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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에게 업무보고를 시작하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를 경청하고 있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의원들에게 업무보고를 시작하자,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이를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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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의 공약은 합리적인 고교 체제의 개편이며 교육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자사고를 일방적으로 다 폐지하는 건 맞지 않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계속 추진하겠지만 그 과정은 합리적이어야 한다."
"설립 취지대로 학생들에게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자사고는 계속 자사고로 유지되겠지만, 고교 서열화를 심화시키고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자사고는 폐지될 것이다."


지난 24일 교육부 출입기자단과 한 간담회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최근 전북 상산고의 일반고 전환 결정 문제에 대해 밝힌 공식 입장을 모은 것이다. 주무부서의 수장으로서 고충이 느껴지는 원론적인 발언이었지만, 반대 여론에 놀란 듯한 인상이 역력하다. 이제 여론의 관심은 교육부의 동의 여부에 쏠리게 됐다.

그의 발언은 거칠게 말해서 '양비론'이거나 '양시론'이다. 시간을 벌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평가기준이 80점에서 여느 지역과 같이 70점으로 하향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닐 뿐더러, 어떻게 결정이 나든 평가 항목의 적정성과 평가 주체 등의 문제를 놓고 갈등이 이어질 게 뻔하다.

'대학입시학원 전락' 자사고, 손보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자사고 문제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이른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는 당시 여러 교육단체가 우려했던 대로 고교 서열화와 사교육 확산이라는 부작용만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 상산고 문제에서 보듯 그릇된 정책이 낳은 후폭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 장관이 언급한 '합리적인 고교 체제의 개편'은 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대학의 학벌구조 못지않게 철저히 서열화 한 현재의 고교 체제를 개편하자면 '대학입시학원'으로 전락한 자사고를 손보지 않고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그는 정녕 지금의 자사고가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걸까.

고등학교 교육이 기-승-전-대학입시로 귀결되는 현실에서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건 대학입시를 효율적으로 준비하겠다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비겁하게 다양성이니 창의성이니 운운하지 말고, 차라리 공부 잘하는 이들끼리 따로 모여 수업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는 게 솔직하다. '교육의 수월성'은 그들이 쓰는 전가의 보도 아닌가.

'교육의 수월성' 운운하며 아이들을 점수로 갈라치고 다그치는 교육은 더 이상 민주와 인권, 평화와 공존이라는 지금의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상위 1%의 엘리트가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거의 맹목적인 믿음을 성찰할 때가 됐다는 뜻이다. '상위 1%의 주인이 만 명의 노예를 거느린다'는 이 논리를 지금껏 우린 너무 당연시해 왔다.

지금 우리 교육에 절실한 건 바로 '소셜믹스(Social Mix)'의 가치다. 무릇 미래세대 아이들을 길러내는 학교라면 한 교실 안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못하는 아이에게 멘토가 되어주고, 건강한 아이가 몸이 불편한 아이의 손을 잡아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끊임없이 서로를 구분 짓고 서열을 따지는 곳이라면 장차 아이들은 어떤 어른들로 자라나게 될까.
 
 21일 오전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을 받은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정문 앞을 시민이 지나고 있다. 2019.6.21
 21일 오전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정취소 결정을 받은 전북 전주 상산고등학교 정문 앞을 시민이 지나고 있다. 2019.6.21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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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는 건 옳다고 하면서 합리적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그의 인식은 언론의 오해를 사기 충분하다. 청와대가 상산고의 지정 취소에 '부(不)동의'로 가닥을 잡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지만, 후자에 방점을 찍으면 그런 이야기가 무리는 아니다. 상산고에 대한 평가는 과정이 불합리했다고 인정하는 듯한 뉘앙스이기 때문이다.

이어질 여러 자사고의 평가 결과 발표를 앞두고 여론의 추이를 봐가며 지역별로 한두 개씩 살려놓게 될 것이라는 둥, 모두 살려두되 평가 기준을 엄격하게 손볼 거라는 둥 온갖 억측이 난무하고 있다. 죄다 근거 없는 낭설이지만 수긍이 가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상산고 문제는 현 정부 자사고 폐지 공약을 넘어 교육 정책 전반을 좌우할 바로미터다.

