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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4일 강원도 고성에서 산불이 났다.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주택 565채가 불에 탔고, 1132명이 졸지에 이재민이 됐다. 7월 13일은 산불이 일어나고 꼭 100일째 되는 날. 숫자에 드러나지 않는 천진초등학교 대피소 사람들 이야기를 담아봤다.[편집자말]
 
 변아무개(76)씨가 나 원내대표가 떠난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변아무개(76)씨가 나 원내대표가 떠난 뒤에도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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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난 지 한 달 넘게 지난 5월 13일 오후 천진초 체육관 대피소.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이재민들을 방문했을 때였다. 밭일을 마치고 온 지 얼마 안 된 파란색 추리닝 차림의 한 할머니가 나 원내대표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꺼이꺼이 숨 넘어가듯 울던 할머니가 검고 주름진 손으로 자기 입을 가렸지만 신음소리 같은 단어들이 새어 나오는 것까지 막진 못했다.

"벌써 한 달이...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흑흑... 억울해요... 도와주세요... 제발..."

할머니의 오열에 나 원내대표와 동행한 취재진은 연거푸 플래시를 터뜨렸고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할머니는 나 원내대표의 손을 부여잡고 이마가 손에 닿을 정도로 연신 허리를 꺾으면서 울었다.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정치인들은 5분만에 다음 일정을 향해 떠났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도 할머니는 진정하지 못하고 엉엉 울고 있었다. 주변 이재민들도 할머니를 보고 같이 눈물을 훔쳤다.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잘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남한테 악한 짓은 안 하고 살았어. 근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놨길래 이렇게 집이고 뭐고 다 타버렸는지... 흑흑흑. 우리는 농부인데 집도 집이지만 농기계가 엄청 많이 탔어. 한 1억 5천 만원 어치는 탔다고... 모 심는 기계, 벼 베는 기계, 벼 말리는 기계, 트랙터... 다 3천 만원씩 넘는 것들인데 그걸 지금 어떻게 다 다시 사느냐고.... 우리는 나이가 많잖아. 영감도 곧 팔십이고, 나도 곧 팔십이야. 그 돈 빚지면 어느 세월에 갚겠어. 흑흑흑. 정치인들이 빨리 보상을 좀 해줘야지. 아까 온 사람들 다 그런 거 할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 정부든 한전이든 좀 도와줘야지. 이젠 몸도 시원치가 않어. 얼마 전에 옥수수 숨그는데(심는데) 갑자기 픽 쓰러질 것 같았어. 내가 그런 적이 없는데, 한번도 그런 적이 없는데..."

천진초 대피소 오른쪽 뒷줄 두 번째 텐트에 사는 변(76,여)씨 할머니다.

9시 뉴스
  
 고성 산불로 집이 다 불에 탄 변(76, 여)씨 할머니.
 천진초 이재민 변씨 할머니가 철거된 자신의 집터를 쳐다보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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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중순 처음 만났을 때 변씨 할머니는 쌀쌀맞았다. 대피소에 있는 동안 할머니가 대부분 시간을 보내던 텔레비전 앞 철제 의자에 앉아 의심의 눈초리로 위아래를 훑던 할머니는 기자 신분임을 밝히자 화재 초기 득실득실했던 기자들은 지금 다 어디 갔느냐고 내게 소리치며 삿대질을 했다. 그땐 그렇게 귀찮게 굴더니 이젠 나 몰라라 한다는 거였다. 이것저것을 물어도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곤 들은 체 만 체 하기만 했다.

어렵게 몇 번 안면을 텄을 때도 할머니는 텔레비전을 탁탁 치며 아홉시 뉴스에 고성 얘기는 왜 하나도 안 나오는 거냐며 내게 역정을 냈다. 화재 후 2주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천진초엔 정말 언론사가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몇몇 언론사들은 불이 난지 한 달이나 두 달 되는 날짜에 맞춰 대피소 상황을 취재해 갔다.

