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3 10:17최종 업데이트 19.07.03 10:17
1945년 2월,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고 수많은 피란민들이 독일 드레스덴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학도시 하이델베르크처럼 폭격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드레스덴은 군사 산업도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기대는 빗나가 버렸다. 영국‧미국 연합공군은 드레스덴에 융단 폭격을 가했다. 히틀러의 런던 침공에 대한 보복이었다.

이틀간 폭격으로 최소한 민간인 6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엘베 강의 피렌체'로 불리던 아름다운 성모교회는 벽돌 폐허로 변했다. 이후 전승국인 영국 정치인과 국왕이 드레스덴을 방문할 수 없었다. 성모교회는 1736년 완공되었을 때 독일의 유명한 음악가 바흐가 작센 왕을 위해 오르간을 연주했던 교회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나치는 패망하고 구 동독 지역을 장악한 공산당 정권은 폐허가 된 교회 잔해를 그대로 방치해 연합군의 만행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드레스덴 시민들은 폐허에서 파편을 골라내 번호를 매겨 보관하면서 언젠가 성모교회 재건이 시작되는 날 파편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구동독 공산정권이 파괴된 잔해를 밀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려던 계획을 세웠을 때 시민들은 항의해 철회시켰다.

한국판 금모으기운동, 독일인의 '성모교회' 재건 
 

일본 수출규제 보복 조치… 국내 업계 타격 우려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함에 따라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타격이 우려된다. 사진은 2일 오후 텔레비전 매장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 ⓒ 연합뉴스


라이프치히 교회와 함께 성모교회는 공산주의 붕괴와 통일로 가는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기도 했다. 통일 직전 1989년 12월 19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성모교회 폐허 앞에서 "역사적 순간이 허용한다면 내 목표는 한결같이 우리 민족의 통일"이라는 유명한 연설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이곳에서 통일이 시작되는 기운을 느꼈다"고 훗날 회고했다.

1990년 통독 이후 드레스덴 시민들은 성모교회 재건 프로젝트를 위해 나섰다. '벽돌 한돌 쌓기' 운동을 벌였다. 한국판 '금모으기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에 민간재건 기구가 설립되고 영국과 미국 등 세계 20여 시민들과 민간단체들이 참여했다.

특히 독일 출신의 미국 생물학자로 어렸을 때 드레스덴에 살면서 성모교회를 다녔던 귄터 블로벨(Günter Blobel)은 1999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을 전액을 재건 비용으로 기부했다. 개인 자격 기부금으로 최대 액수였다. 어린이 장남감 제작회사인 레고사는 벽돌 한 장에 5 마르크를 주고 행사장에서 레고로 만든 성모교회 모형을 조립하는 캠페인으로 28만 마르크를 모금했다. 이후 성모교회 재건할 돈은 충분히 모았다.

교회 복원에 파괴된 건물의 원 자재를 최대한 사용했다. 특히 교회 꼭대기 십자가는 영국 장인 앨런 스미스가 제작했다. 그의 아버지 프랭크는 드레스덴 폭격 당시 영국 랭커스터 폭격기 조종사였다. 드디어 2005년 10월, 성모교회는 전쟁의 상처를 씻는 화해의 상징으로 완공되었고 엘베 강변의 스카이라인도 옛 모습을 찾았다.

시민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성모교회는 평화 및 통일의 상징으로 한 해 7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다. 필자도 여러 차례 한국 청년 및 기업인들과 성모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전쟁의 앙숙이었던 독일과 영국의 성숙한 시민들은 '벽돌 운동'으로 성모교회 재건을 통해 화해와 평화를 길을 함께 걸어간 상징을 보여준 것이다.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관계

독도, 위안부에 이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정부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 정부는 7월 1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3개 소재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번 조치에 대해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따른 보복 조치임을 밝힌 셈이다.

수출규제 대상인 투명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고순도 불화수소는 한국 경제의 쌀인 반도체·TV·스마트폰 제조에서 핵심적인 품목이다. 이들 품목이 수출 우대국 목록에서 한국은 제외돼 계약할 때마다 최장 90일이 걸리는 심사를 받게 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은 비상이 걸렸다. 이들 품목의 공급 대부분을 일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대체 수입처를 빨리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출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경우 한국 경제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미·중 무역전쟁 격랑 속에서 한국 수출은 7개월째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6월 수출 실적은 반도체 부진 등 악재가 겹치면서 전년 대비 13.5%나 줄었다. 일본 아베 정부는 수출규제로 한국 경제의 급소를 때린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옹졸하다고 비판할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아베 총리의 전략도 읽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타격이다. 일본 정부의 속 좁은 왜소함만 탓하고 있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나온 이후 '한국 정부는 팔짱만 끼고 있었다'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대한 질타가 많았으나 대응하지 않았다.

경제전쟁의 시작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 소재 등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와 관련해 불려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야스마사 대사는 취재진을 피해 지하 4층 주차장을 이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외교부로 들어갔다. ⓒ 연합뉴스


강제징용 피해자의 배상 청구권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가 1965년 한·일 협정 교섭 관련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다. 노 대통령은 그해 3·1절 기념사에서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면서 국무총리실 산하에 '한ㆍ일 회담 문서 공개 민관 공동위원회'를 설치했다.

지금 민주당 대표인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와 이용훈 변호사가 공동위원장을 맡아 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의 효력 범위와 이에 따른 정부 대책을 논의했다. 공동위는 같은 해 8월 26일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미 해결됐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 달러는 개인 재산권, 조선총독부 대일채권 등 한국 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징용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됐다고 봐야 한다"면서 한국 정부에 이들을 구제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후 강제징용 피해 배상 문제는 한·일 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현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최근 대법원 판결과 강제징용 관련 재판거래 수사가 시작되자 현 정부는 입장을 바꿨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 정권은 서로 파국으로 부딪히는 설국열차같이 달리고 있다. '한일 경제전쟁'이 시작되었고, 두 정권이 감정싸움으로 빠져들 경우 시민들과 기업들만 막심한 피해를 보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강제징용 배상금, 깨어있는 한일 시민들 나서자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양국 정부가 문재 해결을 위해 나서지 않은 상황에서 그 대안은 깨어있는 한일 시민들이 나서는 길이다. 독일 드레스덴 성모교회 재건 프로젝트를 위한 '시민 벽돌모금' 운동같이 강제징용 배상금 마련을 위한 한일 시민들이 모금하는 운동을 펼치고, 배상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화해와 협력을 위한 한일 시민관계가 더 성숙될 수 있고 양국 정권을 압박할 수 있다.

한반도 상공에 미중 간 경제패권을 둘러싼 신 냉전이 시작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일 경제전쟁의 포화가 또 불을 뿜었다. 세계 경제 넘버 1, 2, 3인 미국, 중국, 일본에다가 한국이 참전하는 형태다. 우리에게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형국이다.

일본 전문가인 국민대 이원덕 교수 등은 "한일 경제 전쟁이 확전되지 않은 조치가 우선적"이라고 말한다. 전후 프랑스와 독일이 손잡고 화해와 평화의 유럽 대륙을 만들어갔듯이, 한일은 공동의 가치를 가진 민주국가로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선도해야 한다. 현재 양국 정권에 기대할 수 없다면 깨어있는 시민과 통 큰 차기 리더에 새로운 한일 관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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