일각에서는 '지역 인재 육성' 운운하며 자사고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지역에서 자사고가 사라지면 인재들이 서울 등 타 지역으로 빠져나가게 될 거라는 우려에서다. 고등학교 때 상경하면 인재 유출이고 대학 때 가면 인재 육성이라는 건데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주장인가. 자사고에 다니면 인재고, 일반고에 다니면 둔재라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는 인식이다.

지역 인재란 지역에서 태어나 서울대에 진학해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뿌리 깊은 지역 차별에 맞서 지역에 살며 서울 중심의 가치관을 해체하기 위해 헌신하는 이어야 지역 인재라고 할 수 있다. 국회에서 예산 심의할 때 지역구에 돈다발 안겨주며 할 일 다 했다고 생색내는 의원을 지역 인재랍시고 떠받드는 천박한 인식은 이제 그만 거둘 때도 됐다.

무엇이 지역 인재인가

여기저기서 지역 인재 타령이니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든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한 아이가 보여준 모습이다. 비록 공부로만 치면 자사고 근처에도 가지 못할 성적이지만, 지역에 대한 사랑만큼은 남다르고 실천하려는 의지 또한 대단한 진짜 인재라는 생각이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지역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프로젝트 과제가 있다. 그 아이가 찾아간 곳은 박물관이었다. 그곳을 답사하며 수많은 문화재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서울 등 대도시의 박물관 등에 옮겨져 보관되고 있는 현실을 비로소 알게 됐다고 한다.

아이는 순간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약탈 문화재인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가 떠올랐단다. 프랑스와 서울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것이다. 문화재의 반출을 금지하고 지역으로의 반환을 명문화한 법을 제정해야 한다면서 토론을 제안하는 모습을 보며, 교사로서 대견하면서도 부끄러웠다. 자칭 지역 인재라는 서울의 정치인들 중에 이런 데에 관심을 두는 이가 과연 있기나 할까.

지역 할당 비율을 높이는 것을 마치 근본적인 대안인 양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참고로 상산고의 경우 지역 할당 비율이 20%에 불과한데, 그런 탓인지 지난 2017학년도 상산고 최종 합격자의 지역 분포를 보면 수도권 학생 비율이 57%에 이른다. 수도권 아이들이 애써 전주로 '유학'을 오는 셈인데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당연히 서울 소재 명문대다.

전국 단위 모집을 하는 지역의 자사고를 두고 'OEM(주문자 위탁 생산) 방식'이라고 조롱하는 이유다. 서울의 명문대 진학을 염두에 둔 수도권 가정에서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맞춤형 교육을 받도록 아이를 지역의 자사고에 위탁하는 식 아니냐는 것이다. 일부에선 수도권 인근에 성업 중인 '기숙학원'에 빗대기도 했다.

하지만 자사고의 지역 할당 비율을 50%, 아니 100%로 높인다고 해서 학벌구조가 온존한 우리 현실에서 자사고가 태생적으로 지닌 한계를 극복할 수는 없다. 본질적인 문제는 자사고를 정점으로 하는 고교 서열화는 아이들에게 특권의식을 심어주고, 아이들끼리의 연대와 협력의 가능성을 차단한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저 '전국 1등'에서 '지역 1등'으로 바뀌는 것뿐이다.

장담컨대 양쪽 눈치 살피며 실기했다간

유 교육부 장관은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외려 교육부 시행령의 개정을 통해서만이 자사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장담하건대 양쪽의 눈치를 살피며 실기했다간 '게도 구럭도 다 잃는 신세'가 될 것이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한 '좋은' 자사고란 환상일 뿐, 일반고를 더욱 황폐화시키고 애먼 유치원 아이들까지 사교육으로 내모는 주범이다.

자사고 폐지 문제는 4대강 사업과 많이 닮았다. 모든 것을 돈과 효율로만 따진 이명박 정부로부터 비롯됐다는 것도 그렇지만, '매몰비용' 탓인지 정부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비슷하다. 자사고가 폐지되는 날과 4대강의 보가 해체되는 날 중에 어떤 것이 먼저 올지, 솔직히 예상하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관련 기사]
대통령님, 상산고 앞에서 '멈칫'하면 안됩니다 http://omn.kr/1j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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