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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3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 대법원 전원합의체, 일제 강제징용 승소 판결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가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시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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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일본의 경제 보복이 4일 개시된 가운데, 한·일 양국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5일 아침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객원논설위원(전 서울지국장)도 논쟁을 달구고 있다.

본격적인 라디오 인터뷰에 앞서, 구로다는 생소한 논리부터 내세웠다. 아베 신조 내각이 스마트폰·반도체·TV 핵심 재료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 조치가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제 문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외교 문제에서 출발했으므로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한국에서 어떤 경제적인 차별을 받고 있을 때 그 보복으로 뭔가 한다면 경제보복인데, 이건 경제 문제로 시작한 게 아니고. 하여튼 징용 문제에 관한, 과거사 문제에 관한 외교적인 문제잖아요."
 
또 이번 규제 조치로 일본이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말도 했다. 일본 기업들도 손해를 보리라 예상되므로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희한한 논리다.
 
"일본에 경제적인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일본 기업도 수출 줄어드니까 손해 보고 한국 기업도 손해 보는 거니까 양쪽이 다 마이너스가 되는 건데. 그런 경제 보복은 없지요." 

일본이 전가의 보도로 휘두르는 한일 청구권 협정

이렇게 모호한 논리를 선보인 뒤 구로다는 본격적인 주장에 들어갔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에 관한 배상 판결을 내리고 한국 정부가 이를 방치하는 것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1965년 6월 22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체결된 이 협정의 정식 명칭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다.

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식민지배 배상 문제가 해결됐다는 게 일본측의 주장이다. CBS 인터뷰에서 구로다가 내세운 논리도 이것이다. 일본 정부나 일본 우익과 마찬가지로 구로다는 다음과 같은 청구권협정 제2조를 근거로 들었다.

양 체약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1951년 9월 8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서명한 일본국과의 평화조약 제4조 (a)에 규정된 것을 포함하여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제2조 1항


이 규정을 근거로 청구권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건만 한국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리고 한국 정부가 이를 제지하지 않으니 아베 신조 내각이 무역 규제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게 구로다의 말이다.

하지만 한국 대법원의 논리를 들어보면 일본과 구로다의 주장이 너무 터무니없다. 일례로 2012년 5월 24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한 강제징용 손해배상재판에서 내린 대법원 판결을 보면 청구권협정 제2조에 의해서도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일본의 주장 무너뜨린 한국 대법원 판결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승소 판결에 눈물 흘리는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 씨와 고 김규수 씨 부인이 2018년 10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강제징용 피해자 원고 4명이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승소한 뒤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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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의 판단은 아래와 같다. 하나의 문장이 너무 길어서 세 단락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인용문 속의 A·B·C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부가한 것이다.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A),

청구권 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대가 관계에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B), 청구권협정의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C),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 건에 대하여는,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개인 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판결의 핵심 근거 중 하나인 A는 청구권협정 제2조의 '완전하고 최종적인 해결'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제4조 (a)에 관한 것일 뿐 강제징용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강화조약 제4조 (a)는 식민지에서 일본인들이 갖고 있었던 재산과, 식민지 사람들이 일본 내에서 갖고 있었던 재산에 관한 조항이다. 위안부나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관련된 사안이 아니므로, 청구권협정 제2조를 근거로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B는 지당한 근거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경제협력자금으로 돈을 제공해 놓고 그것을 강제징용 배상과 연결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C는 매우 이치에 맞는 근거다. 일본이 청구권협정 어디에서도 불법적 강제동원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이 협정을 근거로 강제징용에 관한 개인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강제징용에 관한 배상 문제를 해결했다고 하려면, 강제징용을 했다는 사실과 불법을 저질렀다는 사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도 하지 않았으니, 일본이 청구권협정을 통해 개인 청구권 문제를 해결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청구권을 외교적으로 보호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구로다 전 지국장은 물론이고 일본 정부도 이 같은 명쾌한 논리를 무시한 채, 문제가 다 해결됐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청구권 소멸 주장도 허술한데 망언까지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6월 28일 오전 인텍스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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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는 개인 청구권 문제의 해결을 주장한 데에 이어, 꽤 묵직한 망언 하나를 내놓았다. 청구권협정에 따라 한국이 경제협력자금으로 받은 3억 달러가 한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한국 나라가 이만큼 풍요로운 나라로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에 대해서 일본의 협력이 얼마나 기여했는지 그걸 (한국인들한테) 정확히 좀 알려달라." 

앵커가 "지금 한국이 이만큼 살게 된 것이 1965년에 3억 달러 받았기 때문이라는 그런 주장이신가요?"라고 묻자, 구로다는 명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뒤이어 이런 말을 덧붙였다.
 
"1965년도 이후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계기로 해서 한·일 간에 협력관계를 시작한 거예요. 특히 경제적으로. 그 결과가 지금 한국 발전의 기초가 됐다는 거예요." 

'구로다' 말고 '구보다'란 사람이 있었다. 1953년 제3차 한일회담 때 수석대표로 나온 구보다 간이치로라는 인물이다. 양국의 관계 개선을 논의하고자 열린 이 자리는 구보다의 망언 한마디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이후의 한일관계는 구보다 망언을 중심으로 파행으로 치달았다. 아직까지도 구보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을 정도로, 구보다의 망언은 상당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구보다는 "일본은 36년간 한국에 많은 이익을 주었다"며 "만약 일본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는 말로 한국 여론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 것이다.

일본이 토지조사사업으로 한국인들의 토지를 빼앗았다는 점, 한국을 대륙 진출을 위한 병참기지로 만들고자 도로를 닦고 공장을 세웠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한국 땅을 마음대로 개발해서 일본을 살찌우고 대륙 침략을 준비했다. 그래 놓고도 개발 현장이 단순히 한반도라는 이유로 한국이 식민지배의 덕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보다의 망언은 그처럼 부조리한 망언이었다.

한국인들이 식민지배로부터 조금이라도 덕을 봤다면, 1919년 3·1운동 때 200만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태극기 하나를 들고 일제 기마헌병의 총칼에 달려들며 만세를 외친 이유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또 한국인들이 그런 덕을 봤다면, 1945년에 일제가 패망하자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몰려나와 만세를 외친 이유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물론 식민지배로 득을 본 집단은 있다. 친일 지주, 친일 자본가, 친일 경찰과 행정관료들은 그랬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구보다 망언은 대다수 한국인들의 현실을 무시한 망언이었다.

구로다 망언, 구보다 망언의 업그레이드 판 
 
 23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일본 산케이신문 구로다 특파원이 권영길 대표에게 대북문제와 관련해 질의하고 있다.
 2004년 4월 23일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질문하는 일본 산케이신문 구로다 특파원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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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나온 구로다 망언은 버전 2.0이라 할 수 있다. 66년 전의 구보다나 지금의 구로다나 일본이 한국을 도왔다는 '망상'은 한 치도 변하지 않았다.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한국인들의 가슴은 한층 더한 분노로 들끓고 있다. 이 같은 피해자들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구보다 망언의 업그레이드판인 구로다 망언이나 내놓고 있으니, 일본과 일본인들이 한국과 좋은 이웃이 되려는 마음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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