌을 결정한 것이다.

이미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도 구치소 수용자 강제이발 사건에 대해 "타인에게 위해를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진정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것"이고 "신체의 외형적 형상이 물리적인 힘에 의해 침해당하지 않을 자유 즉 진정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09진인4676).

법원 "강제이발 지시는 부당"
 
 2005년 5월 14일 오후 서울 광화문 정보통신부앞에서 열린 '학생인권보장 청소년축제'에서 참가 학생들은 자율발언 등을 통해 두발단속, 야간자율학습 강요, 학생회 간섭, 교문앞 용의검사, 인터넷 글쓰기 금지, 단체기합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두발단속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은 '마지막 바리깡' 퍼포먼스를 위해 참가자들의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고 있다.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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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징벌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원한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교도소에서 김씨를 접견했다. 내가 만난 김씨는 긴 생머리를 빗어 하나로 묶거나 틀어 올리고 있었다. 곱슬머리에다가 이틀에 한 번 머리를 감고 잘 빗지도 않는 나보다 훨씬 단정하고 위생적이었다. 소측이 강제이발 지시의 이유로 내세운 '청결'이 사실은 핑계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2014년 10월 광주지방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박강회)는 징벌 처분을 취소하는 원고 승소 판결을 내놨다.

재판부는 "(형집행법은) 수용자는 위생을 위하여 두발 또는 수염을 단정하게 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구 행형법과 같이 두발의 길이를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수용자는 성별에 상관없이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두발을 길게 기르는 것도 가능하다",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한다는 것이 반드시 두발의 길이가 짧은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두발의 길이가 길더라도 관리 여하에 따라서는 충분히 단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교도관은) 수용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면서까지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게 한다는 목적으로 두발을 짧게 자를 것을 지시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여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확인했다.

재판부는 보온물병덮개 등 미허가 물품 소지에 대해서는 규율 위반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체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고 피고의 허가 여하에 따라 충분히 소지가 가능한 물품에 해당"하므로 "원고의 규율위반행위로 인하여 수용시설의 안전과 질서 유지에 직접적으로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징벌 처분이 재량권의 범위를 일탈·남용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소측이 항소했으나 2015년 4월 광주고등법원 제1행정부(재판장 박병칠)는 1심 판결의 취지를 대부분 유지하며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집단적인 생활에 있어 위생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집단구성원 전체의 안전과 건강에도 직결되는 문제인 점" 등을 이유로 "법률유보가 없어졌다고 단정할 것은 아니"라고 판단함으로써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원고의 주장은 배척했다.

패소한 소측이 상고하지 않아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은 받을 수 없었다. 필자는 패소하면 기계적으로 항소·상고하던 국가가 이 사건에서는 상고하지 않은 이유가 강제이발의 법적 근거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회피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은 트랜스젠더 김씨 개인의 권리구제를 위한 것이었으나 판결의 취지는 트랜스젠더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수용자에게 해당된다. 법원은 두발의 단정함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수용자 본인 의사에 반하는 강제이발이 허용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판결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1심 선고와 2심 선고 사이에 개정된 '수용관리 업무지침'(법무부예규 제1077호) 제95조의2 제4항은 "소장은 성전환수용자의 위생을 위하여 두발을 단정하게 유지할 의무가 있음을 교육하고, 두발길이 등에 관하여는 최대한 자율을 보장하는 등 성 소수자의 특성을 고려하여 처우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했다. 이 사건을 통해 '두발 길이의 자율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제도의 변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정확한 시점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위 예규가 다른 훈령과 통폐합되면서 만들어진 '수용관리 및 계호업무 등에 관한 지침'(법무부 훈령 제1211호) 제39조 제5항은 "소장은 성소수 수용자의 성적 정체성에 맞게 처우하되, 두발 길이 등 자신의 신체 및 의류를 청결히 유지하도록 교육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는 데 그쳤다. '최대한 보장'이라는 그럴싸한 말마저 사라졌다. 다시 출발점에 선 셈이다.

권력 관계의 우열을 보여주기 위한 전형적인 수단
 
"우리는 처음으로 우리의 언어로는 이런 모욕, 이와 같은 인간의 몰락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식간에, 거의 예언적인 직관과 함께 현실이 우리 앞에 고스란히 정체를 드러냈다. 우리는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밑으로는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었다. 이보다 더 비참한 인간의 조건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우리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옷, 신발,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빼앗아갔다. 우리가 말을 해도 그들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설사 들어준다 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우리가 만일 그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 내부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할 터였다. 그 이름 뒤에 우리의 무엇인가가, 우리였던 존재의 무엇인가가 남아 있게 할 수 있는 힘을 찾아내야만 했다." (프리모 레비 지음, 이현경 옮김, <이것이 인간인가>, 돌베개, 2007, 34쪽)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서 옷과 신발과 머리카락을 뺏겨 알몸이 된 프리모 레비는 당시를 회상하며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라고 썼다. 교정시설 수용자이자 성소수자라는 이중의 소수자성을 가진 김씨가 징벌방을 선택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단지 머리카락이 아니라 이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름을 간직할 수 있는 힘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오래전 학교 교문에서 '바리캉'이 학생들의 머리를 밀어버리던 시절이 떠올랐다. 피지배자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라 모욕감을 주는 것은 권력 관계의 우열을 보여주기 위한 전형적인 수단이다. 강제이발의 이유로 학교에서는 훈육을 감옥에서는 위생을 핑계로 대지만, 사실 그것은 지배와 통제의 수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누가 내 머리칼의 '단정함'을 정의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들은 답하지 않음으로써 권력관계를 증명한다. 권력은 신체를 지배함으로써 자신의 권능을 드러낸다는 오래된 진실을 이 사건이 다시 보여줬다.

[기획 / 낮은 자를 위한 지혜, 유현석공익소송기금]
① 브래지어 강제로 벗으라는 경찰들, 속셈은 따로 있었다 (http://omn.kr/1j3li)
② '임신한 아내' 진료기록 가져간 경찰, 어이없다 (http://omn.kr/1jfg8)
③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성기 성형수술' 꼭 필요한가 (http://omn.kr/1ji47)
④ '25분 기자회견' 진행하고 전과자 된 대학생 (http://omn.kr/1jvrd)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소아 변호사(공익변호사와 함께하는 동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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