겉보기에 차갑기만 한 그였지만 변 할머니는 눈물이 많았다. 대피소 텐트에서 세 살 위 남편, 오십대 아들과 함께 지내는 할머니는 시간이 지나도 불 난 얘기만 나오면 금방 눈이 그렁그렁해지곤 했다. "아저씨는 나하고 농사짓고. 아들은 맨날 건축일 하러 나가. 그냥 잡부일 하는 거지 뭐. 우리하고 같이 농사도 짓고." 또 텔레비전 앞에 앉은 할머니는 아침 일찍 대피소를 나서는 아들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봤다. 고성 토박이라는 변 할머니는 감자, 옥수수, 벼, 고추 농사를 짓고 있었고 아들은 미혼이라고 했다.

밤나무
    
 변 할머니 집터 옆에 있는 100년 넘은 밤나무도 다 타버렸다.
 변 할머니 집터 옆에 있는 100년 넘은 밤나무도 다 타버렸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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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울상인 것 같으면서도 할머니의 거친 손은 일을 놓는 법이 없었다. 주변 텐트에서도 다들 할머니가 부지런하고 생활력이 좋다고 했다. 거의 매일 아침 7시 반이면 대피소를 나서는 할머니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떨어진 용촌리 300평짜리 밭까지 나갔다. 할머니 집터 뒤를 감싸고 있는 언덕 위 소나무들은 다 타버렸지만 텃밭의 감자와 옥수수, 고추 잎은 올해도 어김없이 대지를 뚫고 나와있었다. 무릎이 안 좋다는 할머니는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하며 밭을 맸다. 젊었을 때처럼 구부리고 앉아서만 일을 할 수 없다며 세월 타령을 했지만 뙤약볕 아래서도 할머니의 동작은 흐트러짐 없이 정확했다.

"이거 이렇게 올라오는 게 뽕이야 뽕. 어허, 그건 밟지 말어, 거기 발 밑에 있는 게 도라지야. 저건 두릅이고. 삶아서 된장 찍어먹으면 아주 맛있지. 저기 저 우리 집 옆에 있는 밤나무 타버린 것 좀 보게. 저 나무가 100년이 넘었어. 나 시집올 때부터 있었던 나무인데... 밤도 아주 많이 열리고 그렇게 맛이 좋았었다고. 토종 밤이지 토종 밤. 근데 저렇게 다 타버려서... 불쌍해."

변 할머니네 밭 옆으로 전봇대보다도 훨씬 키가 큰 커다란 밤나무 한 그루가 앙상한 가지만 남은 채 새까맣게 타 있었다. 할머니 집은 이미 철거된 상태여서 집터가 휑했다. 할머니는 밭 옆에 안 쓰던 비닐하우스에 새로 파란 천막을 둘러놓고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밥을 먹곤 했다. 어느덧 편하게 말을 걸어오는 할머니가 내게 차가운 캔 커피를 쥐어줬다. 구호품으로 받은 거라고 했다.
  
점심 때가 되자 할머니는 비닐하우스 안에 들어가 조그만 비닐 봉지를 찾았다. 할머니가 봉지 속에서 주섬주섬 꺼낸 건 대피소 밥차에 부탁해 싸온 멸치 반찬과 흰 쌀밥이었다. 할머니는 밥을 물에 말아 멸치와 숟가락째 먹었다. "일하다 이렇게 먹으면 맛이 좋아. 이래봬도 멸치도 고기다 고기. 흐흐." 간단히 갖고 올 마땅한 반찬이 없는 날엔 부식으로 받은 컵라면을 냄비에 넣고 부르스타로 끓여 먹었다.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시작한 5월 이후부턴 이렇게 밭에서 바로 점심을 해결하는 일이 많아졌다. 할머니는 대피소로 돌아가 점심 먹을 시간도 아깝다고 했다.


 
 변씨 할머니가 오전 밭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있다.
 변씨 할머니가 오전 밭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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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핸 비도 안 와. 불만 오고. 참 하늘도 무심하다. 이거 봐봐. 가물어서 고추가 아주 쏘들쏘들(시들시들)하잖아. 물이나 좀 대놔야겠다."

