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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입양 정책을 총괄해오던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이 오는 7월 16일부터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된다. 이를 두고 해외입양인들의 우려가 크다. 중앙입양원이 아동권리보장원으로 통합되면서 사라지는 과정에서 아동이 아닌 성인, 그중에서도 해외입양인의 친부모 찾기 등의 권리보호 업무도 함께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아동정책의 차원에서 아동권리보장원이 출범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우려다.

많은 해외입양인들이 그동안 한국에서 친부모 찾기를 할 때 도움을 요청한 곳이 바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설입양기관이 아닌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입양원이었다. 실제로 지난 2018년 8월 말 한 프랑스 해외입양인은 중앙입양원에 친가족 찾기를 의뢰했다.

입양정보 통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 중앙입양원은 이 프랑스 해외입양인의 입양배경 서류 등을 수집해 조사했고, 친모의 인적사항이 들어 있는 행정정보를 통해 소재지를 찾아 나섰다. 그 결과 중앙입양원의 도움으로 이 해외입양인은 35년 만에 친모와 재회하는 기쁨과 감동을 누렸다. 때문에 중앙입양원이 사라지면 이제 해외입양인의 친가족 찾기가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4살 때인 1978년 미란 리엔더
 4살 때인 1978년 미란 리엔더
ⓒ 미란 리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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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란 리엔더씨는 1974년생 스웨덴 해외입양인이다. 그는 1954년생 경북 출신의 친모 유아무개씨를 찾기 위해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자신을 입양 보낸 경상북도의 한 사설입양기관을 찾았다. 하지만 그 사설입양기관의 화재로 자신의 입양배경자료가 소실되어 친모를 찾을 수 없었다.

미란씨는 조만간 다시 한국을 방문해 중앙입양원에 친모 찾기 등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앙입양원이 곧 사라질 예정이라는 소식에 요즘 밤잠을 잘 못 이루고 있다. 다음은 지난 5월 26일부터 6월 29일까지 지금 스웨덴에 살고 있는 미란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친모는 경상북도 출신의 1954년생 유아무개씨

- 해외입양 보내지기 전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 또 친부모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는지?
"난 출생 후 4개월째 해외입양 되었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입양 될 당시의 대한사회복지회 기록에 따르면 나는 1974년 6월 12일 경상북도 출생이다. 그 후 가톨릭 입양기관 경북지부와 서울 위탁가정을 거쳐 1974년 10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해외입양 보내졌다.

대한사회복지회의 기록에 따르면 내 친모는 유아무개씨로 온순하게 생기셨고 경상북도 출신으로 내가 출생 당시 20세(1954년 생 추정) 미혼모였다. 친부는 친모보다 20살 연상(1934년 생 추정)이었고 내성적인 성격의 직업군인이거나 군대와 관계된 일을 하셨다.

두 분은 서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는데 나를 임신하자 친모가 조용히 친부를 떠난 것이다. 친부가 당시 유부남이었는지 여부는 기록이 없어서 모른다. 친모는 미혼모로서 나를 혼자 키울 능력이 안 되셔서 결국 친권을 포기하신 것이다. 기록에 다르면 내 출생일은 정확한 것이며 나는 가톨릭 입양 프로그램에서 김봄뫼로 이름 지어졌다."

- 스웨덴에서 해외입양인으로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경험은 무엇이었나?
"스웨덴에서 생후 4개월부터 자라서 그런지 내 의식구조와 삶의 방식은 철저하게 보통 스웨덴인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내 외모는 언제나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스웨덴 아이들은 나를 항상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봤고 나는 그들과 자연스럽게 섞이고 싶었지만 무척 어려웠다.

내 한국 이름도 그들에게 생소했던 것 같다. 내가 자라던 동네에는 아시아인이 거의 없어서 나는 어디를 가나 다른 스웨덴인들의 시선을 받았다. 내 외모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내가 자라던 동네에선 나를 한번만 보고도 모두 금방 나를 기억했던 것 같다. 물론 어떤 아이들은 내 외모를 보고 항상 나를 놀리기도 했다.

한국에 대해 많이 몰랐던 나는 왜 친모가 나를 버렸을까 항상 궁금했다. 내가 친모를 닮지 않아서 나를 버리셨을까? 등등. 나는 지금 세 아이들의 엄마인데 내 아이들도 내 뿌리를 너무 궁금해 한다. 물론 나도 내가 무슨 유전병은 없는지 등 내 뿌리가 너무 궁금하다."
 
