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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전거 타기에 푹 빠졌다. 자전거는 나에게 애증의 대상이었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는 아버지의 반대로 자전거를 갖지 못했다. 나의 남 형제들이 아침 밥 숟가락 놓자마자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학교를 갈 때도 홀로 남아 스쿨버스를 기다려야 했다.

여기서 함정은 '지리산 골짜기'다. 나는 내려갈 때의 시원함과 스피드만 생각했지 그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는 고통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몇 번의 염탐 끝에 동생 자전거를 훔쳐 타고 시원하게 산바람을 맞으며 면소재지로 향했다. 학교 운동장에서 몇 번의 연습이 다였음에도 어지간히 간도 컸다. 페달 한 번 굴리지 않아도 시원하게 지리산 골짜기를 내려가는 자전거를 생각해 보라. 얼마나 쾌감이 컸을 것인가.

그러나 삶은 언제나 예상 못했던 곳으로 흐르는 법이다. 미숙한 운전 실력과 가속이 붙은 자전거 속도를 감당 못해 남의 집 담벼락을 들이박았다. 지금도 내 오른손 중지와 약지 사이에 있는 흉터는 그때의 훈장이다. 자전거보다 먼저 담벼락과 조우한 내 손가락은 동생 자전거만은 온전히 지켜내며 장렬히 희생했다. 손가락 사이에 철철 흐르는 피와 함께 친구와의 만남은 포기해야 했다.

그때부터가 더 큰일이었다. 거의 3km에 육박하는 지리산 골짜기를 올라가야만 했다. 진짜 거짓말 안 보태고 한 번도 자전거 위에 올라 탈 수 없었다. 나의 남 형제들은 잘만 타고 올라가던 그 길을 말이다. 걸어서 30분 걸리는 거리를 거의 두 시간 만에 귀가했다. 손가락에 말라붙은 피자국과 함께 자전거를 끌고 올라오느라 지친 나를 기다린 건 아버지의 호통과 자기 자전거가 무사한지 확인하는 동생의 매정함이었다.

이후로 나는 내리막길에 대한 두려움이 커 자전거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아니 거의 자전거를 타지 않았고 탈일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은 자전거 천국인 동네다. 평일, 주말, 계절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차와 나란히 달려가곤 했다. 한강 전체를 가로지르는 자전거 도로가 지천이었지만 자전거 라이딩 족들은 차와 나란히 달려가는 스릴을 즐겼다. 그 광경은 다시 자전거에 대한 로망을 부추겼다. 그래, 다시 한 번 도전해 봐?

해가 진 여름 날 밤, 저녁 먹고 나서는 한강 자전거 길은 그 옛날 지리산 골짜기를 시원하게 달려 내려가는 내 어린 시절을 떠 올리게 한다. 오르막, 내리막도 없이 오로지 평지뿐인 자전거길로 옛 트라우마 따위 그저 옛 얘기다.
 
함께 자전거 타는 아이
 함께 자전거 타는 아이
ⓒ 손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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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달리 겁이 많아 5학년이 되도록 네발 자전거에서 두발 자전거로 넘어오지 못 하던 아이도 자전거에 푹 빠져 산다. 저녁마다 조르는 아이에게 못 이긴 척 넘어가 함께 한강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달쯤 지나니 나도 아이에게도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는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이라도 착용하지만 나는 그냥 탔었다. 그런데 이 길을 달리는 저 사람들 좀 보소. 이건 뭐 자전거 매장 쇼 윈도우 속 마네킹을 그대로 옮겨 놓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거 이거 자전거만 장만해서는 안 되었던 것인가. 복장을 다 갖춰야 하나. 모든 운동은 장비빨로 시작해서 장비빨로 끝난다더니 과연 맞는 말이었나 보다.

지금은 감옥에 있는 어느 전직 대통령 시절, 한 장관이 고유가에 대한 대책이랍시고 자전거 출퇴근 퍼포먼스를 펼친 그 자전거가 150만 원짜리였단다. 그 1/7정도 되는 자전거를 타며 얼마만큼의 장비를 갖춰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자전거보다 배꼽이 더 크게 생겼다.

아이에게는 엉덩이가 너무 아프다고 해서 자전거 의자위에 씌우는 메모리폼 덮개와 가로등과 자전거 앞뒤에 달린 보호등이 훤함에도 불구하고 머리에 쓰는 라이트를 꼭 필요하다해서 사 줬다. 나는 헬멧도 없이 달리는 건 너무 위험해 보여서(사실 위험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자전거족이라면 헬멧정도는 갖춰야 할 것 같아서) 헬멧을 한 개 샀다. 

영화 <북경 자전거>에서 주인공 구웨이는 자전거에 목숨 거는 시골에서 북경으로 갓 상경한 소년이다. 자전거 배달회사에 근무하는 구웨이에게 자전거는 생존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를 위해서라면 남의 머리도 서슴없이 돌멩이로 내려찍을 수 있을 만큼 뭐든지 할 수 있는 소년이었다.

이 영화에서 구웨이와 대척점에 선 인물은 지안이다. 그는 학생으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위해 자전거가 필요하다. 구웨이와 지안은 모든 면에서 대비되는 인물이다. 농촌과 도시, 노동인과 학생, 생활수단인 자전거와 향락수단인 자전거, 그리고 그 자전거를 소유하는 방법 역시 육체노동 대 동생의 학비를 훔친 돈이다.

2001년 개봉한 영화지만 오늘을 사는 대한민국 사람의 자전거도 구웨이와 지안에게서 그다지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여름 밤 한강 라이딩을 즐기는 나와 아이는 향락의 자전거를 타는 부류로서 얼마나 멋지게 자전거를 탈 수 있을지 고민하지만 동대문시장만 가도 자전거가 생계수단인 사람이 아직 많다.

중남미 순방 중,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을 사통팔달로 연결하는 사람중심의 자전거 도로 '자전거 하이웨이(Cycle Rapid Transportation CRT)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가급적 기존 차로를 줄이지 않는 혁신적 공간 활용을 통한 자전거 하이웨이를 구축해 자전거도 하나의 교통수단으로 자리매김 시키겠다는 포부다.

서울시가 구축하는 자전거 하이웨이가 엄청난 장비빨에 부끄러워서 감히 다가설 수 없는 자전거길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한 달 짜리 자전거 족으로서 소망이다. 구웨이와 지안이 나란히 달릴 수 있는 자전거 도로, 자전거 장비를 풀 장착하지 않아도 헬멧만으도 무시 받지 않는 자전거 도로가 되었으면 한다.

태그:#자전거 하이웨이, #서울시 자전거, #한강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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