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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뼈때리는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참석, 방문 노동자들의 범죄 위험 노출 문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가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뼈때리는 인권침해 증언대회’에 참석, 방문 노동자들의 범죄 위험 노출 문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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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점검원이 점검하러 가는데 남자분이 다가와서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자기 성기를 몸에다가 문질렀다고... 그래 놓고는 한 번만 안아주고 가라고 했다. 피해자는 결국 신발도 못 신고 뛰쳐나왔다." 

지난 2015년 8월, 울산 경동도시가스 가스점검 여성 노동자가 업무 중 고객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가스점검을 나갔던 A 피해자는 상·하의를 벗고 앞치마만 두른 고객과 마주해야 했다. 또 다른 피해자 B는 가스 누출 여부를 점검할 때 뒤에서 자신을 껴안는 고객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점검원들 가운데 성희롱을 당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들어가면 팬티를 입고 있거나, 점검 도중 브래지어 라인을 만진다거나... 문제는 그래도 꾹 참고 일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에는 성추행 당한 동료가 자살 시도를 하는 사건도 있었다. 황당한 게 회사는 이 사실에 대해 입단속을 하려 했다. 이 사건 이후 더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내게 됐다." 

김정희 울산 경동도시가스 분회장의 증언이다. 그가 언급한 사건은 지난 4월, 울산 경동도시가스 가스안전 점검원이 고객 집에서 일하던 중, 성추행을 당한 후 감금까지 당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시도했다. 울산 경동도시가스 노조는 노동환경개선 요구에 답을 내놓지 않는 사측을 상대로 5월 20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27일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는 정의당과 민주노총의 주최로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침해 증언대회'가 열렸다. 김정희 분회장을 비롯해 설치·수리 노동자, 수도 검침원, 방문상담원, 재가요양보호사, 방문간호사, 다문화가정 상담사 등 다양한 영역의 가구방문노동자가 모여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회사 대처는 우리를 자르는 것뿐"
 
▲ 도시가스, 상수도검침원 등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침해 사례 증언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2간담회의실에서 정의당과 민주노총의 주최로 ‘가구방문 노동자 인권침해 증언대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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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침은 정기적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 때엔 막다른 골목에 남자가 바지를 내리고 성기를 손으로 잡고 서 있던 적도 있었다. 너무 무섭고 두려워서 주말에 남편과 함께 그 지역을 검침해야 했다."

최숙자 강릉 상수도검침원의 증언이다. 그는 "이런 문제가 용역과 위탁으로 이뤄지다 보니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며 "나도 한 가정의 엄마고, 부인이며, 며느리다. 잦은 성희롱과 성폭행으로 얼마나 모멸감을 느끼는지 모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6년 국립정신보건센터의 정신보건전문요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대상자의 가구를 방문해서 일하는 정신보건전문요원의 80.4%가 안전 위협을 겪고 있었다. 그중 14%는 성적 위협을 겪고 있었다. 또한 가구 방문 시 신변의 위협을 느끼거나 성희롱을 당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재가요양보호사의 증언도 잇따랐다. 재가요양보호사는 거동이나 일상생활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1대 1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건복 재가요양지부 지부장은 "우리는 다른 가정방문노동자와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검침원들은 성희롱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뛰쳐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가 없다. 이용자들이 사회적 약자에 노인이라는 특성이 있어, 우리가 도망치면 이들의 목숨에도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업무는 보통 몸과 몸이 완전히 밀착되는 편이다. 이런 일을 하는데 이용자의 집에서 단둘이 최소 3시간은 있어야 한다. 성희롱 사실을 고발해도 센터 차원에서의 대처는 없다. 그저 요양보호사를 교체하는 것뿐이다."

이 지부장은 "재가요양보호 현장에서 일어난 성희롱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매우 개인화된 장소에서 일하는 데다가 성희롱, 성폭력이 일어나도 요양보호사 개인 행실의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마저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상습적인 성추행, 성희롱을 하는 이용자들의 조치도 미비하다"며 "오히려 재가요양보호사들이 해고를 당하거나 사직을 하는 게 문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책이다"라고 꼬집었다.

"2인 1조 근무, 보다 안전한 근무를 위해 필수적"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수도검침원, 사회복지사 노동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뼈때리는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방문 노동자들의 범죄 위험 노출 문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와 도시가스 안전점검원, 수도검침원, 사회복지사 노동자들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2간담회실에서 열린 ’가구방문 노동자 뼈때리는 인권침해 증언대회’에서 방문 노동자들의 범죄 위험 노출 문제에 대해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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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노동자들 모두 '2인 1조 근무'를 요구했다. 안전한 노동을 위해 필요한 근본대책이라는 것이다. 2인 1조의 근무 형태가 노동자의 안전권과 건강권을 확보한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증명된 바 있다. 태안화력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뒤 공공기관의 위험 작업장 2인 1조 근무 원칙이 도입됐다. 구의역 스크린 도어 김 군 사망 뒤 서울메트로가 강조한 안전수칙도 2인 1조근무였다.

이건복 공공운수노조 재가요양지부 지부장은 "간병노동자 절반은 온몸으로 이용자를 지탱하거나 신체 특정 부분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작업을 하게 된다"며 "남자 혼자 들 수도 없는 걸 여성 혼자 들어야 할 때가 많다. 이 경우 2인 1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어 "성희롱을 가하는 이용자들 가운데 치매 환자들이 많다. 이들은 감정제어가 되지 않아 폭행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며 "2인 1조가 배치되면 이런 피해가 크게 준다. 성희롱, 성폭력의 경우 관련 증거를 수집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강혜지 정신건강사회복지사도 "모든 대상자의 방문을 2인 1조로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나, 위험성이 있거나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던 대상자의 경우 이를 명시화해야 한다"며 "해결 가능한 부분부터 정부가 직접, 최대한 빨리 여성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업장, 법 있어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성폭력에 노출된 가정방문 노동자들. 그렇다면 현행법은 이들의 노동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조이현주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사업주가 근로자의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을 줄일 수 있는 쾌적한 작업환경을 조성하고 근로조건을 개선하도록 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2018년 4월 7일에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르면 고객응대근로자가 고객의 폭언 등으로 인한 건강 장애를 예방할 수 있도록 관련 조처를 하도록 돼 있다"며 "오늘 증언하신 분들이 말씀한 2인 1조에 대한 것도 고용노동부가 발간한 '감정노동 종사자 건강보호핸드북'에 명시돼 있다"고 덧붙였다. 

조 변호사는 "즉, 사업장에서 이런 현행법 및 규정 사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각 사업장의 특성에 맞는 고객응대업무 매뉴얼을 마련할 수 있도록 의무를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증언한 이건복 지부장도 "성희롱을 할 가능성이 있는, 이용자와 보호자도 관련 예방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윤소하 정의당 원내대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대면 혹은 정보통신망을 통한 고객응대의 경우, 폭언·폭행 등에 대한 안전 조치와 건강장해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판매 등의 서비스업 및 가구방문 노동자들의 경우 해당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늘의 증언대회를 계기로 더욱 실효성 있는 가구방문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 조치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이를 위한 법 개선에 힘쓰겠다"고 당부했다.

태그:#성폭력, #성희롱, #가정방문, #노동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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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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