 해외 입양 보내지기 전 미란 리엔더
 해외 입양 보내지기 전 미란 리엔더
ⓒ 미란 리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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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만화, 드라마... 한국문화에 관심 많은 딸

- 스웨덴에서 지난 40여 년의 생활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입양 온 후 몇 해 동안 나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양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그러다가 우리는 스웨덴의 한 시골로 이사를 갔다. 어린 시절 나는 체육과 무용을 좋아해서 16살 때 스웨덴 웁살라라는 곳에 있는 무용학교를 다녔고 1993년 이곳을 졸업했다. 그 후 나는 19살 때 스웨덴의 외레브로 대학교 언론학부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나는 광고 분야에서 몇 년을 일하고 결혼했다.

내 맏딸은 한국 문화, 한국 만화, 케이팝, 한국 드라마에 관심이 많고 언젠가 엄마의 나라인 한국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 한다. 지난 2014년 나는 아이들 그리고 양부모님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양부모님은 나를 입양할 당시인 지난 1974년 나와 한국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신 적이 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에서 너무나 좋은 시간을 보내서 우리 가족은 또 다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 입양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신지? 혹시 입양부모들이 한국 친부모들에 대해 아는 정보가 있는지?
"입양모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시다가 10년 전 은퇴하셨다. 지금 입양모는 취미활동으로 그림을 그리시고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신다. 입양부는 데이터 컨설팅 분야에서 오래 일하시다가 은퇴하셨지만 요즘도 가끔 데이터 컨설팅 일을 하신다. 입양부는 시골길 걷기를 좋아하시고 집안의 잡동사니를 수리하시는 게 취미다. 불행하게도 내 입양부모님도 내 친부모님에 대해선 내가 아는 것 이상은 모르신다."

- 지금까지 친부모를 찾기 위해 주로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나는 지난 1974년 해외입양 보내진 후 40년 만인 2014년 6월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방문 전 나는 스웨덴 입양기관에 한국 친부모에 관한 정보를 요청했지만 규정상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4년 한국에 왔을 때 나는 남편과 함께 대한사회복지회를 방문해 친부모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하지만 오래 전 내가 입양 보내진 가톨릭 입양기관 경북지부에 화재가 나서 나에 관한 자료가 모두 소실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내 유전자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한국경찰청에 보내 친부모 찾기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친부모에 대해 아무런 소식을 못 들었다."
 
 요즘의 미란 리엔더
 요즘의 미란 리엔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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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싱글맘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인색하고 편견 심해

- 한국인들과 한국 정부에 한국의 해외입양인 문제와 관련하여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한국에서는 지금도 싱글맘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인색하고 사회적 편견이 심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싱글맘이 아기 양육과 직장생활을 병행하기가 너무 어렵다. 스웨덴에서는 싱글맘에게 정부의 지원이 많고 사회적 편견도 없어서 한국과 비교해 싱글맘이 살기 좋다. 그래서 그런지 스웨덴에선 일부러 결혼을 안 하고 사는 싱글맘도 많다. 아직도 한국엔 아이를 받는 '베이비박스'가 있고, 친부모의 서면 동의가 없이도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다는 소식은 정말 충격적이다."

- 지금 스웨덴에서의 생활은 어떤지?
"나는 지금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교통부문 글로벌회사에서 통신전략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멋진 남편과 더불어 20살, 15살, 9살 세 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다. 물론 살다보니 생활의 기복이 없을 수는 없다. 그래도 나는 지금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 한국이 계신 친부모나 형제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스웨덴 입양부모님 그리고 그 분들이 낳은 언니와 남동생과 더불어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 저는 남편과 더불어 세 딸의 행복한 엄마입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제 뿌리를 모른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때로는 상실감에 젖곤 합니다. 저는 하루에도 몇 번 씩 친부모님, 특별히 친모를 그리워하고 궁금해 합니다.

저는 친부모는 물론 한국에 형제나 친척이라도 있다면 꼭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면 지난 40년 동안 뿌연 안개처럼 무지로 쌓였던 제 과거에 대해 조금이나마 더 알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 아이들도 제가 한국의 친부모님이나 가족 찾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제 아이들이 자기의 뿌리를 찾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 미란 리엔더씨를 알아보시는 분은 '뿌리의집'(02-3210-2451)으로 연락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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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