4월부터 5월까지 고성엔 제대로 된 비가 오지 않았다. "오늘도 겨우 이 정도 오다 말잖아. 여긴 바람이 하도 불어서 비가 이 정도 와 갖곤 농사 못 지어. 비가 와서 적셔 놓으면 딱 그만큼 또 바람이 불어서 날아가버리니까." 할머니는 늘 비 예보를 달달 외우고 다녔지만 모처럼 비 예보가 있는 날이면 번번이 조금 내리다가 그치는 식이었다. 막바지 모내기 작업이 한창이던 5월 20일, 변 할머니는 하늘이 야속하다면서도 기어이 올라오는 잡초들을 뜯으며 그래도 웃었다.

"아유 하루 종일 대피소에 있어봤자 지겹기만 해. 이제 티비만 보는 것도 지겹고 한숨만 나오고. 사람이 일을 해야 살지. 그래야 또 이렇게 웃음도 나고. 할 일도 많어. 모내기 철이니까 돌려가면서 쓰라고 군에서 모 심는 기계를 빌려줬는데 그게 말을 잘 안 듣잖아. 이렇게 기계가 지나가고 나면 모가 숨거져야(심어져야) 하는데 이만큼 이만큼씩 공백이 생기니까. 오래된 기계라 그래. 내가 하나하나 다 다시 숨거줘야(심어줘야) 된다고."
 

할머니의 검고 두터운 손가락이 집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름에 옥수수가 다 크면 집에 있는 가마에다 삶아 갖고 머리에 이고 나가서 팔어. 길가에서 안 팔리면 속초 시장 같은데 나가서 팔지. 그럼 그게 돈이 좀 돼. 돈 되는 건 다 해야지. 아이고 시골서 농사 짓고 자식들 멕여 살리려면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그게 뭐 대단한 건가? 아침에 바닷가 가서 바다나물도 좀 건져오고 산에서 고사리도 캐고. 근데 이번에 불 때문에 옥수수 삶는 가마가 타버렸잖어. 그게 50년 된 건데. 시집 와갖고 소여물 끓이고 두부 만들고 다 했던 가마인데 말이야. 나랑 같이 살던 건데. 우리 애들 다 먹여 살린 건데."

밭에서 웃던 할머니 눈이 또 글썽글썽해졌다.

동해 바다
  
 고성의 바다
 고성의 바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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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안개가 짙었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여느 때처럼 밭으로 향하던 변 할머니와 길가에서 마주쳤다.

"밭에 가세요? 오늘은 안개가 많네요."
"갤 거야."
"네?"
"금방 갤 거라고."
"어떻게 아세요?"
"저 바다 쪽을 봐. 해무가 저렇게 해 뜨는 쪽에 잔뜩 낮게 깔려 있으면 이따가 날이 개. 바람이 저 바다 쪽으로 불잖아. 이럴 때 일 많이 해놔야지."

뻘겋게 아침 해가 뜨는 동해 바다를 멀리서 내다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정오가 될 무렵, 하늘은 정말 거짓말 같이 갰다. 새파랗게 깨끗해진 하늘엔 구름 한 점이 없었다.

"옛날부터 여기가 살기 좋은 곳이라고 다들 했다고. 산도 있고 바다도 있고. 여기서 저기 설악산 울산 바위도 훤히 보이잖아. 소나무들 탄 것도 아까워서 어째. 그날도 바람이 바다 쪽으로 불어서 다행이지, 만약에 산 쪽으로 불었으면 저기 너머까지 다 탔을 거야. 설악산이 바짝 다 타버렸을 거라고. 어휴, 안 그래?"    
 
 용촌리 집터 앞의 변(76, 여)씨 할머니. 불에 탄 100년 넘은 밤나무가 할머니 뒤로 보인다.
 용촌리 집터 앞의 변(76, 여)씨 할머니. 불에 탄 100년 넘은 밤나무가 할머니 뒤로 보인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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